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새벽에 천둥 번개가 치는 소리를 듣고 놀라서 깨어 창 쪽으로 보니 빗물이 줄줄 흐른다.
저 멀리 하롱베이 섬들 위에 번갯불이 번쩍 번쩍 하더니 우르릉 쾅 하고 천둥소리도 난다.
그러나 6시 쯤 잠에서 깨어보니 하늘은 또 말짱하다. 스콜이다.
한 낮의 더운 습기가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가 찬 기류를 만나 한 바탕 몸을 푼 것이다.
8시 40 분에 다시 하노이를 향해 떠나다. 마지막 날이다.
새벽의 소나기로 농촌 들녘은 더욱 싱싱하다. 아침 열기에 김까지 피어오른다.
사람들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모내기에 열중한다.
저 사람들 중에 우리와 같은 피가 흐르는 라이따이한의 2세들도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니 베트남의 들녘이 한 결 정답게 느껴진다. 우리 농촌하고 너무나 닮은.
가이드 김희광 군. 아는 것이 많아 청산유수로 베트남의 역사, 정치, 종교 등에 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한다.
한 - 베트남 관계에 대하여도 지식이 풍부하다.
녹십자 영업 부장을 하던 중 베트남에 출장 와서 개인 사업을 시작했는데 현지 사정에 어두워 사업을 말아먹고 가이드 노릇을 하며 재기를 꿈꾼다는 것이다.
남들이 자기를 김형곤 동생처럼 생겼다고 하는데 자신도 그것을 인정하고 김형곤을 개인적으로 좋아했다고 한다.
2년 전 LG 칼텍스 주유소 사장단 120 명이 하롱베이에 관광차 왔는데 그 때 사장들의 여행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김형곤이 같이 왔고 그 일행을 가이드한 사람이 자기였다. 사장들은 둘을 형제간인가 하고 묻기도 했단다.
3박 4일간 둘이는 생긴 것도 비슷하고 성격도 통하는 게 많아 친해졌는데 김형곤은 한국으로 돌아 간 그 뒷날 화장실에서 바로 세상을 떠버린 것이니 생전에 마지막 친한 사람이 자기 아니냐 하며 형곤의 죽음을 애석해 한다.
가이드의 재미난 이야기들을 들으며 창밖을 흐르는 베트남의 노변 모습들을 구경하며 혹은 졸며 어느새 버스는 다시 하노이 시내에 진입. 12시 50 분. 하롱베이 시에서 4 시간을 달려온 것이다.
Seoul House 란 한식점에서 점심. 뷔페식이다.
정말 한국인들 대단하다. 곳곳에 한식점이요 대리점이요 선물가게다.
베트남에 34 만 대군을 보내 싸울 때는 언제고 이제는 서로 돈 벌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1992 년에 수교를 텄으니 국교가 정상화 된지도 어느 듯 15 년이구나.
국가 간이나 개인 간이나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것을 실감한다.
열기가 후끈거리는 하노이 거리를 따라 버스는 달려 독립군 여걸 바딘의 이름을 딴 바딘 광장 도착.
바딘 광장에는 썩지 않도록 방부 처리된 시신을 모신 호치민 묘소, 호치민 박물관 등이 있다.
호치민은 베트남의 국부.
거의 30여 년 동안 베트남 민족운동의 지도자였던 호치민은 제2차 세계대전 뒤 아시아의 반식민지운동을 이끈 인물로 가장 영향력 있는 20세기 공산주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고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오직 민족과 국가만을 위해서 산 사람으로 베트남 국민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있다.
미군과 한국군이 10 여 년간 그렇게 집요하게 전쟁을 수행했고 미국이 2차 대전 때 보다 더 많은 전비를 쏟아 붓고도 결코 승리 할 수 없었던 것은 불굴의 지도자 호치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물관 안에는 온통 호치민의 어록과 사진들로 가득하다. 인자한 미소를 띠고 국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그런데 그 호치민이 우리나라의 이준 열사를 존경했으며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호치민 박물관 주위에는 호치민이 주로 거주하던 방 - 밥 한 공기에 반찬 두세 가지만 먹었던 식기가 보였고, 검소한 집무실, 서재, 지하 벙커로 연결되는 비상 사무실등도 보았다.
날씨가 무더워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그늘에 앉아 가이드가 사주는 아이스크림을 먹어가며 우리는 강행군을 한다.
시내로 나와서 이번에는 자전거 투어.
자전거를 직접 타는 것이 아니고 손님은 자전거 앞에 놓인 의자에 앉고 뒤에서 베트남인이 자전거 바퀴를 저어 나아가는, 말하자면 자전거 인력거다.
거리는 온통 오토바이 천국이라 매연을 마시면서 30 여분 투어를 하다.
하노이 중앙통을 봤다는 의미 정도를 부여한다. 차비는 1,000 원.
