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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6/6 完-
그로부터 사흘 동안 선교사는 그의 시간의 대부분을 새디 톰슨과 같이 보냈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식사 때 뿐이었다.
의사 맥페일은 그가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있음을 알앗다.
"그분은 쓰러지고 말 거예요." 데이빗슨 부인이 가엾다는 듯이 말했다.
"조심하지 않으면 몸을 망치고 말텐데도 자기 몸을 아끼려 하지 않아요."
그녀 자신도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도무지 잠을 자지 못한다고 맥페일 부인에게 말했다.
데이빗슨은 미스 톰슨의 방에서 위층으로 돌아와서도 완전히 피로하여 기진할 때까지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나서도 곁코 오래 잠자지는 않았다.
한두 시간만 되면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고 해안을 따라 산보를 하러 나갔다.
그는 이상한 꿈을 꾸기도 했다.
"오늘 아침에도 저한테 얘기하는데 네브래스카의 산들이 꿈에 나타나더라는군요." 하고 데이빗슨 부인이 말했다.
"그것 참 기이하군요." 의사 맥페일이 말했다
그는 미국을 황단하면서 기차 차창을 통해 그 산들을 바라본 기억이 떠올랐다.
그것은 둥글고 완만한 모양으로 마치 평원에 두더지가 쌓아놓은 커다란 언덕처럼 불쑥 솟아 있었다.
그때 갑자기 여자의 젖가슴 같다는 생각이 떠올랐던 것이다.
데이빗슨의 계속된 긴장은 그 자신도 견디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일종의 놀라운 희열에 힘을 얻고 있었다.
그는 저 가엾은 여자 마음 한구석에 깃들어 숨겨져 있는 죄의 마지막 흔적까지 뿌리 뽑아 버리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녀와 같이 성경을 읽고 그녀와 같이 기도를 올렸다.
"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어느 날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그는 말했다.
"정말 새로 태어난 것입니다. 밤처럼 어두웠던 그녀의 영혼이 지금은 마치 갓 내린 눈처럼 순수하고깨끗하게 되었어요. 나는 교만해 하지 않으며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일체의 죄에 대한 그녀의 회개는 실로 아름답습니다. 나는 옷자락을 스치기에도 부족한 인간입니다."
"이제 당신은 저 여자를 샌프란시스코에 돌려보낼 생각은 않겠지요?" 의사가 말했다.
"미국에서 3년 동안 감금생활을 하게 되는데, 나는 당신이 그것으로부터 그녀를 구제해 주신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어요."
"아니 모르세요? 그것은 필요한 일입니다. 당신은 내가 그녀로 해서 마음이 아프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나는 내 자신의 아내나 자매처럼 저 여자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감금 당하여 있는 동안 나는 저 여자와 같은 고통을 받을 겁니다."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요." 의사는 더 참을 수가 없어서 소리쳤다.
"당신은 눈이 멀어서 잘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죄를 지었으니까 고통을 받지 않으면 안됩니다. 무슨 괴로움을 당할지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굶주릴 것이며 고통을 받고 모욕을 받을 것입니다. 나는 저 여자가 하나님에 대한 속죄로서 인간이 주는 형벌을 받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기꺼이 받아들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들에겐 별로 주어지지 못하는 기회가 그녀에게 주어진 거지요. 하나님은 정말 관대하고 자비로운 분입니다."
데이빗슨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떨고 있었다.
넘치는 열정 때문에 입술에서 튀어나오는 말을 거의 또렷하게 발음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저는 종일 그녀와 함께 기도하고 돌아와서도 또 기도합니다. 예수께서 그녀에게 위대한 자비를 내리시도록 하는 모든 심혈을 기울이며 기도합니다. 나는 그녀의 마음에 기꺼이 벌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열망을 불어넣어, 드디어 내가 용서한다고해도 오히려 그것을 거부하도록 해주고 싶습니다. 고통스러운 감금의 형벌이 자기를 위해 생명을 바친 성스러운 주님의 발밑에 바쳐지는 감사의 공물이라고 그녀가 느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날짜가 지루하게 지나갔다.
