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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 K1, K3, 한옥서 50년 ‘묘법’ 40점 선 봬 선 → 이미지가 아닌 긋기 → 긋기 → 긋기 → 반복된 시간의 흔적 박서보 작고 3주기 회고전...1967년 최초의 연필묘법부터 2023년 마지막 신문지묘법까지 56년의 궤적 |
[미술여행=윤장섭 기자]한국 단색화를 대표하는 박서보(1931~2023)의 50여 년 작업 세계를 한자리에서 조망하는 대규모 회고전이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국제갤러리에서 24일(월)부터 10월18일(일)까지 열린다.
한국 단색화를 대표하는 박서보(1931~2023)의 50여 년 작업 세계를 한자리에서 조망하는 대규모 회고전 포스터
박서보 작고 3주기 대규모 회고전은 국제갤러리 서울점의 K1과 K3, 그리고 한옥 공간에서 펼쳐진다. 전시 주제는 박서보가 생전 남긴 “변하지 않으면 추락한다. 그러나 변하면 또한 추락한다”는 말에서 출발한다. 전시는 끊임없이 작업 방식을 바꾸면서도 반복과 수행을 통해 자신을 비워낸 박서보 예술의 변화와 지속을 함께 살핀다.
이번 회고전은 박서보 작가의 작고 3주기를 맞아 마련한 전시로, 50여 년에 걸친 변화의 궤적을 따라가며, 1967년 초기 ‘연필묘법’부터 작고 직전까지 몰두했던 ‘신문지묘법’까지 작품 40점을 선보인다.
사진: 1967년 초기 연필묘법의 대표적 모습,
국제갤러리 서울점의 K1에서는 1967년작인 ‘연필묘법’부터 한지를 이용해 제작한 ‘지그재그묘법’과 1990년대 이후의 ‘흑백묘법’을 소개한다. 박서보는 1982년부터 한지를 작업에 끌어들였다. 물기를 머금은 한지를 도구로 밀어내면서 화면에 골과 융기, 응어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후에는 젖은 한지를 굵은 흑연으로 반복해 밀어내 수직선을 만드는 흑백묘법으로 이어졌다. 특히 1967년 초기 묘법( ‘연필묘법’)은 캔버스에 흰 안료를 바르고 마르기 전 연필로 선을 반복해 긋는 방식에서 출발했다.
사진; 말년의 신문지묘법
또 서울점 K3에서는 2000년대 이후 자연에서 얻은 색을 화면에 도입한 '색채묘법'을 선보인다. 박서보는 이를 ‘치유의 색’이라 부르며 회화가 관람객의 스트레스를 흡인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한옥에서는 2019년부터 시작한 ‘연필색채묘법’과 마지막 연작인 ‘신문지묘법’을 소개하며 말년의 작업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전시는 단순한 양식 변주의 연대기가 아닌 사유와 신체, 재료와 환경, 그리고 예술가의 생애 국면이 맞물려 형성된 변화의 철학을 조명함으로써, 작가에게 그 변화가 어떻게 예술의 본질을 재고찰하는 동력이 되었는지를 되짚는다.
사진: 박서보 (Ecriture No. 030513) 2003 Mixed media with Korean hanji paper on canvas 200 x 260 cm Courtesy of PARKSEOBO FOUNDATION and Kukje Gallery © PARKSEOBO FOUNDATION(박서보재단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박서보 작고 3주기 대규모 회고전 ...1967년 최초의 연필묘법부터 2023년 마지막 신문지묘법까지 56년의 궤적
1. 박서보의 50여 년 작업세계 — 핵심은 ‘단색’보다 ‘반복행위’
박서보는 ‘단색화의 거장’이다. 그러나 그의 작업을 살펴볼때 단순히 흰색→한지→반복되는 선으로 이해하면 절반만 보는 것이다. 1950년대 미술계는 한국전쟁 이후의 불안과 상처를 거친 물질성과 격렬한 제스처로 드러내는 앵포르멜 작업을 했다면, 1960년대에는 어두운 색조의 〈원형질〉, 원색과 기하학적 구성이 두드러지는 〈유전질〉을 거쳤다. 그러다가 1967년 미술계는 결정적인 전환이 일어난다. 이전까지의 질문이 ‘무엇을 그릴 것인가’였다면, 묘법에서는 ‘어떻게 그릴 것인가’ 자체가 회화의 주제가 된다.
박서보재단에 따르면 최초의 묘법은 1967년에 시작됐다. 어린 아들이 방안지에 글씨를 제대로 쓰지 못하자 포기하듯 연필로 마구 선을 긋는 모습을 보고, 목적을 이루려는 행위가 아니라 목적을 내려놓은 반복행위에 주목한 것이 계기였다. 그래서 박서보의 묘법은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는 몸을 일정한 행위 속에 집어넣는 것에 가깝다.
