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우기의 문학과 예술의 다시 개벽(유역문예론2)
서론 : 문학과 예술, 다시 개벽의 필요성
임우기 저자의 책 '문학과 예술의 다시 개벽'은 한민족의 정신세계를 아우르는 독창적인 비평서이다. 1부 '문학예술의 다시 개벽'에서는 '동학의 연원'과 '유역문예론의 개요'를 밝히고 있다. 2부 '유역문예론의 개요 및 시론(試論)'에서는 문학예술의 '다시 개벽'을 위한 기본 개념들(귀신ㆍ유역ㆍ은폐된 서술자ㆍ창조적 유기체), '개벽적 현실주의 제안'과 소설과 회화의 시론(試論)을 다루고 있다. 3부 보유(補遺) 편에서는 '왜 귀신과 방언인가', '모심(母心)의 모심'속에 깃든 지령(地靈)의 노래', '수묵, 귀신의 존재와 현상'을 주로 다루고 있다.
동학사상을 기반으로 문학과 예술의 본질을 탐구하며, 기존의 고정된 비평 틀에서 벗어나 유동적이고 다층적인 해석을 제시한다. 이 책의 부제가 '진실한 문예작품은 무엇을 말함인가'인 이유는 개벽 세상을 여는 문예의 길을 모색하기 위함이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저마다 성심껏 '수심정기(修心正氣)를 통한 조화(造化,無爲而化)의 심오한 이치 및 그 작용을 스스로 접할 수 있어야 진실한 문예작품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문학예술계에는 서구이론을 중시하고 전통사상이나 문화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서구이론은 서구이론대로 받아들이고 우리의 실정에 맞는 이론도 정립해야 한다. 저자가 유역문예론에서 유역을 제창한 이유는 저마다 고유성을 지키면서 네트워크를 이루어 교류하는, ‘지역’보다 넓고 유동적인 개념으로서 ‘유역’ 의식”을 염두에 둔 것이라 하겠다. 문학에서 획일적으로 표준어를 강요해 온 근대의식이나 서구문예를 표준으로 삼아 추종하는 이론체계는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본론
1. 주요 내용
1) 동학의 연원
동학의 뿌리는 고대사에서 근대사까지 한민족이 면면히 이어온 사상을 근간으로 한다.고대 만주문명의 대표인 고조선 문명, 단군신화, 신라의 풍류도, ‘유불선 회통儒佛仙 會通’의 정신, 풍류도의 원융회통圓融會通의 대정신은 수운 선생의 동학 창도를 통해 조선의 민중들의 마음과 생활 속에서 새로운 꽃을 활짝 피우게 된다. 수운 동학은 ‘이 땅의 혼’(지령)으로서, 조선의 자생적 사상이며, 동학 사상의 심오하고 드높은 이상과 그 웅혼한 기상은 3. 1운동으로, 4.19로, 5.18항쟁으로 끈질기게 이어져왔다.
2) 유역문예론의 개요
유역문예론은 귀신론, 은폐된 서술자, 천진난만, 수심정기, 풍류도와 회통의 정신을 그 특징으로 한다.
3) 문학예술의 '다시 개벽'을 위한 기본 개념들
첫째 귀신이다. 귀신은 이와 기이며 귀신의 묘용은 묘처에 은미하게 나타난다. 수운이 한울님과 접신할 때 "내 마음이 네 마음이다. 귀신이란 것도 나이니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귀신은 등불이 물 위에 밝으매 틈이 없는 존재이다.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의 철학에서 말하는 현실태이면서 계기에 해당하는 것이 귀신이다. 수심정기 속에서 모든 개별적 주체들은 천부적인 창조성을 가지고 신과 통하는 조화의 계기에 참여한다. 이 땅의 귀신은 만물에 내재한 각각의 귀신 곧 만신의 성격을 갖는다.
둘째 은폐된 서술자다. 은폐된 서술자는 제 2의 서술자로 바흐친의 다성성이라고 볼 수 있다.소설 토지로 보면 동학이 은폐된 서술자다.박경리, 홍명희, 세르반테스,토마스만 등 위대한 작품에는 은폐된 서술자가 있다.
