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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사정(이라고 해봐야 음주)에 의하여 이제야 8탄을 올립니다.
8. 인도로 가는 길
항공기를 타기 전에 점심을 먹었는데 머지않아 후회를 하게 되었다. 바로 항공기가 순항비행상태에 들어가자마자 기내식이 나왔던 것이다.
그 말로만 듣던 기내식... 두둥...
우리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기내식을 기다렸다. 마침내 스튜어디스가 기내식을 가지고 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뭐라고 영어로 예기를 했다. “???” 나는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다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Sorry?" 그러자 스튜어디스는 Vegetable? Nonvegetable? 이라고 다시 물어보았다. “아하~!” 뭔가 했더니 채식이냐 육식이냐를 물어보는 것이었다. 언뜻 인도에는 채식주의자를 위해서 식단이 나뉘어져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는 잽싸게 Nonvegetable 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아직도 무슨 예기인지 잘 못알아듣고 있는 그놈한테 이야기했다. “비싼돈 주고 비행기 타서 기내식으로 풀뿌데기를 먹을 수는 없지” 당연히 그놈도 Nonevegetable을 선택했다.
어차피 인도에서 먹는 고기는 몇 가지 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무슨 고기가 나올지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인도에는 통상적으로 종교들이 어느 특정한 동물들을 신성시 하는데 아무리 채식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이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있는 상태에서 아무 고기나 준비한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난리가 날 수도 있다. 결국 인도에서 주로 먹는 고기는 닭고기와 양고기였는데 양고기의 경우는 닭고기보다는 접하기가 힘들고 싫어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어서 닭고기가 나올 것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기내식은 아기자기하게 생긴 그릇에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주었다. 지금은 사진이라도 찍어 올 걸 그랬다고 후회하고 있다. 이것저것 주는 것을 다 받아놓고 보니 의자에 붙어있는 테이블에 다 올리기도 힘들었다. 열심히 자리 선정을 한 끝에 겨우 다 올려놓을 수 있었다. 빵에 커드, 음료수, 물, 디저트, 주식, 야채, 컵과 함께 수저와 물수건, 티슈, 향신료 등이 들어있는 비닐봉지가 가득 나왔다.
주식으로 나온 닭고기와 쌀밥요리는 따끈따끈했다. 과일은 싱싱했고 먹음직스럽게 썰어져 나왔다. 드디어 열심히 먹는 일만 남았는데... 그 맛이란 것이 참으로 독특했다. 야채나 과일이야 다 똑같겠지만 주식의 맛은 적응 안 된 특이한 것이었고 나는 먹으면서 익숙해져서 다 먹었지만 나는 그놈이 먹는 것을 도와 줘야만 했다. 문제는 커드였다. 요플레와 비슷한 커드는 신맛과 단맛이 더 강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놈이 뜯고 한 입 떠먹는데 그 표정이 가관이었다. 나는 그놈의 죽을 것 같은 표정을 보고 불안해져서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먹어도 될 것 같냐?” 그놈이 대답했다. “먹어봐” 나는 조금... 아~주 조금 무슨 독약이라도 되는 양 떠먹어 보았다. 역시 그 맛이란 대단한 것이었다. 결국 내 것은 뜯지 못했고 나중에 인도에 가서 혹시라도 그 맛이 익숙해졌을 때 다시 시도해 보기로 했다. 무모하게 도전해 볼 수 있는 맛이 아니었다. 결국 이 커드는 2일 후 뉴델리에서 숙소를 옮길 때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그러나 인도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때 먹었던 이와 비슷한 수준의 기내식은 그렇게 맛있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식사를 마치자 스튜어디스가 식기들을 가져가고 커피를 내 왔다. 차와 커피 중 골라먹을 수 있었는데 나는 차를 택했다. 그냥 밍숭맹숭한 홍차였다. 엄청나게 배가 불렀다. 햄버거 셋트메뉴를 먹고 한 시간 반도 채 안돼서 다시 밥을 먹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디저트로 홍차까지 끝내버린 후 만족스런 얼굴로 앉아 있는데 다시 스튜어디스가 뭔가를 끌고 나타났다.
