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님의 소설 나목을 다시 읽었다
사실 너무 오래전에 읽어
줄거리를 다 기억하진 못했었다
다만 PX의 초상화 그려주는 부서에서의
궁기 가득한 행색의 화가들
그 속에서 전쟁을 견뎌내는 주인공 이야기 정도였는데
그 화가들 중 하나였다는 박수근 전시를 보고
다시 꼼꼼히 읽어보고 싶었다
그땐 간과했던 박수근의 자취를 좀 자세히 따라가 보고 싶었다
도서관 서가에서 묵은
오래된 책( 박완서 데뷔작)속의 줄거리를 음미해가면서
옥희도란 화가로 등장하는 박수근의 이야기를 나름 재해석해가며 읽었다
존경심에 살포시 얹은
주인공의 시린 로맨스
그 시대 처자들의 심리를 참으로 대담하면서도
사실적으로 묘사해
박완서 그녀와 박수근의 로맨스로 각색해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놀란다
마치 우리 할머니가
티비에 나오는 연기자의 상대역을 사실로 오해하거나
다른 드라마나 광고에서 다른 상대와 함께 하면
저 사람은 부인을 두고 쯧쯧
저 사람이 아까는 집에 있었는데 저길 언제 갔지?
하시며 시차와 공간성을 이해하지 못하신 것처럼
저렇게 쓸쓸한 고목을 그리는 가슴은
얼마나 메말라 있는 것이냐며
그렇게 만든게 화가의 아내인냥
쌀쌀맞게 아내에게 쏘아주던 대목에 등장했던 그 그림
나중에 박완서님은 소설 말미에
옥희도(박수근)씨의 전시장에 찾아간 화자 즉, 주인공을 통해 이렇게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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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옆을 두 여인이,
아기를 업은 한 여인은 서성대고, 짐을 인 한 여인은 총총히 지나가고 있었다.
내가 지난 날 어두운 단칸방에서 본 한발 속의 고목.
그러나 지금의 나에게 웬일인지 그게 고목이 아니라 나목이었다
그것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달랐다
김장철 소슬바람에 떠는 나목, 이제 막 마지막 낙엽을 끝낸 김장철 나목이기에
봄은 아직 멀건만 그 수심엔 봄에의 향기가 애닯도록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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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김에
박수근화백의 아내인 김복순 여사의 일기도 읽어보았다
화가의 아내로 살아간 지난한 이야기가 가득하지만
내 눈길을 끈 부분은
멀리 사는 친구 아들의 돌잔치에 여러친구들과 다녀왔는데
역으로 마중 나온 남편은 오직 박수근 한 사람이었단다
게다가 저녁밥을 지어 아이들 다 먹이고
아내의 밥을 아랫목에 찌개는 화로에
(가만, 이건 지고지순한 아내들이 남편에게 하던 고정 레파토리 아니던가?)
거기가 끝이 아니다
아침에 밥을 짓는 동안엔 이불을 개어놓고 방 소제를 다 해놓고
아기 기저귀까지 빨아 널어주신단다
이쯤해서 남편에게 눈 흘기실 분들 아직 끝이 아니랍니다
그림 그리고 나서
저녁에 시내 나가시려고 구두를 신고 나서더라도
빨랫줄에 널린 빨래라도 만져보고 마른 옷은 걷어주시고 나가셨답니다
이럴 때 김복순님은 마치
친정어머님이 딸을 생각하셔서
조금이라도 일을 덜어주시려는 것같이 생각되곤 했답니다
외출길에 빨랫줄의 빨래를 만져보고 마른 옷을 걷어주는 남자
너무 따뜻하지 않나요?
따뜻하다못해 안아주고 싶지 않나요?
그러고 보니 작년이다
12월 초에 덕수궁 미술관에서 박수근화백 전시를 관람한 후
연관된 박완서님의 '나목'도 찾아 다시 읽고
내친김에' 박수근 아내의 일기'도 읽고
예술이란
이렇게 다양한 장르가 서로 유기체처럼 연결된
하나의 커다란 정신세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