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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샘 김동환, 뉴올리언스 전쟁기념관을 찾다
뉴올리언스 WEFTEC 전시장 옆 전쟁기념관을 찾다
한 장의 전쟁 만평이 일깨운 기억, 한국의 《고바우 영감》
지금도 전쟁은 지속되고 있고 세계는 불안해 있는데
2026년 WEFTEC이 열린 미국 뉴올리언스의 어니스트 N. 모리얼 컨벤션센터(Ernest N. Morial Convention Center). 전시장을 벗어나 도보로 15분 남짓 걸으면 미국 국립 제2차 세계대전 박물관(The National WWII Museum)이 나온다. WEFTEC의 분주한 전시장을 뒤로하고 잠시 짬을 내 전쟁기념관을 찾았다.(WEFTEC이 발급한 기자증으로 전쟁기념관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었다.)
낯선 도시에서 혼자 길을 나선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러나 챗GPT와 구글 지도의 도움을 받으니 초행길에 대한 부담도 한결 가벼워졌다. 말도 낯설고 길도 익숙하지 않은 도시에서 인공지능은 단순한 길 안내를 넘어 새로운 공간과 역사를 만날 수 있게 해주는 동행자가 됐다.
뉴올리언스의 전쟁기념관은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역사를 집대성한 국립 박물관이다. 전쟁의 발발과 전개, 유럽 전선과 태평양 전쟁, 노르망디 상륙작전, 그리고 전쟁을 겪은 군인과 민간인의 삶을 다양한 유물과 영상, 증언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전쟁의 역사를 살펴보기에 앞서, 이 도시가 품고 있는 또 다른 역사가 먼저 떠올랐다.
재즈와 축제의 도시, 그 이면에 흐르는 역사
뉴올리언스는 재즈와 블루스, 프랑스풍 건축물, 미시시피강의 낭만으로 유명한 도시다. 거리마다 음악이 흐르고, 프렌치 쿼터의 오래된 건물과 버번 스트리트의 화려한 밤은 여행객을 유혹한다.
그러나 그 화려함의 이면에는 노예무역과 인종차별, 남북전쟁, 빈곤과 자연재해가 남긴 아픈 역사가 자리하고 있다.
1718년 프랑스 식민도시로 건설된 뉴올리언스는 이후 스페인의 지배를 거쳐 1803년 루이지애나 매입으로 미국 영토에 편입됐다. 미시시피강 하구라는 지리적 이점은 이곳을 중요한 무역항으로 성장시켰지만, 그 번영의 한편에는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끌려온 사람들의 고통과 노동이 숨겨져 있다.
재즈의 탄생 역시 이 같은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공동체가 이어온 리듬과 음악적 전통이 블루스와 래그타임, 유럽계 음악의 영향을 만나면서 새로운 음악이 탄생했다. 오늘날 세계인이 즐기는 재즈에는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 빚어낸 창조의 역사와 함께 차별과 억압을 견뎌온 사람들의 삶도 담겨 있다.
재즈박물관도 둘러봤다. 그곳에서는 뉴올리언스를 대표하는 재즈 음악가인 트럼펫 연주자이자 가수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을 비롯해 재즈의 형성과 발전에 기여한 음악가들을 조명하고 있었다.
남북전쟁 당시 뉴올리언스는 남부연합의 주요 항구로서 전략적 가치를 지녔다. 전쟁과 노예제, 인종 문제는 도시의 성장과 문화 형성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음악과 축제가 도시의 얼굴이라면, 그 이면에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 역사적 상처가 있는 셈이다.
24년 전, 버번 스트리트에서 외쳤던 대한민국
뉴올리언스는 나에게 낯선 도시만은 아니다. 24년 전인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열리던 해에도 이곳에서는 WEFTEC이 개최됐다.
당시 환경부의 최병찬 과장과 고(故) 선종오 사무관, 아세아조인트 민신웅 회장, 신진정공 김재호 회장 등 환경 분야 공직자와 기업인들이 함께했다. 물산업 기술을 살피기 위해 찾았던 미국의 버번 스트리트가 어느새 한국 축구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랐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특히 선종오 사무관의 모습은 지금도 선명하다. 기술고시 32회 출신으로 환경부에서 근무했던 그는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다.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날 버번 스트리트의 재즈 카페를 돌며 맥주잔을 들고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을 응원했다.