이번엔 쥬스였다. 빵빵해진 배를 부여잡고 저거 못 먹으면 왠지 손해 본다는 느낌에 무엇이 있는지 두리번거렸다. 여행 전에 입수된 정보에 의하면 비행기에서 술도 주는데 항공기에는 산소가 희박하므로 평소처럼 먹다 보면 강아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인도는 술이 거의 금기시 된 나라이다 보니 이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스튜어디스가 앞에 앉아 있는 아저씨에게 건네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오렌지 쥬스, 코크, 와인, 위스키라는 것이었다. 앞자리에 앉은 한 아저씨는 와인을 주문했다. 작은 과자 두 봉지와 와인과 잔이 건네졌다. 오호~ 술까지 있단 말이지... 한 두 시간 가야 되는 것도 아닌데 술 한 잔 먹고 자면서 가자는 생각으로 나는 내 차례가 오기도 전에 벌써 위스키를 찜해 놓고 있었다. 스튜어디스가 드디어 우리 자리로 다가오고 과자를 그놈과 나에게 두 개씩 건네주었다. 땡큐를 연발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과자를 받아 들었고 그놈은 오렌지 쥬스를 주문하고 나는 위스키를 주문했다. 스튜어디스는 오렌지 쥬스를 따라주더니 고개를 숙이고 아래쪽에서 뭔가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일단 스튜어디스는 얼음을 한 컵 따라주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컵에 위스키를 1/4쯤 따라서 건네주더니 또 한 컵을 똑같이 따라주었다. 졸지에 내 테이블에는 또다시 과자와 컵들이 넘쳐나기 시작했고 그 스튜어디스는 과자 두 봉지를 더 건네주고 나서야 뒷자리 쪽으로 옮겨갔다. 테이블이 좁아서 무릎위에까지 과자를 올려놓고 주체를 못하고 있자 그놈이 웃긴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과자 몇 개를 짐칸의 가방에 쑤셔 넣고 간신히 자리 정리를 하고 앉아서 발렌타인 마스터스를 음미했다. 뭐 내가 위스키 맛을 아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많이 먹어본 것도 아니지만 다 그게 그것처럼 느껴졌다. 나중에 올 때는 와인을 주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왕 두 잔이나 줬으니 나는 한 잔을 그놈에게 권해줬지만 그놈은 싫다고 했다. 그놈은 정말 술을 잘 못 먹는 놈이었다. 그러나 그놈의 성격에 걸맞게 그 술자리에 여자가 몇 명이 있느냐와 분위기에 따라 주량은 들쑥날쑥 했다. 아닌게아니라 두 잔을 먹고 나자 평소보다 좀 더 어지러운 것도 같았다.
바깥을 내다봐도 보이는 건 구름과 바다밖에 없고 간간히 섬도 보이기도 했지만 아주 자세히 보지 않는 이상 바다와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섬이 너무 작아서가 아니라 섬이 크게 보이더라도 공기가 탁해서 바다와 육지의 색깔구분 자체가 힘들었다.
그놈과 둘이서 앞으로 가볼 도시들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가이드북을 펴들었다. 델리에 도착하면 시간이 늦을 것이므로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대로 공항의 잘 수 있는 대기실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침에 프리페이드 택시를 타고 나오기로 결정했다. 그 시간에 무리해서 시내로 나가려고 하다가는 봉변을 당할 수도 있고 델리에 가서도 시간이 늦어서 숙소를 잡기도 힘들고 비싸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최대한 안전하게 공항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육지가 조금 가까워졌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래로는 바다에서 배가 지나가면서 흰 항적을 그리고 있었고 잘 정돈된 시가지와 현대적인 건물들이 보였다. 잠시 후 안전벨트 램프가 들어오자 스튜어디스들이 승객들의 안전벨트 착용여부를 점검했고 기장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뭐라뭐라 홍콩 어쩌구 하는걸 보니 홍콩에 다 왔다는 예기였다.
항공기 주날개의 슬랫이 내려가고 잠시 후 플랩이 내려갔다. 지상과 상당히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플랩이 완전히 내려가고 잠시 후 기어가 쿵쾅대며 내려갔다. 기장이 기내방송 스위치를 안 내렸는지 관제탑과 교신하는 소리가 잠깐 들리고 공항의 담벼락이 지나갔다. 이윽고 기수가 약간 들리는 느낌이 들고 다 내려왔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쿵 하고 충격이 전해져 왔다. 나는 깜짝 놀랬다. 한국에서 여객기를 탔을 때와는 달리 엄청나게 하드한 랜딩이었던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다른 나라에 왔다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좀 이상했다. 랜딩기어가 닿자마자 항공기는 스포일러가 올라가며 역추력장치를 가동했고 곧이어 휠 브레이크까지 작동시키며 매우 빠르게 감속되었다. 활주로를 거의 절반 정도밖에 쓰지 않은 듯 했다. 항공기의 제동능력과 기장의 터프한 조종실력에 감탄하고 있을 때 홍콩 국제공항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구글어스에서 대략적인 지형들은 파악하고 있었지만 직접 보니 공항은 엄청나게 컸다. 인천국제공항보다도 훨씬 더 큰 것 같았다.
