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생태위기 앞에 그 생존이 크게 위협을 받고 있다. 오늘날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지구환경 위기는 단지 자연 생태계가 파괴된다는 물리적 의미에서만이 아니다. 지구환경 위기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잘못된 자연이해로부터 발생하였다. 지구 환경 위기 앞에서 인류는 인간 삶의 가치관, 자연관, 세계관의 근본적인 전환을 요청받고 있다.
서양의 자연관은 오늘날 지구환경위기와 가장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서양의 자연관은 사고를 할 수 있는 존재인 인간을 물질적 존재로서 자연보다 우위에 놓았다. 근대 서구사상가들은 자연을 인간의 이성을 통해 정복해야할 대상이나 인간의 필요에 의해 이용되어야하는 도구적 가치로 가진 것으로 이해했다.
이에 비해 동양인들은 유기체적 자연관을 가지고 있었다.
힌두교인의 자연관은 모든 자연현상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보았으며 힌두교의 윤회사상- 즉 끝없는 순환-에서 인간은 자기중심적 생각을 버리고 우리라는 개념을 가지게 된다. 힌두사상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 주체와 객체를 구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힌두교의 자연관은 생명에 대한 신비감과 경외심 모든 존재들의 상호의존성, 그리고 비이원론적인 사유방식을 가지고 있다. 다만 힌두사상은 지나치게 신비주의적, 형이상하적 이고, 카스트 제도와 같은 생명체 사이의 위계질서를 나누는 등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불교의 자연관 역시 모든 존재의 상호의존성을 강조하며 생명존중의 사상을 가지고 있다. 불살생은 불교의 오계 중에서도 가장 으뜸이며 생명체를 가진 모든 존재는 다 존귀하다는데 기반 하여 있다. 불교의 불살생의 계율은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은 물론 미생물에 까지 이르며 자연 역시 생명을 가진 대상으로서 존중한다. 다만 불교의 자연관은 불교의 현실 은둔적 성향으로서 인하여 실천윤리로서 한계를 지니고 있다.
도교는 자연에 따라 사는 것을 이상적으로 여기며 모든 인위인적인 것을 거부한다.
도교의 무위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이치에 따라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삶을 사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다만 동양의 자연관 중에서 유교적 자연관은 자연을 관리하는 주체로서의 인간을 강조함으로서 서구의 자연관과 어느 정도 닮은 점이 있다.
오늘날 환경위기에 대해 린 화이트 같은 반 기독교적 생태학자들은 기독교에 그 책임을 묻는다. 물론 성서의 일부 구절에 그런 측면이 전혀 없다고 할 수 는 없겠지만 사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기독교와 무관하게 자연의 파괴는 이루어졌다.
사실 성서를 보면 자연과 인간의 상호의존적 관계를 보여주는 구절, 물고기와 새들을 축복하고 동물들의 먹거리를 챙겨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으며 쉼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안식년과 희년제도는 오늘날의 세태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기독교 사상이 서양 사상사 속에서 인간중심적 세계관을 열었다는데 부분적 책임은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기독교 사상 자체보다는 인본주의적 세계관에 훨 씬 더 큰 책임이 있으며, 기독교 창조론의 본래적 의미를 제대로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다면 기독교 자연관은 환경윤리의 주춧돌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자연관.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