어떤 술집에서는 양해를 구한 뒤 테이블 위에 올라가 응원단장을 자처하기도 했다. 낯선 외국의 술집에서 한국 축구를 외치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평소의 공직자 모습과는 사뭇 다른 열정이었다. 현지 손님들도 웃음과 박수로 한국 대표팀을 응원해줬다.
그날은 한국과 스페인의 월드컵 8강전이 펼쳐진 날이었다. 양 팀은 연장전까지 득점하지 못했고, 승부차기에서 한국이 5대 3으로 승리했다. 4강 진출이 확정되자 버번 스트리트의 카페마다 환호가 터졌다. 우리 일행이 이곳저곳을 오가며 춤추고, 마시고, 목청껏 응원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혼이 나갈 정도로 들뜬 분위기였다. 이성을 잃기 직전이라고 할 만큼 열광했다. 그러나 그날만큼은 피로도, 시차도, 낯선 도시의 어색함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맥주잔이 부딪치는 소리와 환호성이 거리를 채웠고, 대한민국이 월드컵 4강에 올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모두가 하나가 됐다.
세월은 흘렀고, 그날 함께했던 사람들의 자리도 달라졌다. 특히 사고로 세상을 떠난 선종오 사무관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깊어진다. 당시의 웃음과 열정은 이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이 됐다.
그의 고시 동기였던 김영우 국립환경과학원장, 안세창 기획조정실장, 이율범 제주 유네스코 국제보호지역 글로벌 연구훈련센터장, 조은희 대구지방환경청장, 이창흠 제주도 부지사, 한삼석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겸 사무처장, 정용욱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대표이사등의 이름을 떠올리면 한 사람의 삶이 개인의 추억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함께 일하고, 함께 웃고, 함께 미래를 꿈꾸었던 시간은 남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또 다른 역사가 된다.
전쟁의 현장이 아니었던 도시에 세워진 전쟁기념관
뉴올리언스에 미국 국립 제2차 세계대전 박물관이 세워졌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이곳은 노르망디나 진주만처럼 전쟁의 대표적인 격전지는 아니다. 그런데도 미국의 대표적인 제2차 세계대전 박물관이 이 도시에 자리 잡은 데에는 나름의 역사적 이유가 있다.
그 중심에는 상륙정 생산으로 전쟁 수행에 기여한 기업가 앤드루 히긴스(Andrew Higgins)와 전쟁사를 기록하려 했던 역사학자 스티븐 앰브로즈(Stephen E. Ambrose)가 있다.
뉴올리언스의 히긴스 인더스트리스는 병력과 차량을 해안에 상륙시키는 수륙양용 상륙정을 개발하고 생산했다. 특히 LCVP로 불리는 상륙정은 병사들이 해안에 직접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돼 노르망디 상륙작전 등 연합군의 주요 작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상륙정의 역사는 한국전쟁과도 연결된다.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에서도 LCVP와 같은 유형의 상륙정이 활용됐다. 인천 해안으로 접근하는 상륙정과 상륙 과정은 당시 전쟁을 기록한 사진에도 남아 있다.
미국의 항구도시에서 마주한 상륙정의 역사가 인천상륙작전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새삼스럽다. 전쟁의 무대는 달랐지만, 전쟁을 가능하게 한 기술과 장비는 대륙과 바다를 건너 한반도의 역사에도 흔적을 남겼다.
박물관 설립의 토대를 마련한 역사학자 스티븐 앰브로즈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참전용사들의 구술 기록과 유물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데 힘을 쏟았다. 전투가 끝난 뒤에도 참전용사들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겨 후세에 전달하려는 노력이 박물관 건립의 중요한 토대가 됐다.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역사가 저절로 남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기록을 모으고, 누군가는 자료를 보존하며, 누군가는 그것을 다음 세대에 전달해야 한다. 전쟁터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뉴올리언스에 거대한 전쟁 박물관이 들어선 배경에는 전쟁의 흔적을 잊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집념이 있었다.
아쉬움이 있다면 이곳의 전시는 제2차 세계대전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어 한국전쟁과 인천상륙작전의 역사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한국전쟁과 미 해병대의 활동을 보다 직접적으로 다룬 전시를 보려면 버지니아주 콴티코에 있는 미 해병대 국립박물관 등 다른 기관을 찾아야 한다.