항공기가 주기장에서 멈추자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홍콩은 비자가 필요 없어서 보통 다른 나라 갈 때 스톱오버라는 것을 한다고 했다. 이게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냥 항공기에서 내려서 놀다가 같은 노선의 다른 항공기를 타고 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을 진작 알았더라면 그렇게 했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런 것이 있는 줄도 몰랐기 때문에 스톱오버 한다고 내리는 사람들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내리고 난 후 항공기의 도어가 덜커덩거리며 열렸고 스튜어드들이 좌석 위의 모든 짐칸을 열었다. 스튜어드들이 짐칸을 열고 지나가자 홍콩인으로 보이는 보안요원들이 거울 등을 동원해서 보안점검을 하고 보안점검이 끝난 짐에 스티커를 붙이고 승객들에게도 스티커를 붙였다. 누군가 항공기가 중간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시간이 있다면 공항을 한 바퀴 둘러봐도 괜찮다고 했는데 승객들에게 스티커를 붙이는 것을 보면 안 나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놈의 누나도 웬만하면 돌아다니지 말고 그냥 비행기에 붙어 있으라고 충고해 주었었다. 또 한쪽에서는 진공청소기와 비닐봉지를 끌고 나타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기내를 청소하고 다녔다. 항공기 밖에서는 정비사들이 항공기를 둘러보고 있었고 화물 관리요원들은 연신 짐을 내리고 올리고를 반복하는 등 매우 분주한 모습이었다.
그 보안요원들이나 청소요원들의 모습은 몇 번 보았던 홍콩 영화의 그것과 매우 흡사한 것이 재미있었다. 말투나 생김새는 딱 영화에서 보았던 이미지와 들어맞았다. 어느 한 보안요원은 고등학생 정도 나이밖에 되어 보이지 않았는데도 어깨 위의 견장을 보면 나이 지긋한 아저씨들보다도 높았다. 그놈은 원래 홍콩 여자들이 젊어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한바탕 보안요원들과 청소요원들이 기내를 휩쓸고 지나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인도까지 함께 가게 될 승객들이 탑승하기 시작했다.
과연 인도로 들어가는 비행기에는 인도인들이 많았다. 한 눈에 보기에도 그간 인도에 관련된 사진에서 보는 바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부티나 보이는 인도인들이 우르르 올라탔다. 그 중에는 홍콩에서 스톱오버를 하고 이제 인도로 들어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인도 서민의 경제적 능력을 대충 생각해 볼 때 국제선 항공기 탑승이라는 것은 매우 부담되는 것에 틀림이 없다. 따라서 나는 그 인도인들은 인도인들 중에서도 상당한 경제적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고 그놈도 이에 동의했다. 기다리는 시간은 다소 지루했다. 승객들이 몰려들자 항공기는 거의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곧이어 예의 그 안내방송과 스튜어디스의 설명 안전벨트 착용 지시가 떨어지고 항공기는 재차 시동을 걸었다. 나는 항공기가 최대 출력을 낼 때의 그 느낌을 매우 좋아한다. 살짝 뒤로 쏠리는 듯한... 처음에 비행기를 탔을 때 느꼈던 그 느낌은 매우 독특한 것이었다. 처음 항공기를 탔을 때 항공기가 두둥실 떠오르고 아주 잠깐 고소공포를 느꼈다. 불과 2~3초... 그 시간이 지나가자 고소공포가 느껴지지도 않는 고도로 항공기는 순식간에 상승해갔다. 지상구조물과 건물들, 항공기가 지상에서 재빠르게 지나가다가 항공기가 떠오르고 10여초가 지나면 거짓말같이 항공기가 공중에 정지해 버린 듯 했다. 항공기는 다시 이륙했다. 홍콩의 시가지와 도로가 보였다. 한국과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았지만 뭔가 좀 색다른 것 같았다. 항공기 안은 사람들이 많아져서인지 웅성거렸다.
