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쾅쾅, 흙더미 덮쳐…눈앞서 옆집 언니 사라졌다”
[산사태 피해 속출]
경북 예천 등서 19명 사망 8명 실종
사흘간 최대 480mm 비 쏟아져… 귀농 60대 부부, 피신 중 부인 참변
펄 같이 변해… 실종자 수색 어려워
15일 집중호우로 인한 산사태가 발생해 주택 5채가 쓸려내려간 경북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 산비탈에서 경북경찰청 특공대원들이 이날 오후 실종자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예천=최원영 기자
“60년 넘게 이 마을에 살면서 처음 겪는 일입니다. 완전히 전쟁터네요.”
15일 오후 3시경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마을 입구에서 만난 주민 최병두 씨(64)의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산사태가 발생한 지 약 12시간이 지났지만 당시의 참혹한 광경이 계속 떠오른다고 했다. 최 씨는 “순식간에 토사가 마을을 덮치는데 재난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고 말했다.
마을 뒷산 주마산은 산사태가 발생한 지 한나절이 지났지만 여전히 진흙 색 물줄기가 폭포처럼 흘러내리며 마을 가운데를 관통하고 있었다. 물줄기는 성인 남성이 버티기 힘들 정도였다. 여러 채의 주택이 흙더미에 파묻혔거나 반파 상태였고 마을 곳곳에는 나무와 진흙, 돌무더기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 경북 북부 산사태 집중 발생
13일부터 경북 북부 지역에 내린 집중호우로 예천과 봉화 영주 문경 등 4개 지역에서 산사태 피해가 잇따라 발생했다. 경북도 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16일 오후 기준 산사태 등으로 경북에서 19명이 사망하고 8명이 실종된 상태다. 주민 17명도 부상을 입고 치료를 받고 있다.
경북 지역에는 13일 0시부터 16일 오전 4시까지 적게는 260mm에서 많게는 480mm의 비가 쏟아졌다. 경북소방본부 관계자는 “산악지대로 이뤄진 경북 북부 지역은 모래 성분이 많은 마사토가 많아 폭우가 내릴 경우 산사태로 이어지기 쉽다”고 말했다.
가장 큰 피해가 발생한 경북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에선 산사태로 인해 4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됐다. 15일 오전 5시경 마을 뒷산에서 거대한 산사태가 발생해 마을 주택 13채 가운데 5채를 집어삼켰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주민 박진녀 씨(71·여)는 “굉음과 함께 산사태가 일어나더니 흙더미와 바위 덩어리가 순식간에 옆집을 덮쳤다”며 “옆집 언니와 친했는데 눈앞에서 사라지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경북 예천군 벌방리 피해도 심각했다. 15일 오전 3시경 마을 뒷산 주마산에서 대규모 산사태가 일어나 2명이 실종됐다. 산사태로 인한 토사와 물줄기는 마을 전체 약 80가구 가운데 산 쪽에 위치한 10가구를 그대로 집어삼켰다.
지난해 3월 귀농한 A 씨(62)는 산사태를 피하는 과정에서 참변을 당했다. A 씨의 남편인 B 씨는 대피하기 위해 차에 먼저 오른 상태에서 토사에 밀려 내려오다가 이웃 주민이 차량 문을 열어줘서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이웃 주민 유재선 씨(67)는 “부부가 경기 수원시에서 최근 귀농했는데 잘 적응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친절해 ‘좋은 사람’이란 소리를 많이 들었다”며 안타까워했다. 경북 봉화군 춘양면에서도 산사태로 4명이 숨졌다. 춘양면 학산리에서 만난 박모 씨(63)는 “15일 새벽부터 바윗돌 굴러오는 소리가 나더니 산사태가 났다”며 몸서리쳤다. 경북에서 사망자나 실종자가 발생한 마을은 모두 15곳에 달한다.
● 펄밭으로 변해 수색작업 난항
산사태가 발생한 경북 각지에선 16일 소방대원, 경찰, 군인 등 2413명이 투입돼 구조 및 수색 작업을 펼쳤다.
수색 인력들은 철제 탐지봉과 손을 이용해 구조 작업을 진행했다. 수색견도 현장에 투입됐다. 한 소방대원은 “산사태로 쓸려내려온 토사가 마치 펄 같아 걷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북경찰청 특공대 관계자도 “탐지견이 차량 바퀴 등 일부 부품을 발견했지만 토사 유출이 심해 실종자의 경우 시신이 어디까지 떠내려갔는지 가늠이 안 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예천=명민준 기자, 예천=최원영 기자, 봉화=김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