온 집이 아래층의 불행하고 고민하는 여자에게 주의를 기울이며 부자연스러운 흥분 상태 속에서 살고 있었다.
마치 그녀는 피비린내 나는 우상숭배의 잔인한 의식을 위해서 마련된 제물과도 같았다.
그녀는 무서운 나머지 일종의 무감각 상태에 있었다.
조금이라도 데이빗슨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견뎌낼 수가 없엇다. 다만 그가 옆에 있을 때만 기력을 회복하고 있었다.
그래서 노예처럼 완전히 그에게 매달려 있었다.
그녀는 많이 울기도 하고 성서를 읽기도 하며,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때로는 기진해서 무감각해 있기도 했다.
그녀는 실제로 시련이 닥쳐오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그녀를 지금의 고통으로부터 구해주는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구체적인 방법인 것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죄와 함께 일체의 개인적 자만도 치워 버렸다.
볼품없는 실내옷차림을 하고 엉클어지고 어수선한 머리로 방안을 돌아 다녔다.
나흘동안이나 한 번도 잠옷을 벗은 적이 없었으며, 양말을 신지도 않았다.
방은 지저분하게 어질러져 있었다.
그 동안에도 비는 잔인할 만큼 끈질기게 퍼붓고 있었다.
이젠 하늘의 물도 바닥이 난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도 여전히 세차고 줄기차게 미칠 듯이 함석지붕에 쏟아졌다.
모든 것이 습기에 차서 끈적끈적했다. 벽에도 마루에 세워둔 장화에도 곰팡이가 생겨 있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 내내 모기떼가 성난 듯한 소리로 윙윙 거렸다.
"단 하루만이라도 비가 좀 그쳐준다면 이렇게 기분이 언짢지는 않을 텐데." 의사 맥페일이 말했다.
그들은 모두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배가 시드니에서 들어오는 화요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긴장은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의사 맥페일로서는 가엾다든가 하는 감정도, 빨리 이 불행한 여자가 떠나주었으면 하는 마음 앞에서는 이미 사라져버리는 것이었다.
어떻게 할 수도 없는 것이라면 받아들이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배가 떠나고 나면 좀더 자유롭게 숨을 쉴 수가 있을 것 같았다.
새디 톰슨은 총독청의 관리 하나가 배에까지 호송하도록 되어 있었다.
월요일 밤에 그 사나이가 와서, 내일 아침 열한 시까지 준비를 해두도록 미스 톰슨에게 말했다.
데이빗슨도 그 자리에 있었다.
"모든 준비가 다 되도록 돕겠소. 나도 배에까지 배웅을 할 작정이요."
미스 톰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의사 맥페일은 촛불을 불어서 끄고 조심스럽게 모기장을 들치고 들어가 자기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끝이 나서 고맙군. 내일 이맘때는 이미 떠나고 없겠지."
"데이빗슨 부인도 기뻐할 거에요. 그분이 쇠약해져서 형체만 남았다고 말하던데." 맥페일 부인은 말했다.
"그녀는 좀 다른 여자가 됐어요."
"누가?"
"새디말예요. 정말 이렇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어요. 마음이 겸허하게 돼요."
의사 맥페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이윽고 잠들어 버렸다. 무척 지쳐 있었으므로 전에 없이 깊은 잠에 빠졌다.
아침, 누군가가 그의 팔에 손을 얹어서 잠이 깨었다.
놀라서 일어나 보니, 호온이 침대 옆에 서 있었다.
집주인은 소리를 내지 말라는 뜻으로 손가락을 입에다 대고는 그를 오라고 손짓했다.
보통 때는 때묻은 듀크 바지를 입고 있는데 지금은 맨발에 토인의 라바라바만을 걸치고 있었다.
갑자기 야만인처럼 보였다.
맥페일은 침대에서 일어나면서 그가 몸뚱이에 심한 문신을 한 것을 보았다.
그는 의사에게 베란다 쪽으로 가자는 손짓을 했다.
의사는 자리에서 나와 집주인을 따라갔다.
"소리 내지 말아요." 그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저, 같이 좀 나가 주셔야 되겠습니다. 코트를 입고 신을 신으세요.빨리요."
