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대림 제2주간 수요일
이사야 40,25-31 마태오 11,28-30
오늘 독서에서는 하느님의 위대함과 능력을 강조합니다.
“그분께서는 능력이 크시고 권능이 막강하시어, 하나도 빠지는 일이 없다.
…… 주님은 영원하신 하느님, 땅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피곤한 줄도 지칠 줄도 모르시고, 그분의 슬기는 헤아릴 길이 없다.”
자만은 눈을 멀게 하여 인간의 나약함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예언자는 각자의 삶과 온 세상에 드러나는
하느님 사랑의 작품을 보도록 우리의 눈을 들어 올리라고 말합니다.
이런 시선은 스스로 안전과 위로를 줄 수 있다고 여기는
자기 숭배에 빠지지 않게 해 줍니다. 우리 자신의 첫 ‘우상’은 곧 ‘나’입니다.
나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다고 여기고는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 모든 것을 내맡기는 사람은 도움과 위로, 지지와 힘을 받습니다.
젊은이나 어른 모두 오로지 하느님만을 신뢰하라고 권고합니다.
“주님께 바라는 이들은 새 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간다.
그들은 뛰어도 지칠 줄 모르고, 걸어도 피곤한 줄 모른다.”
창조주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보루이시고 우리의 도움이십니다.
삶의 수고 안에서 절망하지 않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면
그분 현존에 맞게 걸어가는 새로운 힘을 얻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을 보여 줍니다.
그분의 권능과 능력을 말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 가운데 한 사람으로 단순하게
제시되십니다. 하느님 자비의 최고 표현은,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 되시기를
바라셨고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모습을 온전히 함께 나누기를 바라셨다는 데에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당신 친밀감으로
들어 높이시려는 예수님의 계획은 무한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전주교구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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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만 미카엘 신부
대림 제2주간 수요일
이사야 40,25-31 마태오 11,28-30
십자가를 지고 주님께 의지하고 맡기면 됩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오늘 복음의 시작입니다.
우리 중에 그 누구도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는 주님의 초대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각자 나름대로 삶의 무게에 힘겨워 하며,
때론 비틀거리기까지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초대에 응하지 않느냐는 각자의 선택입니다. 초대에 응하는 사람은 압니다.
주님과 진솔한 관계 안에서만이, 삶에서 우러나오는 작고 큰 짐들을 기꺼이, 그리고 즐거이
지고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성경은 이어집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렇습니다. 주어진 십자가를 메고 주님께 의지하고 맡기면 됩니다.
그러면 십자가는 가벼워집니다. 주님의 말씀은 계속 이어집니다.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주님께서 나에게 지워 주시는 멍에와 집은 궁극적으로 나를 자유롭게 해 줍니다.
보람찬 일을 할 때, 힘이 생기면서 마음이 뿌듯해지는 원리와 비슷합니다.
주어진 십자가를 주님의 이름으로 걸머지면 주님의 죽음과 부화의 신비를 깨우치게 됩니다.
삶의 무게, 내 삶의 짐, 나의 십자가가 주님으로 인해 가벼워져서,
즐거이 지고 갈 수 있는 하루가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서울대교구 홍성만 미카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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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안토니오 신부
대림 제2주간 수요일
이사야 40,25-31 마태오 11,28-30
예수님의 뜻과 일치되는 삶
철부지 아이 같은 나의 투정을 언제나 말없이 받아 넘기고 부드러운 미소로 날 반기는
그대는 내 인생의 동반자
그대 따스한 눈길로 나를 바라볼 때면 내 마음의 샘터엔 행복이 가득
목마른 꽃잎 위에 촉촉한 이슬 당신은 그런 사람이에요
가수 엄선영씨가 부른 ‘내 인생의 동반자’란 대중가요의 노랫말입니다.
우리들은 이 노랫말처럼, 어쩌면 우리의 삶 자체가 아름다운 인연의 끈을 맺기 위한,
평생의 동반자를 찾아 떠나는 여정의 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들은 인생의 동반자를 찾기 위한 힘겨운 여정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까? 바로 우리들이 힘들고 지칠 때,
기대어 위로를 받고 편안한 쉼을 얻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인생의 동반자를 곁에 두고도 찾지 못하고,
멀리서만 찾아 헤매고 있는 우리들에게,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라고 말씀하시며,
바로 당신 자신이 우리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동반자는 곁에 있는 사람과 보폭을 맞추며, 같은 곳을 향해 서로 의지하며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함께 동행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서로 맞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 헤어지고 말 것입니다.
이처럼 스스로 힘겨워하는 우리들에게 먼저 손 내밀며 우리들의 동반자가 되어주시겠다고
다가오신 예수님과 우리들이 언제나 함께 하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예수님의 뜻과 일치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과연 예수님의 뜻과 일치되는 삶은 어떠한 삶이겠습니까?
제가 얼마 전 한 요양병원에 병자 방문을 갔다가
그 곳에 쓰인 글귀가 너무 좋아서 메모해서 온 것이 있는데,
바로 이 글귀 속에 들어있는 삶의 모습이
예수님의 뜻과 일치되는 삶이 아닐까 해서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마음씨 따뜻한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가슴이 넉넉한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은 먼저 남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용기있는 사람은 용서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사람은 삶을 성실히 가꾸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사랑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은 이 모든 것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에게 언제나 손 내밀며 다가오시는,
우리들의 동반자이신 예수님과 함께 아름다운 동행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 역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아멘.
수원교구 김현 안토니오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에서 참조
가톨릭 사랑방 catholicsb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