스튜어디스들이 다시 기내식을 나누어 주었다. 시계를 보니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 홍콩시간으로 환산해 보아도 저녁 먹을 시간이었다. 기내식을 먹고 나니 밖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어둑어둑해지고 난 후 해는 금방 사라져 버렸다. 노을에 비치는 날개가 인상적으로 보여서 사진을 두어 장 찍어 두었다. 나는 예전에 고공에서 하늘을 보면 별이 엄청나게 많이 보인다고 해서 해가 지고 난 후에 보일 별들에 대해서 내심 기대를 많이 하고 있었다. 그러나... 별은 달랑 세 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늘을 보는 것도 포기하고 앉아 있는데 그놈은 우리 복도 건너 뒷자리에 앉아 있는 아줌마와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아줌마는 인도에 가본 경험이 있었던 듯 인도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이야기들은 우리가 인도를 여행함에 있어서 무엇인가 결연한 다짐을 하게 만드는 그런 것들이었다. 그 아줌마는 인도가 무지막지하게 지저분하며 특히 그 중에서도 바라나시의 지저분함을 최고로 쳐주고 있었다. 잽싸게 가이드북에서 바라나시를 찾아보았다. 바라나시는 우리도 가기로 마음먹은 도시였기 때문이다.
바라나시는 인도 최고의 성지로서 우리가 겐지스강이라고 알고 있는 강가가 흐르고 있는 성지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바라나시를 보지 못하면 인도를 보지 못한 것이며 바라나시에는 인도의 모든 것이 녹아 있다고 했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인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베나레스라는 도시를 알고 있을 것이라며 나로 하여금 뜨끔하게 쓰여져 있었다. 나는 베나레스라는 도시는 평생에 단 한 번이라도 들어본 기억이 없었다. 처음에 강가라고 해서 한글을 표현한 것인 줄 알았는데 강 이름이 강가(Ganga)였다. 겐지스강은 어디서 굴러먹다 온 이름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인도에서 사용되고 있는 정식명칭은 지도에도 나와 있듯이 강가였다.
그 아줌마는 인도에 대해 이야기해 주면서 우리를 고생길이 훤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줌마는 가이드북과 여행정보를 수집하면서 보았다시피 기차 여행을 하게 되면 반드시 쇠사슬로 짐을 묶어야 한다고 충고해 주었고 거지를 보더라도 함부로 돈을 주지 말라는 등의 여행시에 주의해야 할 것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이런 정보는 손쉽게 얻을 수도 없으며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정보라고 생각했게 때문에 주의깊게 들었다. 각종 여행사에서 볼 수 있는 글이나 가이드북, 그리고 여행기 등은 인도를 엄청나게 매력적이고 환상적인 곳으로만 포장을 해 두었기 때문에 나는 이것들에 대해 믿음이 가지 않았었는데 현지에서 살아본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마치 전투교범만 들여다보다가 수없는 실전을 격은 역전노장들이 목숨을 걸고 깨달아낸 주옥같은 경험담과 같은 것이었다. 이 아줌마의 이야기는 우리만 듣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어느 샌가 우리 뒤에 앉은 커플들도 같이 듣고 있었다. 그 아줌마는 바라나시로 가는데 공항으로 아는 사람들이 마중을 나온다고 했다.
신나게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는데 스튜어디스들이 종이를 나누어 주었다. 바로 인도의 출입국 신고서였다. 어디에선가 해외여행을 할 때 비행기에서 보는 영어시험이라고 표현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그 양식을 한 번 눈여겨보고 프린트까지 해온 터라 걱정이 없었는데 그 프린트물을 군장에 넣고 짐칸으로 보내 버리는 바람에 결국은 전자수첩을 동원해 가면서 적을 수 밖에 없었다. 일순간 기내는 인도인들의 웅성거림에 더해 한국인들의 동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프로페셔널하게 쓸 것이라고 짐작했던 그 아줌마도 여기 저기에 컨닝을 하기에 바빴고 나는 전자수첩으로 열심히 내가 무엇을 써야 하는지를 찾아냈다. 결국 그 커플과 아줌마, 앞에서 갑자기 소란스러워진 여행사를 통해서 여행을 가던 아저씨들을 제치고 내가 가장 빨리 출입국 신고서를 작성할 수 있었다. 이것은 매우 자랑스럽고 뿌듯한 것이었다. 비록 세상에 둘도 없는 악필이었지만 내 출입국 신고서는 손에 손을 통해 이리 저리로 옮겨다녔고 그놈과 아줌마, 우리 뒷자리의 한국인 커플들도 출입국 신고서를 작성할 수 있었다. 우리가 출입국 신고서를 다 작성하고 나자 잠시 후 소란스러웠던 앞자리 아저씨들도 사태가 수습이 되었는지 다시 잠잠해졌다.