의사 맥페일의 머리에 퍼뜩 떠오른 것은 미스 톰슨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의료 기구라도 가지고 갈까요?"
"제발 좀 서둘러 주십시오."
의사 맥페일은 조용히 침실로 돌아가서 잠옷 위에 방수 코트를 입고 바닥에 고무를 댄 신을 신었다.
집주인과 같이 발소리를 죽이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큰길로 나가는 문이 열려 있고, 원주민이 대여섯 명 서 있엇다.
"도대체 무슨 일이요." 의사는 또 한 번 물었다.
"저를 따라 오세요." 호온이 말했다.
그가 밖으로 나가자 의사도 따라나갔다.
원주민들은 한데 몰려서 뒤에서 따라왔다.
그들은 길을 가로질러 해안으로 나갔다.
의사는 바닷물이 와닿는 곳에 한 떼의 원주민들이 무엇을 둘러싸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2, 30야드 되는 그곳까지 급히 갔는데 의사가 오자 원주민들은 길을 비켰다.
집주인이 그를 앞으로 밀어냈다.
그때 그는 반쯤 물에 잠기고 반은 물밖에 나온 채 누워 있는 데이빗슨의 무서운 시체를 보았다.
의사 맥페일은 몸을 굽혀서 -그는 어떤 긴급한 경우에도 당황하는 사나이는 아니었다.- 시체를 뒤져 보았다.
목이 귀에서 귀까지 째어져 있었고 오른손에는 쓰여졌던 면도칼을 그대로 쥐고 있었다.
"완전히 싸늘하군." 의사는 말했다.
"죽은 지 꽤 시간이 지났어."
"어떤 아이가 일하러 가다가 그가 거기 누워 있는 걸 보고 금방 내게 와서 알려주었어요. 그가 스스로 그렇게 했을 까요?"
"그렇겠지. 누가 경찰관을 불러와야 해."
호온이 그들의 말로 뭐라 얘길 하자 젊은이 두 사람이 떠났다.
"그들이 올 때까지 이대로 놓아 두지 않으면 안돼요." 의사는 말했다.
"저희 집으로 옮기는 건 절대 안돼요. 나는 결코 집안에 들이지 않겠소."
"당국이 시키는 대로 하면 돼요." 의사가 분명하게 말했다.
"사실은 아마 시체 안치소로 옮길 거요."
그들은 그대로 기다리고 있었다.
집주인은 라바라바 옷 품에서 담배를 꺼내 맥페일에게 하나 권했다.
그들은 담배를 피우면서 시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의사는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무엇 때문에 이런 짓을 했을까요?" 호온이 말했다.
의사는 어깨를 으쓱했다.
얼마 후에 해병의 지시로 원주민 순경들이 들 것을 가지고 왔는데, 바로 뒤따라 해군장교 둘과 군의관이 왔다.
그들은 모든 것을 사무적으로 처리했다.
"부인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장교 한 사람이 물었다.
"당신들이 왔으니 나는 집에 돌아가 옷을 좀 입어야겠소. 부인에게는 내가 소식을 전하지요. 그러나 어떻게 좀 해놓고 나서가 아니면 그녀에게 보이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네, 그게 옳을 겁니다." 군의관이 말했다.
의사 맥페일이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는 거의 옷을 다 갈아입고 있었다.
"여보, 데이빗슨씨의 부인이 남편 때문에 야단이에요." 그가 모습을 나타내자 마자 그녀는 말했다.
"어젯밤 내내 자리에 들지 않았데요. 부인은 두 시경에 남편이 미스 톰슨 방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대로 밖으로 나가더라는군요. 그때부터 계속 돌아다녔다면 정말 죽기라도 하지 않았는지."
의사 맥페일은 모든 것을 이야기해 주고 데이빗슨 부인에게 전해 달라고 했다.
"그런데 무슨 일 때문에 그렇게 했을까요?" 그녀는 겁에 질려서 물었다.
"나도 모르겠어."
"그런데, 난 못해요."
"그래도 전해줘야 해요."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나갔다.
