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금년 들어 구리 9단이 도요타배, LG배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중국바둑은 한껏 고무되어 있었다. 특히 LG배에서 구리 9단이 이세돌 9단에게 2:0 완승을 거두면서 우승을 차지하자 한국과의 격차를 좁혔다고 생각했다.
한중싸움은 줄곧 중국이 한국의 뒤를 추격하는 입장이었으나 구리가 이창호-이세돌을 추월하는 기미(?)를 보이면서 5년 이내에 한국을 완전 추월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벌어진 후지쯔배 결과를 두고 중국바둑계에 이제 구리 9단에게만 의지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나왔다. 후지쯔배 사상 최대인원인 7명이 출전한 중국은 본선1,2회전을 치르면서 한국, 일본에 고전하면서 최종 8강에 창하오 9단, 박문요 5단만이 생존했다. 특히 콩지에 7단, 구리 9단이 모두 고노린 9단에게 패한 것은 약간 충격으로 받아들여 진다.
또한 중국천원전에서 구리 9단이 천야오예 9단에게 0:2로 완패를 당하면서 그런 우려의 목소리는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됐다.

개인전 성격이 강한 바둑에서 중국이 구리 9단 한 사람만의 독주로 한국을 추월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중국 네티즌들의 지적도 적지않다.
최근 4년간 삼성화재배, LG배 등 주요 세계대회 4강 진출를 보면 한국이 39명, 중국이 35명으로 근 차이를 보이고 있지 않다. 과거 한때 세계대회를 독식했던 때와 비교하면 그 격차가 현저히 줄어든 것은 확실하다.
또한 지난 해 2008년 중국갑조을조리그, 세계대회 통합예선, 마인드스포츠대회, 국제신예교류전 등 국내외 공식, 비공식 모든 대국에서 한국 vs 중국 기사가 맞대결을 펼쳐 한국이 123승 179패(자료:위기천지 2009년 3~4기)로 승률 41%를 기록하고 있다.
물론 123:179라는 차이는 한국이 주최하는 세계대회의 통합예선전에서 중국의 상위 랭킹자들이 한국에 와서 한국의 노장급 기사나 하위권 기사들과의 대진 결과가 상당수 포함되어 있어서 그렇다는 지적도 있다.
어쨌든 이런 통계에서 알 수 있듯이 정상급 기사들간의 맞대결에서는 어느 정도 한국이 우위를 가지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는 중국이 다소 선수층이 두텁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13억 인구 가운데 매년 20명을 뽑는 중국과 4500만 인구에서 매년 10명을 선발하는 한국의 경우를 비교하더라도 중국은 선수층이 두터울 수 밖에 없다.
이는 예전에 한국vs중국 맞대결을 펼친다면 누가 더 셀까라는 논란이 있었는데 당시 2:2 대국일 경우와 5:5 맞대결을 펼칠 경우는 한국의 승산이 크지만 10:10 대국일 경우 중국의 승산이 크다는 견해와도 연관된다.

한국과 중국바둑은 70년대생인 이창호-창하오 세대를 지나 80년대생 이세돌-구리 세대를 경과하고 있는 지금 한국-중국은 90년을 전후 한 세대들이 그 뒤를 이을 준비를 하고 있다.
한국은 이세돌 9단 세대를 이어 이영구 7단(87년생), 홍성지 7단(87년생), 강동윤 9단(89년생), 김지석 5단(89년생), 박정환 4단(93년생) 등이 바통을 이어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중국은 천야오예 9단(89년생), 박문요 5단(88년생), 저우루이양 5단(91년생),구링이 5단(91년생), 스위에 4단(91년생), 퉈지아시 3단(91년생) 등이 구리 9단을 대표로 하는 소호세대의 뒤를 이을 전망이다.
구리 9단은 연평균 70대국~100대국을 둔다. 특히 지방대국이 많아 이동거리가 길어지면 그 피로는 더욱 심해질 것이고 틈없이 짜여진 일정으로 많이 지친다. 최근 천원전이 끝나고 구리 9단은 가장 먼저 “푹 쉬고 싶다!”는 말을 했다. 구리 9단은 자신의 최정상 컨디션이 30세 이후에도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 바도 있다.
피곤에 지친 구리 9단을 보고 중국 바둑계는 구리 9단 하나만으로는 안된다는 자각을 하면서 앞으로 5년, 10년을 내다보고 또다른 복병을 키우는데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