한국전쟁에 참여했던 미군의 역사와 한반도의 전쟁 경험이 미국의 전쟁사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기록되고 있는지, 앞으로도 살펴볼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의 영웅보다 병사의 고단한 하루를 그리다
박물관에서 가장 관심을 끈 것은 거대한 전차나 항공기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전쟁 만평 특별전이었다.
《Drawn to Combat: Bill Mauldin and the Art of War》. 우리말로 옮기면 ‘전쟁을 그리다: 빌 몰딘과 전쟁 만평의 예술’ 정도가 된다.
때로는 장황한 뉴스나 웅변적인 연설보다 한 장의 만평이 더 깊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짧은 선 몇 개와 인물의 표정, 무심한 듯 던지는 한마디가 감동과 울분, 그리움과 아픔을 주사바늘처럼 날카롭게 찔러온다. 웃음이 먼저 나왔다가도 그림 속 현실을 곱씹으면 씁쓸함이 남는다.
빌 몰딘(Bill Mauldin)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보병의 고단한 일상을 그린 대표적인 만화가다. 그의 만평에 등장하는 윌리(Willie)와 조(Joe)는 진흙투성이 군복을 입고 피로에 지친 병사들이다. 전쟁 영웅이라기보다 추위와 배고픔, 피로와 불만을 견디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평범한 군인들이다.
몰딘은 전쟁을 승리와 영광만으로 묘사하지 않았다. 전선의 혹독한 환경과 병사들의 불안, 지휘체계에 대한 불만, 군 조직의 경직성과 전쟁 수행 과정의 모순을 유머와 풍자로 드러냈다.
그의 만평은 《Stars and Stripes》 등 군 관련 매체에 실려 실제 전쟁을 겪는 병사들의 공감을 얻었다. 공식적인 전쟁 홍보가 전투의 목적과 승리의 의미를 강조했다면, 몰딘의 그림은 그 전쟁을 직접 치르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현실을 기록했다.
그림 속 병사들은 지휘관의 기대만큼 완벽하지 않다. 지치고 투덜거리며 때로는 불합리한 명령에 불만을 품는다. 그러나 바로 그 평범함 때문에 그림은 더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전쟁을 수행하는 사람도 결국 먹고 자고 쉬어야 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만평은 잊지 않게 한다.
이 특별전은 단순히 오래된 삽화를 모아놓은 전시가 아니었다. 만평을 통해 당시의 사회 분위기와 권력관계, 군 조직의 문제, 전쟁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읽을 수 있었다. 전쟁의 인간적 측면을 보여주는 기록이자, 권위와 조직의 모순을 웃음으로 드러내는 비판의 언어였다.
전쟁의 기록은 전투 일지와 사상자 통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이름 없는 병사들의 피로와 두려움, 지휘체계에 대한 불만, 전쟁 속에서도 잃지 않으려 했던 유머까지 함께 남겨야 비로소 전쟁의 실체에 가까워질 수 있다.
뉴올리언스에서 《고바우 영감》과 《두꺼비》가 떠올라
빌 몰딘의 만평을 바라보다 문득 한국의 시사만화들이 떠올랐다.
김성환 화백의 《고바우 영감》, 안의섭 화백의 《두꺼비》, 이홍우 화백의 《나대로》 같은 작품들이다. 시대와 배경은 달랐지만, 이들 만화 역시 정치권력과 관료주의, 사회의 위선과 행정의 모순을 날카롭게 꼬집었다.
《고바우 영감》은 평범한 인물의 눈으로 권력과 사회의 부조리를 비춰왔다. 《두꺼비》는 정치 현실과 사회의 모순을 풍자했고, 《나대로》 역시 일상적인 인물과 상황을 통해 정치·행정의 허점을 드러냈다.
이들 작품은 단순히 웃음을 주는 만화가 아니었다. 신문을 펼쳐 든 독자들이 현실을 이해하고 권력의 행태를 비판하며, 때로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불만을 대신 풀어내는 통로였다.
신문의 기사와 사설이 사실과 논리를 통해 사회를 설명했다면, 만평은 몇 개의 선과 짧은 문장으로 그 이면을 드러냈다. 긴 설명을 읽지 않아도 그림 하나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웃음 속에 비판이 있었고, 익살 속에 시대의 아픔이 담겼다.
