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시 [장옥관] 낙동 가는 길

[솜나리/박숙경]

낙동 가는 길

장옥관

낙동을 가려면 선산에서 910호 지방도를 타야 한다.
불 꺼진 백양나무 가로수를 지나야 한다. 단밀로 가는 낙단교 건너지 않아야 한다.
쌍용 주유소 갈림길 지나 공원묘지 위를 연사흘 흩뿌리는 눈발.
낙동 가면 무엇이 있나, 고드름 달린 왜식倭式목조 이층 목화다방과
덜컹대는 유리미닫이 약방의 낡은 처방전. 밤 아홉시에 벌써 버스는 끊기고,
싸락눈이 갈기 세워 골목을 누빈다. 산림계 면서기는 잠에 곯아떨어졌는지
아까부터 숙직실 불이 꺼져 있다. 다닥다닥 이마 낮춘 처마 모퉁이 점두店頭.
중 늙은이 서넛 둘러앉아 소주를 마시고 어둠이 웅크리고 있는 벌판.
저 너머 소리없는 눈발이 외딴 집의 불빛을 달래고 있다 한 사흘 낙동에 눈이 내리면
꺼진 집은 봉분같이 고루 편안하고, 두문불출杜門不出 오리나무도
산을 내려오지 않는다. 눈 내려 적막한 마을의 근심. 길은 끊기고
눈 아래 한숨은 다시 한 됫박 눈발 치솟게 하는데 낙동은 이미 너무 흔한 곳.
낙동을 가려면 누구나 길 끊긴 눈밭을 지나 백양나무 환한 둥치를 거쳐야 한다.  

- 시집 『바퀴소리를 듣는다』( 민음사. 19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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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으로 가는 길이었다

-아! 낙동도 가봐야 하는데

그랬다

낙동을 가보고 싶었다

이 한편의 시... 그 길을 더듬어 보고 싶었던거다

환여 횟집이었던가 물회와 회덮밥을 먹고 차를 돌려

왔던 길 다시 달려 중앙 고속도로 천평에서 내렸다

꾸물거리는 하늘을 이고

들 너른 해평도 스쳐 지나고

오른쪽 왼쪽으로 몇 번을 꺾고 난 뒤

신주교를 건너니 선산 땅이었다

33번 국도를 따라가다 10시 반 방향에서 길을 놓쳐버렸다

이정표에도 내비에서도 910번 그 길을 찾을 수 없었다

낡을대로 낡아버린 벚나무 길 조금 더 지나 차를 다시 되돌려 만리공업사를 지났다

날은 꾸무리하고 사라져버린 길은 보이지 않았다

소나무 숲 아래 더 나지막하게 엎드린 신기리 예배당도 지나 59번 국도로 갈아 탔다

여태 불 밝힐 기색 없어 보이는 백양나무와 912번 이정표도 스쳤다

거기서부터 낙동면이었다

건너지 말라는 낙단교를 일부러 건너보고는 다시 낙동으로 들어섰다

파출소 맞은편 왜색의 목화 다방은 없었고

빨간 벽돌의 목화 다방은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다 옥관리를 지나

꼬부랑 길에 접어들었다

길 옆 가장자리엔 스무 해 전엔 두문불출했다던 오리나무가

즐비하게 서서 웅성거리는 바람에 계곡 물의 목소리가 더 작게 들렸다

드문드문 굴뚝 몇 개에서 낡은 과거를 피워 올리는 중이었고

한 사나흘 눈이나 퍼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면서

위험한 커브길 돌고 돌아도 910번 지방도는 없었다

봉분 같은 폐가 여럿 적막의 무게가 더해져 주저앉는 중이었다

이전에도 흔했고

지금도 흔하고

내일,모레도 흔할 것 같은 낙동이지만

불 꺼졌거나 불 밝혔거나 낙동은 낙동이어서

910번이 봉화로 이사를 갔거나 말거나

910번 이 살아 있는 낙동 가는 길

가끔이라도 스쳐 지나고 싶어진다.

[솜나리/박숙경]

목화다방입니다

[김양미]

ㅎㅎ 목화다방 시 한편 올라오겠네요
길에서 만난 목화다방 ......안의 풍경도 다를 것 같아 쬐금 궁금하네요

[솜나리/박숙경]

다방 커피를 좋아하질 않아 못들어가봤네요
들어가 보고 나올걸...

[김영철]

목화다방은 남아 있는데
910번 도로는 봉화에서 삼척으로 이어지나 봅니다.

[솜나리/박숙경]

찾다가 검색을 해보니 봉화에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910 이 912번으로 바뀌었는지 아니면 시인의 기억이 잘못되었는지 또 아니면 의도적으로 그렇게 썼는지 물음표 하나 만들고 돌아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