은폐된 서술자는 작품 속에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이야기의 구조와 의미를 조율하며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은미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작품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특별히 영화 플롯에 감추어진 작은 일탈에 주목해야 합니다. 작품의 그늘 즉 잘 꾸며진 내용과 형식 모두에 은밀하게 숨어 있는 특이성, 은미한 이질성을 살피는 게 필요하고 여기에 작가의 내면적 고통이 은폐돼 있을 가능성을 찾아내자는 거죠.” 라고 말한 바 있다. 문학예술에서 귀신의 특징인 '은미한 드러남'이라는 속성은 문학예술이 추구하는 일반적 형식과 방식인 은유, 상징, 환유 등 비유법이나, 예술 본연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러니를 통해 표현된다. 귀신의 존재는 그 본성상 '있음과 없음의 양극단을 여의고' 스스로 아이러니의 형식을 취하여 '비형식적 지각'으로서 자산의 존재성을 드러낸다.예술가조차 그 비형상적 지각의 아이러니를 '알게 모르게(알듯 말 듯)'자각한다.
세째 유역이다. '유역'(강물이 흐르는 언저리)은 고착된 지역이 아니라 흐르는 지역을 말한다. '유역'은 중앙에 종속된 지역이 아니라 저마다 독립적이고 서로 평등하게 교류하는 네트워크이다. 유역은 대소의 차별없이 평등한 교류와 연대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다.
네째 창조적 유기체이다. 창조적 유기체란 모든 개별적 존재들(다자)이 각자 주체성을 보존하면서 각 주체의 안팎에서 일어나는 '조화'의 현실적 계기인 동시에 현실적 존재로서, 천지조화의 본체인 한울님(일자)에 동귀일체하는 유기체적 세계관 개념이다. 문화예술론에서는 문학예술 작품을 하나의 특수한 유기체로 보고 그 유기체적 창조성을 귀신의 작용으로 본다.
4) 개벽사상
개벽'을 위한 '21자 주문(呪文)' 은 "至氣今至 願爲大降,
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이다.수운은 모실시(侍)를 內有神靈 外有氣化 一世之人 各知不移로 풀이하였다.수운은 인간만이 아니라 천지만물은 저마다 ‘하늘(天)’을 모신 존재들이며, 따라서 인간은 수심정기를 통해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천지간 존재들을 부모와 같이 모심[侍]을 하는 존재, 즉 ‘시천주侍天主’의 존재들이 서로서로 유기적 연결망으로서 상관성 속에 있다고 보았다. 유역문예론에서는 장소의 혼이 중요하다.민주주의는 민중자치의 주체가 될 민중의 자기 훈련(수심정기, 성심)이 중요하다.근대 극복과 근대 적응은 불이정신의 소산이다.
5) 작품 적용
박경리, 홍명희는 새로운 구성법을 사용했다.백석, 김수영, 세르반테스의 돈키로테, 토마스 만의 마의 산, 강운구의 겨울의 개,마티스의 열린 문과 댄스, 고흐의 해바라기, 감자 먹는 사람들, 별아 빛나는 밤, 뭉크의 절규, 세잔의 세잔 부인의 초상, 생 빅투아르산, 나무들, 붉은 바위, 피카소의 게르니카, 홍상수 감독의 영화 마지막 장면의 창문, 이창동 감독의.저수지 등 작품에서 은폐된 서술자를 만날 수 있다.올가 토카르축도 다정한 서술자에서 4인칭 시점 즉 총체적 이야기꾼, 파놉티콘 서술자, 헤리성 서술자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내유신령 외유기화의 원리, 음양의 원리, 귀신의 작용으로 안과 밖이 통한다. 은폐된 서술자는 무(巫), 기, 귀신, 화이트 헤드가 말하는 계기의 작용이다. 눈과 비 등 주문, 패턴과 같은 반복, 애매모호함, 은미,패턴화된 말놀이, 천진난만함 등의 형식으로 나타나는데 지하수맥, 집단 원형 같은 것이다. 표면 서사의 내면에 흐르는 은미한 작용이 있다.루쉰은 아큐정전을 자신이 썼지만 한편으로 자신이 쓰지 않았다고 했다.토마스 만은 소설에 또다른 화자의 목소리가 있다고 했다.예술가는 수심정기하여 지기, 각지불이로 기운생동하는 창조적 유기체로서의 예술을 창조해야 한다.