그녀가 데이빗슨 부인 방에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잠깐 멈추어 마음을 진정시킨 다음 수염을 깎고 세수를 하기 시작했다.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앉아서 아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아내가 왔다.
"그에게 가보겠다고 해요." 그녀가 말했다.
"시체 안치소에 옮겼을 테니까, 우리도 같이 가는 게 좋을 거야. 그녀는 어떻게 하고 있지."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아요. 울지도 않고 다만 나뭇잎처럼 떨고 있어요."
"그럼, 곧 가보는 게 좋겠지."
문을 두드리니까 데이빗슨 부인이 나왔다.
매우 창백해 있었으나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의사의 눈에는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그녀가 침착한 듯했다.
말 한 마디 나누지 않고 그들은 묵묵히 큰길을 나왔다.
그들이 시체 안치소에 이르자 데이빗슨 부인이 말했다.
"저 혼자 들아가 그이를 보게 해줘요."
그들은 옆으로 비켜섰다.
원주민 한 사람이 문을 열어주고 그녀를 들이고는 문을 닫았다.
그들은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백인이 한두 사람이 와서 그들에게 낮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의사 맥페일은 이 참사에 대하여 그가 알고 있는 것을 다시 한 번 되풀이했다.
드디어 문이 조용히 열리더니 데이빗슨 부인이 나왔다.
그들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이제 돌아가도 좋아요." 그녀는 말했다.
그 목소리는 딱딱하고 침착했다.
의사 맥페일은 그녀의 눈의 표정이 아무래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의 창백한 얼굴은 매우 굳어 있었다.
말 한 마디 없이 그들은 천천히 걸어갔다.
드디어 건너편에 그들의 집이 있는 한길로 구부러진 길을 돌았다.
그때 데이빗슨 부인이 놀라 가슴을 헐떡였다.
그들은 멈추어 섰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소리가 그들의 귀에 울려왔다.
그렇게 오랫동안 조용해 있던 그 축음기가 커다랗고 거친 소리로 렉타임을 울리고 있었다.
"무엇일까요?" 겁에 질린 듯 맥페일 부인이 소리쳤다.
"자, 갑시다." 데이빗슨 부인이 말했다.
그들은 현관의 계단을 올라가 홀로 들어갔다.
어떤 선원과 무엇인지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면서 미스 톰슨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갑작스러운 변화가 그녀에게 일어나 있었다.
그녀는 어제까지의 겁먹은 노예는 아니었다.
모든 옷차림을 다 하고 있었다.
새하얀 드레스에 반짝반짝 빛나는 장화를 신었고 그 위로는 목양말을 신은 살찐 다리가 불룩하게 삐져나와 있었다.
머리도 정성들여 빗어 올리고 천박한 꽃을 단 커다란 모자를 쓰고 있었다.
얼굴에는 화장을 하고 눈썹은 굵고 진했으며 입술은 새빨갰다.
그녀는 꼿꼿이 버티고 서 있었다.
그들이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그대로의 거만하기 짝이 없는 형편없는 망나니 여자였다.
그들이 들어가자 그녀는 갑자기 비웃기라도 하듯이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데이비슨 부인이 자기도 모르게 발길을 멈추었을 때 그녀는 입 가득히 침을 모아서 뱉었다.
데이빗슨 부인은 겁게 질려 멈칫했으며 그녀의 두 볼에는 갑자기 붉은 반점이 떠올랐다.
그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도망치듯 급히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의사 맥페일은 화가 치밀어 여자를 밀어 붙이고 방으로 들어갔다.
"이봐요, 의사 선생, 그 쓸데없는 짓 말아요. 아니, 남의 방에 들어와서 뭣하는 거에요?"
"아니 무슨 소리요?" 그는 소리를 질렀다.
"무슨 소리요?"
그녀는 계속 기세를 올렸다.
그리고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조롱과 멸시에 찬 증오를 띠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너희들 사내놈, 추악하고 더러운 돼지야! 모두 똑같은 놈들이지. 당신도 마찬가지야! 돼지들!"
의사 맥페일은 놀라서 숨이 막히는 듯 했다.
그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