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값에 파느니 전세나 월세로 돌리는 집주인이 많아요."
지난 12일 서울 동작구 흑석동 흑석한강푸르지오 단지 내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집값이 급락하면서 매물을 거둬들이고 전·월세로 돌리려는 집주인들의 문의 전화가 늘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표는 "급급매도 거래가 안 될 정도로 사실상 거래가 끊겼다"며 "그나마 실거주 수요가 있는 임대로 매매 물량을 돌리려는 집주인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가파른 금리 인상과 부동산 경기 위축 여파로 매도용으로 내놓았던 매물을 전·월세로 돌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집을 내놔도 팔지 않고, 집값이 가파르게 하락하면서 헐값에 파는 대신 전월세로 돌리는 집주인이 많기 때문이다.
잇단 금리 인상 여파로 주택 매수심리가 악화하면서 아파트 매물은 줄어든 반면 전·월세 물량은 급증하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12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 매물은 5만1869건으로, 한 달 전(5만67136건) 대비 -8.6% 감소했다.
반면 전세와 월세는 모두 증가했다. 전세는 5만3256건으로, 전달(5만898건) 비해 4.6%, 월세는 3만555건으로, 전달(2만9964건) 비해 1.9% 증가했다. 금리 인상에 따른 대출 이자 부담 증가와 거래절벽 등의 영향으로 매매를 전월세로 전환하는 수요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전세자금대출 금리가 올해 들어 연 7%까지 치솟으며 월세 선호현상이 짙어지면서 서울 아파트 월세 비중이 처음으로 40% 돌파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날까지 서울 아파트 전체 전·월세 거래(20만8315건)에서 월세 계약이 41.7%(8만6889건)로 집계됐다. 서울 아파트 월세 비율은 2020년 31.4%, 지난해 38.5%로 해마다 늘고 있다.
아파트 값에 상관없이 서울 전역에서 월세 선호가 뚜렷해지고 있다. 중저가 아파트가 밀집한 노원구 월세 비율은 지난해 33.3%에서 올해 38.1%로 상승했다. 집값이 가장 비싼 강남구의 월세 비율은 46.4%였다.
또 서울 전체 주택 전·월세 거래에서 월세 비율은 1년 만에 약 5%p(포인트) 올라 48.9%로 집계됐다. 단독·다가구 주택은 월세 거래가 67.3%에 달했다.
실제 서울과 경기도에서 월세 거래량이 크게 증가했다. 서울시 부동산 정보광장에 따르면 서울시 아파트의 월세 거래량은 올해(1~11월) 8만5301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 거래 건 수(7만2362건) 대비 17.8%가 늘어났다. 또 경기부동산포털 자료에 따르면 경기도는 같은 기간 아파트 월세 거래가 12만5333건으로 집계됐다. 전년(9만3508건) 대비 무려 34%가 증가한 수치다.
월세도 꾸준하게 오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10월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10월 전국 아파트 월세가격지수는 0.05% 상승했다. 0.22% 상승을 기록했던 지난 7월 이후 3개월 연속하락 폭이 줄었으나, 여전히 오르고 있다.
부동산 시장에선 자금 부담이 없는 집주인이 호가를 내리지 않고, 매매를 임대로 돌리려는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집값 하락이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급하게 목돈이 필요한 집주인을 제외하고 매매 대신 보증금이나 월세를 받으며 시장을 관망하는 집주인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거래가 위축되면서 매매에서 전월세로 전환하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금리가 급격하게 인상되면서 주택 매수 대기자들의 관망세가 짙어지자, 호가를 무리하게 낮춰 집을 파는 대신 임대차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집주인이 늘었다"며 "세입자 입장에서 금리 인상에 따른 대출 이자 부담으로 월세를 선호하면서 전세 매물이 꾸준히 쌓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잇단 금리 인상 이후 꼭 팔아야 할 이유가 없는 집주인 입장에서 매매를 임대로 돌리고, 시장을 좀 더 관망할 가능성이 크다"며 "전세대출 금리가 오르면서 전세 매물이 적체되고, 전셋값 하락으로 이어지면서 앞으로 역전세난이 심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