2. 생각해볼 문제들
1) 맹목적 서구 추종에 대한 반성
수운 동학은 ‘후천개벽’의 근원, 병든 인류사의 일대전환을 알리는 ‘생명사상의 거대한 뿌리’이다.수운의 다시 개벽사상은 서양의 고대 지식 철학이나 계몽주의적 근현대 이론을 맹종하는 데에 여념이 없는 이 땅의 지식계에 통렬한 반성을 안겨주는 이 땅의 위대한 혼이다.
문학에서 획일적으로 표준어를 강요해 온 근대의식이나 서구문예를 표준으로 삼아 추종하는 이론체계는 근본적으로 재검토 되어야 한다. ‘근원’이란 작가가 살아온 역사성과 분리될 수 없는 본래성을 가리킨다. 장소의 혼, 지령, 집단무의식의 원형, 그 안에 영성을 탐색하는 의식이 숨어 있다.이런 관점에서 보면, 기존의 서구 중심 문예이론이나 형식을 반성하게 된다.사투리나 속어 같은 비표준어는 지령의 소산으로서 일상 속에 감추어진 ‘자연의 조화(造化)’를 발견하는 것이다.방언 문학, 사투리뿐 아니라 지역 고유의 생활·역사도 계통해야 한다.
2) 구체적 분석과 해석 틀을 정립
이 땅의 혼’을 찾아 그 혼의 웅숭깊은 내용들을 찾아 규명하고 ‘자재연원自在淵源’의 관점에서 올바로 정립하고서 국내외 문학 및 미술에서의 주요 걸작들에 대한 구체적 분석과 해석을 통해, 심오한 ‘다시 개벽’의 문화예술론을 정립해 나가야 한다.이 책은 수운 동학이 품고 있는 웅숭깊은 생명 사상, 도저한 구경究竟의 경지를 문학과 예술의 비평을 통해 구체적이고도 깊이 있게 보여주었다. 앞으로 후학들은 참길을 깨닫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원시반본을 통한 ‘최령자’(最靈者)로 승화하는 것이 개벽의 조건이자 이 시대 문예활동의 과제이다. 가장 신령한 존재라는 뜻의 ‘최령자’는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무위자연 사상, 공(空) 사상, 음양론 등과 밀접히 연결된다. 숨은 최령자의 가능성을 밝혀내고 각자 최령자 되기에 참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3) 2중과제와 개벽적 현실주의
백낙청의 근대의 이중과제론에 제시한 것처럼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이라는 두 개념이 긴밀한 상호 관계 속에서 전개되어야 한다.적응은 '다시 개벽'의 '수심정기'의 관점에서 성찰되어야 한다. 적응과 반응은 내 안으로의 수련과 밖으로의 기화와의 동시적 관계이다.동학이 지닌 유기체의 존재론과 세계관으로 개별자들이 각자의 생명성을 안으로 자각하는 동시에 창조성을 밖으로 현실화하는 것이 적응인 동시에 반응이다.
결론
'문학과 예술의 다시 개벽'은 문학과 예술이 서구의 틀에서 벗어나 유동적이고 다층적인 해석을 통해 새로운 세계와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은폐된 서술자와 귀신 같은 보이지 않는 요소를 통해 잘 꾸며진 내용과 형식 모두에 은밀하게 숨어 있는 특이성, 은미한 이질성을 살펴 작가의 내면적 고통이 은폐돼 있을 가능성, 억압된 진실과 새로운 변혁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이는 동학사상의 개벽 정신과 맞닿아 있으며, 문학이 현실을 변화시키고 독자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워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서양 문학론에서 벗어나 동학과 무속의 전통을 사상적 기반으로 삼고, 비표준어, 고유 문화를 문학 언어로 적극 활용할 새로운 길을 개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