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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신라,가야토론방 남당유고 婆娑尼師今紀(파사이사금기) (A.D.126 - A.D.158:재위33년) - 해석본
정성일 추천 0 조회 355 08.11.25 16:02 댓글 22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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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08.11.25 16:18

    첫댓글 지금와서 보니 초보냄새가 풀풀나는 군요. 뭐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만... 역사학을 공부하시는 분이라면 남의 해석본만 보고 하다 보면 자기의 것이 되지 않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에 있는 남당 유고를 원본삼아, 나름대로 공부하는 것도 도움이 될 듯 합니다.

  • 08.11.25 21:44

    몹시 흥미롭습니다....혹시 삼한고기나 신라고기의 내용을 필사한게 아닌가?하는 착각마져 듭니다..또한 그럴 가능성도.......아무튼 기년 차이가 많이 나지만 어쩌면 삼국사기 내용 보다 더욱 실감을 느끼게 합니다.

  • 08.11.25 21:55

    위의 본문 기사 내용중..."六月 稟主阿休奏曰 “妾兄阿世 乃眞骨之精也" .. 파사왕 6년 당시에 진골이라는 골품제도가 벌써 있었는지요??.

  • 작성자 08.11.25 22:14

    파사이사금 당시에 眞骨이라는 골품이 있었다고 보기엔 무리입니다. 간혹 正骨이라는 표현도 쓰이고 있으니까요. 왕을 표현함에도 上, 王, 帝, 尼師今 등 통일성이 없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왕비의 칭호도 雌神, 聖母, 天宮로, 왕의 어머니의 칭호도 太聖, 太太로, 사람이름도 바뀌는 경우가 있는데 지증왕의 어머니는 蓮帝라고 쓰다가 후반부로 가면 延帝로 쓰기도 합니다. 직위도 바뀌고, 태자의 명칭도 자주 바뀌고, 아무튼 복잡합니다.

  • 08.11.25 22:24

    친절한 답변 감사합니다..대략 무슨 뜻인지 충분히 이해됩니다...^^*

  • 08.11.25 20:04

    지적사항: 1) 2년 5월: 신선을 좋아하여 사방의 <신령한 산>에 노닐면서 북으로는... 2) 2년 9월: 월호와 하석 등이 와산을 크게 깨트리니 연지가 나와 항복하였다. 부여의 수비병 200을 <묻어버렸는데>, 부여의 병사들이 모두 하석 군대의 처와 딸을 취하였기에 그 분노가 (부여의) 병사들에게 미쳐 화를 입게 된 것이었다. 참혹하였다.

  • 작성자 08.11.25 22:18

    전에 구리넷에서 김영채 선생님이 한문본을 교정해 주신 적이 있는데, 한문만 고치고 해석을 고치지 않아 여러군데에서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고치려면 원본을 보고, 다음에 해석본도 고쳐야 하는데 양적으로 과다하고, 또 지금은 소지마립간기를 한문본으로 정서하고 있는 터라 선생님의 지적사항대로 미처 고치지 못함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내년 봄쯤이면 법흥왕까지 한문본이 마무리 될 것 같습니다. 이후에 차분히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08.11.26 01:15

    흠. 23년 음집벌, 실직곡사건의 중재자가 김수로왕이 아닌 대가야 뇌질청예왕이었다? 흥미롭군요.

  • 08.11.26 10:26

    위의 본문 내용으로서도 대가야는 뇌질주일왕이고 금관가야 뇌질청예왕(=김수로왕)으로 나와 있습니다.

  • 08.11.26 13:41

    뇌질청예라는 이름은 별반 새로운 건 아닙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상도 고령현 편에 나오는 또 하나의 가야 신화인 '정견모주 신화' 에 나오는 이름입니다. 내용은 정견모주라는 가야 공통의 어미가 있고, 이 어미의 아들들 중 뇌질주일은 대가야 왕이 되고 뇌질청예는 금관가야의 왕이 된다는 이야기지요. 즉, 뇌질청예는 수로왕을 말합니다. 이는 조선 후기에 이미 널리 알려져서 동사강목, 성호사설, 오주연문장전산고 등에도 인용되어 있습니다.

  • 08.11.26 15:28

    <신증동국여지승람> 의 경우, 누가 형이고 동생인지를 언급하지는 않지만 그 설화가 대가야의 근거지인 고령 일대의 설화라는 점과 뇌질주일을 먼저 언급하고 뇌질청예를 나중에 언급한다는 점으로 볼 때 정견모주 설화는 대가야왕 뇌질주일을 '형' 으로 설정한 듯 합니다. 위 신라사초의 기록에도 이를 반영한 듯, 뇌질주일이 둘째, 뇌질청예가 셋째로 나오는군요. (30년 8월 기사를 보면, 첫째는 보일(뇌질보일?) 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데, 전쟁에서 죽었다고 신라사초는 설정했군요. 보일이라는 자의 이름은 다른 데에서는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들의 아비라는 '비지' 는 '이비가지' 를 뜻하는 듯 합니다만...)

