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스플리트 같은데?"
"그래? 그런가?"(영화 초반 15분쯤)
"맞네. 스플리트!"(영화 중반 60분쯤)
영화 줄거리나 배우보다 촬영 장소가 매혹적이어서 끌리는 경우가 있다. 이탈리아 아말피 해변의 아트라니(Atrani) 마을 풍광을 멋지게 담은 넷플릭스 시리즈 '리플리 더 시리즈'가 그랬고, 이 스릴러 영화 '위크엔드 어웨이'(사라 앨더슨 원작, 킴 패런트 연출, 레이튼 미스터와 크리스티나 울프 주연, 2022)를 넷플릭스 창고에서 꺼내 보며 아내와 나는 스플리트의 풍광을 떠올리며 주인공들에 감정을 이입했다.
발칸 반도에 자리한 크로아티아 스플리트는 아름다운 항구 도시다. 나와 아내가 이 도시를 함께 찾은 것은 아니다. 나는 크로아티아 내전이 끝난 지 4년이 지난 1999년, 국내 레저 담당 기자들의 팸투어에 초청돼 9박 10일인가 일정으로 이 나라를 찾았다.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 때인데 크로아티아 관광청이 한국인들의 발길을 붙들려 국내 기자들을 초청한 것이었다.
그 덕에 두보르니크와 수도 자그레브 외에도 플리트비체와 스플리트 등을 돌아볼 수 있었다. 스플리트로 향하는 해안도로를 달리며 아드리아해의 푸르디 푸른 물빛을 내려다 본 기억은 지금도 또렷하다. 그 도시의 어느 건물에 들어갔을 때 남성 소변 변기가 우리 것보다 40~50cm쯤은 높아 키가 작은 일부 기자들이 당황하던 기억도 새롭다. 고대 티탄 족 전설이 이곳에서 생겨난 터라 호텔 객실의 전등 스위치가 2m는 족히 넘어 신기해 했던 기억도 있다. 거리를 지나면 키가 178cm인 나보다 커 보이는 여성들을 적잖이 발견할 수 있었다.
아내는 2020년쯤에 친구들과 두보르니크 가는 길에 들러 하룻밤을 유했다고 했다. 아무튼 두 사람 모두 수도 자그레브나 두보르니크보다 조금은 한적하고 여유로운 이 고대 도시를 언젠가 다시 찾겠다고 마음 먹었던 터다.
이 도시와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를 떼놓을 수 없다. 그는 305년 황제 자리에서 물러난 후 313년 죽을 때까지 이 도시에 머물렀다. 295년과 305년 사이 이곳에 궁전을 지었는데 바다를 향하는 두께 2m, 높이 22m의 벽과 북쪽을 향하는 높이 15m의 벽이 남아 있다. 원래 이 궁전에는 4개의 성문과 16개의 탑이 있었는데, 그중 3개의 탑만이 남았다.
653년 이 시 최초의 주교가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영묘를 대성당으로 바꾸었는데 이 성당은 훌륭한 프레스코, 대리석으로 만든 설교단, 로마네스크 양식의 조각물로 유명하다. 이 궁전을 박물관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시 중심에 그대로 둬 자유롭게 관광객들이 드나든다.
베네치아풍의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시청사는 민속학 박물관으로 쓰인다. 메인 광장의 서쪽과 남쪽에는 중세 시가지가 확대되면서 생긴, 미로처럼 얽힌 가로망을 갖는다. 벨프리 교회의 성모 마리아 종각은 달마티야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영화를 보면 스플리트의 자랑거리인 이곳들이 모두 등장한다. 감독이 멋진 스플리트 풍광을 더 화려하게 잡아내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베스(미스터)는 오랜 친구 케이트(울프)로부터 주말을 멋진 휴양지에서 보내기로 하고 스플리트에 당도한다. 조신한 성격인 베스는 몸도 피곤해 쉴 요량이었는데 활달한 케이트의 강권으로 나이트클럽을 찾게 된다. 술도 잘 마시지 않는데 약물을 탄 술을 마시는 바람에 정신을 잃고 다음날 일어나보니 숙소에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다. 케이트가 돌아오지 앉아 경찰에 신고했는데 경찰은 당최 열심히 찾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다 케이트 시신이 발견된다.
나이트클럽에서 베스와 케이트를 태우고 온 시리아 난민 택시 기사가 베스의 힘이 돼준다. 그런데 이 남자, 과연 믿을 수 있을까? 나이트클럽에서 케이트와 베스에게 추파를 던지며 숙소까지 따라 온 두 남자가 범인일까? 아니면 아내 친구인 케이트와 불륜 사실이 들통 난 남편이 밤새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범행을 저지른 것은 아닐까?
초반에 베스가 자기 주도적이지 않은 여성으로 그려지다가 종반 심지를 갖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에 던져진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것을 보며 왔다갔다 한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하지만 아주 뛰어나지도, 아주 못 만든 작품도 아닌, 그럭저럭 흥미롭게 만들어진 짜임새로 시간 때우기에 상당히 적합한 스릴러물이다.
우리 부부의 관심을 끈 대목은 이제 서른 살이 된 딸아이와 아내가 2000년대 초반 열심히 봤던 시리즈 '가십걸'의 주인공이었던 미스터가 이중적이면서 모호한 베스의 캐릭터를 잘 살려내고 있는 점이었다. 그 배우가 시나브로 저렇게 성숙해졌나 하는 생각이다. 더불어 우리가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도 품게 된다.
스플리트란 도시를 주인공으로 보고 극 전개를 따라가면 색다른 재미를 느낄 것이라 감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