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5.13. 월요일 아침 말씀 묵상
갈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아멘
1. 바울은 16절에서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행하라” 의 원어적인 의미는 “걸으라”입니다.
2. 이러한 표현은 성도들이 따라 걸어가야 할 바른 길을 언급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신학적 체계가 아닌 구체적으로 ‘걸어야 할 삶의 길’ 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3. 그런데 여기서 “성령을 따라 행하라(걸으라)” 는 바울의 말은 율법을 순종하는 것과 상반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을 따라 행하면 율법을 어기면서 살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4. 바울은 율법 또는 율법에 대한 순종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반대하는 것은 율법을 오용하는 율법주의적인 방식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진정한 순종은 외적 강요에 의해서 결코 성취될 수 없습니다.
5. 순종은 오직 성령님께서 성도의 심령 안에 일으키시는 내적 동기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성도가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행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게 됩니다.
롬8: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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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러나 17절에서 바울은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른다고 경고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해야만 하는 이유가 됩니다.
7. 바울이 묘사하는 성령의 인도와 육체의 소욕 사이의 갈등은 성도 안에 존재하는 내적인 씨름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육체의 소욕을 가지고 출생하기 때문에 자연히 육체의 소욕을 따라살게됩니다.
8. 그러나 성령으로 다시 거듭난 사람은 성령님의 인도를 따르고자 하기 때문에 이 지점에서 진정한 영적인 갈등이 생기는 것입니다. 물론 거듭나지 않은 비그리스도인도 어느정도 도덕적인 갈등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9.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갈등에는 새로운 차원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갈등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해 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속세를 떠나 갈등을 끝내고자 했으며,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역사를 통해 죄 된 본성을 박멸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10. 성령의 인도와 육체의 소욕의 갈등은 어느 정도 억제할 수는 있다 하더라도 결국 육신의 생명이 끝날 때 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될 것입니다. 마침내 예수님의 재림의 날에 부활의 몸으로 덧입을 때 우리는 완전한 승리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롬7: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아멘
11. 우리는 두 본성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영적인 부분은 영적인 것을 갈망하고 육체적인 것을 싫어합니다. 반면 우리의 육적인 부분은 육적인 것을 갈망하며 영적인 것을 배척합니다.
12. 회심한 심령은 너무 연약하여 스스로 육체를 저항할 수 없기 때문에, 육체를 억제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매일 우리의 죄된 자아를 대적하여 성령을 따라 걸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성령을 따라 행하라(걸어가야 한다) 고 우리에게 강력하게 권면하는 이유입니다.
[기도] 주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저희에게 아름다운 봄날의 새 아침을 보게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복된 날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오늘 주신 말씀에 순종하여 성령님의 따라 걸어가기 원합니다. 성령님의 능력으로 육체의 소욕을 거스르며 성도의 길을 걸어가기 원합니다. 마음을 낮추고 겸손하기 원합니다.
바람 속에서도 주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신뢰합니다.
주님, 오늘도 저희가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여 주시고 악에서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