캔버스에 흰색 또는 유백색 안료를 칠하고 아직 마르지 않았을 때 연필을 반복해서 긋는다. 연필이 지나가면 젖은 물감이 양쪽으로 밀리고 선이 꺾이는 곳에는 안료가 쌓인다. 따라서 선은 단순한 그래파이트 자국이 아니라 연필 + 물감 + 압력 + 속도 + 호흡의 흔적이다. 여기에서 박서보가 반복해서 말했던 ‘자기 비움’이 등장한다. 무엇을 표현하려 하지 않고 동일한 행위를 반복하면서 작가의 감정이나 의도를 최소화한다는 것이다. 박서보재단도 초기 연필묘법에서 연필선과 중성화된 흰색을 자아를 드러내는 수단이 아니라 자아를 비우는 도구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 '변하는 변하지 않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박서보가 계속 변화했다는 것이다. 박서보의 작업에서 한지가 본격적으로 들어온 시기가 1982년부터다.
물을 머금은 한지는 연필이나 도구가 지나갈 때 단순히 선이 그어지는 것이 아니라 섬유 자체가 밀리고 뭉친다. 화면이 평면회화에서 거의 부조(relief)처럼 변한다. 이것이 1980~90년대의 지그재그묘법으로 발전했다.
사진: 박서보 (Ecriture No. 230428) 2023 Pencil and oil on Chosunilbo newspaper on canvas 43.2 x 58 cm Courtesy of PARKSEOBO FOUNDATION and Kukje Gallery © PARKSEOBO FOUNDATION (박서보재단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
1990년대에는 지그재그가 정돈된 수직선과 고랑으로 바뀌면서 흑백묘법으로 발전하고, 2000년대에는 제주 풍경이나 자연에서 얻은 강렬한 빨강·노랑·초록·주황 등이 들어간 색채묘법으로 전환했다. 박서보는 이 색을 관람객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흡수하는 일종의 ‘치유의 색’으로 설명한다. 박서보는 말년(2019~2021년)에 1986년 이후 중단했던 연필묘법으로 돌아가 연필색채묘법을 만든다. 그리고 2022~2023년 45년 전인 1977년 파리에서 잠시 시도했던 신문지 작업을 다시 꺼내 마지막 연작으로 발전시켰다.
그래서 박서보 화업 50여 년 묘법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작가는 "형식은 계속 변했지만 ‘반복되는 신체행위를 통해 자아를 비우고 재료와 하나가 된다’는 원리는 변하지 않았다"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이번 전시 제목인 "변하는 변하지 않는"의 의미다.
박서보 작고 3주기 대규모 회고전: "변하는 변하지 않는"의 의미
국제갤러리의 이번 전시는 K1에서 연필묘법 → 한지 지그재그묘법 → 흑백묘법, K3에서 색채묘법, 한옥에서 연필색채묘법 → 신문지묘법으로 연결된다. 1967년부터 2023년까지 50여 년의 변화를 40점으로 압축한 구조다. 이 전시가 의미 있는 이유는 박서보를 단순히 ‘한국 단색화의 대표작가’라는 고정된 틀에서 꺼낸다는 것이다.
초기에는 캔버스와 연필, 그다음에는 한지와 물, 이어 색채와 고랑, 마지막에는 다시 연필과 신문으로 재료가 계속 바뀌었다. 박서보는 나이가 들면서 몸의 운동 범위가 줄자 작품 크기와 행위 자체까지 변화시켰다. 하지만 반복·신체·시간·재료·자기 비움이라는 근본 원리는 유지했다. 그래서 박서보에게 ‘변화’는 유행을 따라 스타일을 바꾸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번 전시가 1967년 연필묘법으로 시작해 2023년 신문지묘법으로 끝나는 구성은 특히 의미가 크다.
마지막 신문지묘법에서 박서보는 1977년에 잠시 실험했던 작업과 초기 연필묘법으로 되돌아온다. 즉 그의 작업은 직선적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연필 → 한지 → 색 → 다시 연필 → 신문 → 죽음 이라는 일종의 원환 구조를 완성한다. 그런 점에서 신문지묘법은 단순한 말년의 새로운 연작이라기보다, 박서보가 1967년부터 계속해 온 ‘묘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마지막 답으로 보는 것이 가장 흥미롭다.
박서보는 2023년 10월14일 92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2021년 90세의 나이로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 18일에는 서울 연희동에 박서보미술관이 개관됐다. 박서보미술관은 개관전으로 박서보와 베트남계 프랑스 작가 후앙 도딘의 2인전 '비움, 그 충만'이 열리고 있다. 고인의 작품은 뉴욕현대미술관(MoMA), 구겐하임미술관, 테이트 모던, 퐁피두센터, 홍콩 M+ 등에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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