물론 전쟁 만평과 한국의 정치 풍자 만화가 같은 역사적 맥락에서 탄생한 것은 아니다. 몰딘의 그림은 전쟁터에서 병사들이 겪는 현실을 주로 다뤘고, 한국의 시사만화는 정치와 행정, 사회생활의 모순을 폭넓게 풍자했다. 그러나 권위적인 공식 언어가 놓치기 쉬운 현실을 평범한 사람의 눈으로 포착했다는 점에서는 서로 닮아 있다.
만평은 권력을 직접 무너뜨리지는 못한다. 전쟁을 멈추게 하거나 부조리를 단번에 해결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질서에 질문을 던지고, 감춰진 모순을 드러내며, 침묵하던 사람들에게 웃음과 공감의 언어를 제공한다.
그렇기에 만평은 한 시대를 읽는 또 하나의 역사 기록이다.
역사는 기록하는 사람의 몫이다
전쟁기념관을 둘러보며 다시 생각했다. 역사는 거대한 사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무기와 전략이 있는가 하면, 그 전쟁을 견뎌낸 병사들의 피로와 두려움도 있다. 도시를 번영시킨 무역과 산업이 있는가 하면, 그 번영의 그늘에서 고통받은 사람들의 삶도 있다.
뉴올리언스의 재즈에는 차별과 억압을 견뎌온 공동체의 역사가 담겨 있고, 히긴스의 상륙정에는 전쟁의 승리를 뒷받침한 산업기술의 역사가 담겨 있다. 스티븐 앰브로즈가 수집하고 기록한 참전용사들의 증언에는 기억을 남기려는 집념이 있으며, 빌 몰딘의 만평에는 전쟁을 살아낸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있다.
그리고 24년 전 버번 스트리트에서 한국 축구를 외치던 우리 일행의 기억에도 한 시대의 작은 역사가 남아 있다. 그날 테이블 위에 올라가 응원단장을 하던 선종오 사무관의 모습은 이제 다시 볼 수 없지만, 함께 웃고 환호했던 기억은 여전히 살아 있다.
전쟁기념관을 나서며 생각했다. 기록되지 않은 기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희미해지지만, 누군가 기록하고 전하면 다음 세대의 역사가 된다. 박물관의 전시물도, 만화가의 풍자화도, 신문에 실린 한 컷의 만평도 결국은 사라지는 시간을 붙잡으려는 노력이다.
길샘이 뉴올리언스에서 만난 것은 단순한 전쟁의 역사가 아니었다. 기술을 통해 역사를 바꾼 사람들, 기록을 통해 기억을 지킨 사람들, 그리고 웃음과 풍자로 시대의 모순을 드러낸 사람들이었다.
한 장의 만평이 전쟁의 진실을 돌아보게 하듯, 한 편의 기록은 지나간 사람과 시대를 다시 만나게 한다. 역사는 승리한 사람들의 이야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시대를 살아낸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까지 남길 때 비로소 온전한 가치와 무게를 지닌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80여 년이 흘렀지만, 세계 곳곳에서는 여전히 전쟁이 이어지고 있다. 중동에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당사자들의 충돌과 전쟁의 상처가 계속되고 있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도 끝나지 않았다.
만약 빌 몰딘이 오늘날까지 살아서 만평을 그린다면 어떤 장면을 포착했을까. 트럼프 대통령의 선택과 중동의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비극,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장에서 그는 누구의 표정을 그렸을까. 전쟁의 명분을 말하는 지도자였을까, 명령을 내리는 지휘관이었을까, 아니면 폭격과 피란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야 하는 이름 없는 병사와 민간인이었을까.
아마도 그의 만평은 전쟁을 설명하는 거창한 구호보다 전쟁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권력자의 말과 전장의 현실 사이에 놓인 간극, 승리를 말하는 연설과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삶을 짧은 선과 날카로운 풍자로 드러내지 않았을까.
전쟁의 시대가 달라져도 고통받는 사람들의 얼굴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만평은 과거의 기록에 머물지 않는다. 오늘의 권력과 전쟁을 되묻고,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외면하는지 돌아보게 한다.
전쟁이 끝나도 기록은 계속돼야 한다. 그리고 그 기록에는 승리의 역사뿐 아니라, 전쟁을 견뎌낸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도 남아 있어야 한다.
사진설명:위로부터 세계대전 박물관건물/비번스트리트/만평/인천상륙정/만평/박물관 입구)
(환경경영신문 https://ionestop.kr// 김동환 환경국제전략연구소장, 환경경영학박사, 시인, 문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