  • 08.11.26 14:23

    미주가효님 본문내용중에 "八月 比只與多伐草八作亂 命虹盧加樹討平之 比只太子宝日戰沒 次子朱日自召文還主和 其弟靑裔奔于金官 " 의 문장으로 보아 첫째는 전쟁중에 죽은 태자 보일(뇌질보일)이고 둘째는 뇌질주일, 셋째는 뇌질청예(수로왕)으로 나와 있군요!

  • 08.11.26 15:34

    아, 저도 찾아서 수정하는 사이에 글을 올리셨군요. ^^;

  • 08.11.26 21:28

    아, 뇌질주일 왕과 헷깔렸네요. (실수;)

  • 08.11.27 13:27

    33년 뇌질주일이 스스로를 '아고금阿鼓今' 이라고 했다는 것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의 내용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대가야국의 시조는 이진아시왕(伊珍阿豉王)인데 그가 뇌질주일이라고 나옵니다. 아고금阿鼓今 이라는 것은 이진아시왕 중 '아시왕' 을 쓰려 한 것 같군요. 고鼓 자는 시豉 자의 오기인 듯하고, 금今 은 이사금 등 임금이라는 의미로 썼겠지요. 결국 신라사초에서 말한 아고금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에서 말하는 (이진)아시왕을 표기하려던 것으로 보입니다.

  • 08.11.26 23:12

    미주가효님께서 정확하게 핵심을 지적하셔서 본문의 오류를 찾게되는군요...원본 pdf파일을 보니 阿鼓今(아고금)이 아니고 阿豉今(아시금)이 맞습니다...아마 본문을 TEXT화 입력시 한자입력 과정에서 오류인듯 합니다..참고로 원본파일을 확인하시려면 娑婆尼師今記 ( http://mf.history.go.kr/Pdf/MF0020000/00322333.pdf ) .

  • 08.11.26 21:34

    그러고 보니, 김태식 교수의 저서에 정견모주가 강물에 흘려보낸 알이 김수로왕이 되었다는 전승을 보면, 대가야 인들이 뇌질주일왕을 높이고 김수로왕을 그 밑에 종속시켰을 것이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 작성자 08.11.27 12:22

    미주가효님과 소호금천님이 저의 중요한 잘못을 지적하여 주셨습니다. 역시 공부는 혼자하기 힘듭니다. 삼국유사에 보면 수로왕과 탈해의 충돌기사가 있는데, 신라사초에서는 전혀 그런 내용을 찾을 수 없습니다. 삼국유사에 있는 수로와 탈해의 충돌기사는 거짓은 아닌 듯 합니다. 가락국기에 있는 내용이 신라사초에 거의 반영되어 있고, 기년도 상당히 맞는 부분이 많습니다. 신라사초 뒷부분에 보면 금관국을 변왕가라고 표현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신라와 가야국에서는 난생설화로 자신이 어디에서 이동해 왔는지를 감추고 있는지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신라+백제+가야의 연합군이 고구려와 싸운 기록이 있습니다.

  • 작성자 08.11.27 12:22

    그러나 신라+백제+가야는 모두 고구려에서 나온 왕가의 후손으로 추정합니다. 이런 말을 하면 모두 저를 바보 취급합니다.

  • 08.11.27 13:42

    내공이 없어서 계속 눈팅 중입니다.^^;; 혹시 혁거세 거서간 관련 자료는 없는지요?

  • 작성자 08.11.27 15:31

    혁거세 거서간의 기록은 남당의 유고속에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남당이 옮겨오지 않은 것인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공개하지 않은 것인지 저도 잘 모릅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공개하지 않는 사료가 24권이 있다고 합니다만, 제가 사실 확인한 것이 아니라 답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김용만 선생께서 혹시 정확한 내용을 알고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상장돈장으로 유추해 보면 혁거세 임금은 유복자로 태어난 것이 아니더군요. 그럼에도 아들인 혁거세가 시조가 되었는지 알 수 없고, 왜 아버지에 대해서는 함구로 일관하는지 의문스럽습니다.

  • 작성자 08.11.27 15:36

    남당 유고에 위화진경초라는 사서가 있습니다. 책의 서두가 혁거세임금과 관련된 기사인데 굳이 해석하려면 할 수는 있으나 정확한 의미가 와 닿지 않습니다. 얼핏보면 북부여 해모수의 건국설화와 관련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건국설화가 닮았다고 하여 신라의 시조인 혁거세가 북부여를 계승했다고 또는 영향을 받았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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