다시 기내는 인도인들이 떠드는 소리로 메워졌다. 그 아줌마의 앞자리에 앉아 있던 친구들 사이로 추측되는 인도 젊은녀석들은 걸신이 들렸는지 연신 스튜어디스를 붙잡고 먹을 것을 시켜먹고 있었다. 스튜어디스는 연신 기내식과 맥주, 음료수, 과자 들을 날라댔고 아무래도 그놈들은 비행기 삯을 먹을 것으로 뽑아내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놈들의 테이블에는 먹다 남은 기내식과 맥주캔 서너개와 과자봉지들이 있었고 몇 개는 기내 바닥에서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놈들의 식성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그 때는 그냥 많이 먹는다고 생각했지만 인도인들은 상당히 소식을 했던 것이다. 우리가 인도에서 돌아다닐 때 들렀던 인도 식당 주인들 중에 몇 명은 내가 항공기에서 인도 녀석들을 봤던 그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었다.
한참을 지나자 지상에 불빛의 무리가 보였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대략 착륙 1시간 30분 전이었다. 시간상 저 불빛은 분명히 인도의 불빛이었다. 우리가 들러야 할 도시 중에 하나일 수도 있었다. 도시를 바라보고 있는데 번쩍 하는 불빛이 보였다. 깜짝 놀라서 다시 그곳을 보고 있는데 구름 속에서 번개가 치고 있는 것이었다. 인도의 날씨는 알아보지 않았으나 지금은 가이드북에서 본 바로는 인도의 우기인 몬순이 지나고 강수량이 떨어지면서 건기로 접어드는 시기였다. 번개가 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조금 걱정이 되었다. 아무리 판쵸우의를 가지고 왔다고 하더라도 비가 내려서는 숙소를 잡는 것 자체도 고생스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구름은 엄청나게 컸는지 비행기가 30분을 날아가도록 계속 번개가 치고 있었다. 고개가 아플 정도로 밖을 내다보았다.
인도의 땅이 보이자 새로운 각오와 투지가 솟아올랐다. 마치 전투에 참가하기 전의 전사처럼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에 대한 불확실성과 긴장감으로 손에 잡힌 무기를 꽉 거머쥐는 것처럼 말이다. 과연 우리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두놈 다 중학교 1학년에 영어라는 과목을 포기했으며 현재 나름대로 공신력이 있다고 평가되는 토익 시험에서 300점 이하의 놀라운 영어실력, 달랑 한 권의 가이드북. 도저히 해외여행을 할 수 있을만한 전력이 아니었다. 전자수첩이 망가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아는것도, 가진것도 쥐뿔도 없이 무모하게 뛰어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이미 비행기를 돌려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는 현실에 나는 불타오르고 있었다. 뭔가 인도에 대한 적개심같은것 까지도 불타오르는 느낌이었다.
내가 예전에 가지고 있던 인도에 대한 이미지들은 요가를 하고 앉아 있는 검은 피부의 사람들과 수많은 신을 섬기는 사람, 수행하는 사람들로 가득찬 나라, 강가에서 성스럽게 목욕을 하고 빨래를 하는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더운 나라라는 것이었다. 인도에 가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고 인생을 돌아볼 수 있으며 수많은 정신적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내가 느끼고 있던 이러한 인도의 이미지 중에 그다지 부정적인 생각은 없었다. 가난한 것은 부정적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문제였고 지저분하다는 것은 그다지 부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아줌마의 철저한 현실 속의 인도는 나의 이런 환상을 조금이나마 깰 수 있게 만들었다.
이윽고 착륙할 시간이 다가왔고 다시 안전벨트 착용 램프가 들어오고 스튜어디스들은 승객들의 안전벨트 착용 여부를 확인했다. 항공기의 고도가 낮아지고 거대한 델리의 시가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오렌지색의 수많은 점들이 밤이 되면 정전이 된다는 사전정보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광활한 면적에 퍼져 있었다. 시가지를 이동하는 자동차의 행렬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고 강이 그 도시를 관통하고 있었다. 항공기의 랜딩기어가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고 긴장감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항공기는 다시금 큰 충격과 함께 지상으로 안착했다.
한국 시간으로 00시 35분, 인도 현지 시각으로 21시 05분, 드디어 그놈과 나는 인도에 도착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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