子曰 飽食終日 無所用心 難矣哉 不有博弈者乎 爲之猶賢乎已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배부르게 먹고 종일토록 지내면서 아무 곳에도 마음을 쓰지 않는다면 참 (덕 기르기가, 큰일을 하기가) 어렵겠구나!. 장기와 바둑이 있지 않은가? 이것이라도 하는 것이 그만두는 것보다는 낫다.”라고 하셨다.
博 局戱也 弈 圍棋也 已 止也 博이란 국희(장기놀이)이고, 弈이란 바둑이다. 已는 그만둔다는 말이다.
魯齋王氏曰 博說文作簿 局戱也 六著十二棊也 古烏曹作簿 說文弈從二十 言竦兩手而執之 圍棊謂之弈 노재왕씨가 말하길, “博은 설문해자에서는 簿라고 하였으니, 국희(장기)이고, 6저와 12기다. 옛날 오조가 簿를 만들었다고 한다. 설문해자에는 弈이 二十을 부수로 썼으니, 양손으로 받들어 잡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圍棊는 바둑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李氏曰 聖人非敎人博弈也 所以甚言無所用心之不可爾 이씨가 말하길, “성인께서 사람에게 장기와 바둑을 두라고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마음을 쓰는 곳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을 심하게 말씀하신 것일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心若有用則心有所主 只看如今纔讀書則心便主於讀書 纔寫字則心便主於寫字 若是悠悠蕩蕩 未有不入於邪僻者 주자가 말하길, “마음을 만약 쓰는 바가 있다면, 곧 마음은 집중하는 바가 있게 된다. 단지 지금 조금이라도 책을 읽는 것을 살펴본다면, 마음은 곧 독서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게 되고, 조금이라도 글자를 쓴다면 마음은 곧바로 글자를 쓰는 데에 주안점을 두게 되는 것을 볼 것이다. 만약 이렇게 한가하고 방탕하게 지낸다면, 간사하고 편벽됨에 빠져들지 않은 자는 일찍이 없었다.”고 하였다. 此非啓博弈之端 乃假此以甚彼之辭 이 말은 장기와 바둑의 단서를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것을 빌려서 저것을 심하게 한 말이다.
南軒張氏曰 飽食而無所用心則放越而莫知其極 凡惡之所由生也 博弈雖不足道 然方其爲之意專乎此 比之放越而莫知其極者 猶爲愈焉 此章大抵言無所用心則長惡爲可畏耳 남헌장씨가 말하길, “배불리 먹고서 마음을 쓰는 바가 없다면 곧 방종함이 넘쳐도 그 끝을 알지 못하니, 무릇 악이 말미암아 생겨나는 바인 것이다. 장기와 바둑은 비록 말할만한 것도 못 되나, 그러나 바야흐로 그것을 하는 뜻이 여기에 오로지 있게 되니, 이를 방종함이 지나쳐도 그 끝을 알지 못하는 자에 비한다면, 오히려 그보다는 나은 것이다. 이 장은 대체로 마음을 쓰는 바가 없다면 악을 助長하게 되는데, 두려워할만한 것이 됨을 말하였을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或問伊川嘗敎人靜坐 若無所用心只靜坐可否 雙峯饒氏曰 靜坐時須主敬 卽是心有所用 若不主敬 亦靜坐不得 心是活底物 若無所用則放僻邪侈無不爲已 聖人說難矣哉 所該甚廣 혹자가 묻기를, “정이천 선생은 일찍이 사람들에게 고요히 앉아 있으라고 가르쳤는데, 만약 마음을 쓰는 바가 없이 그저 고요히 앉아있는 것은 괜찮습니까?”라고 하였다. 쌍봉요씨가 말하길, “고요히 앉아 있을 때 반드시 敬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는 마음을 쓰는 바가 있는 것이다. 만약 敬에 주안점을 두지 않으면 역시 고요히 앉아있는 것도 해낼 수 없다. 마음이란 살아 있는 사물이라서, 만약 쓰는 바가 없다면 곧바로 방자하고 편벽되며 간사하고 사치함이 행해지지 않음이 없게 될 따름이다. 성인께서 ‘어렵겠구나!’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 갖추고 있는 바가 대단히 넓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