어찌 한 장만 달랑 줄 수 있나. 한 장 더 주니 입이 귀에 걸린다.
꼬리아 남바완을 연발하며.
5시에는 라텍스 매장에 들러 또 쇼핑. 그 놈의 쇼핑!
7시에 하노이 한식식당에서 돼지 두루치기에 상추쌈으로 저녁 식사.
마지막 저녁 식사, C1 을 까서 우리 반 남자들에게 한 잔 씩 권하고 그 동안 화끈해 보였던 여자들에게도 한 잔 씩 권하다.
8시에 버스는 수상 인형 극장 공연장에 닿다.
1,000 년 의 전통을 자랑하는 베트남 민속 예술이다.
각종 인형들이 물 위에서 연극을 하는 것이다.
고기잡이 놀이, 용의 싸움, 공작 춤, 모심기 등이 베트남 민속 음악과 함께 물위에서 펼쳐지는데 재미있었다. 공연 중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다가 공연이 마쳐지니까 비도 그친다.
10시경, 5박 3일의 베트남여행 모든 일정이 끝나고 차는 하노이 공항으로 향한다.
가이드에게 마이크를 빌려 내가 앞에 섰다.
“여러분, 신쪼아. (반갑습니다.) 하롱베이 초등학교 6학년 2반 동창생 여러분, 이제 우리의 수학여행이 조금 후면 끝납니다. 얼굴이 익을 무렵 헤어지니 아쉬운 마음에서 여러분에게 인사라도 하고 싶어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여행 5 복을 아십니까?
이 번 여행은 여행 5 복을 두루 갖춘 성공적인 여행이라고 생각됩니다.
첫째, 날씨 복입니다. 사흘 동안 맑은 날씨가 계속되어 일정에 아무 차질이 없었던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둘째, 잠자리 복입니다. 우리가 머물렀던 하롱 스프링 호텔, 에어컨이 얼마나 시원했습니까?
샤워 시설 좋았지요, 침대 푹신했지요, 전망도 좋았지요?
셋째, 먹거리 복입니다. 모두 10끼의 식사를 했는데 끼니 때 마다 기대를 했고 항상 기대대로 혹은 기대 이상으로 우리 입맛에 맞는 음식이 나왔지요.
넷째, 볼거리 복입니다. 다 좋았지만 하롱베이의 섬들, 정말 환상적이지 않습니까?
그에 못지않게 베트남 들판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통해서 베트남의 모습을 주마간산으로 볼 수 있었지요? 삼판배를 타고 한 수상 관광도 즐거웠고 호치민 박물관과 그 주변의 여러 건물들, 수상 인형극까지 재미있게 봤습니다.
다섯째, 사람복입니다. 여행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좋아야 여행이 즐겁지 않습니까?
우리 6학년 2반은 20 대의 설영수 군으로부터 60 대 후반의 김순재 여사에 이르기까지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가 분포된 반인데 한 사람도 다친 사람 없이, 아픈 사람 없이, 한 사람도 모이는 시각에 늦는 사람 없이, 맛있는 것 있으면 나누어 먹고 항상 웃고 인사하며 정말 한 식구가 되어 지내왔습니다. 이제 헤어지려고 하니 너무 아쉽습니다.
이렇게 다섯 가지 복을 다 가졌으니 이 번 여행이 복스러운 여행이었다고 나는 자부합니다.
비록 헤어져도 아름다운 하롱베이의 섬들과 함께 여러분들이 생각날 겁니다.
하롱베이 하면 여러분들의 얼굴이 떠오르겠지요. 그
리고 인연이 있으면 언젠가 또 만나겠지요.
하롱베이 초등학교 6학년 2반 동창생 여러분, 언제나 건강하십시오.“
박수를 받으며 마이크를 넘겨주고 나니 여행이란 참 좋은 것이구나 하는 느낌이 새삼 다가온다.
굿바이 베트남!
첫댓글 버드나무님은 7복을 갖추셨네요. 제자복과 제자 남편복. 이만하면 끝내 주는 여행입니다. 무사히 돌아오셔서 반갑습니다. 멋진 여행기에 베트남 잘 돌아 보았습니다. 다음 편은 어디일까요? 기대해 봅니다.
남계의 여행기를 읽고 나니 소설 한편 읽은것 보다 더 재미있었습니다. 가보지 않은 하롱베이이지만 남계덕분에 간것보다 더 자세히 알았습니다. 분에 넘치게 방에 가만히 앉아서 눈으로... 고맙습니다.
베트남 5박3일 여행 정말 즐거웠습니다. 기행문을 읽는 동안 내가 여행에 동참한 착각을 여러차례 했어요. 그만큼 글에 몰두했다는 것일까요. 여행의 마지막 부분에서 류총무가 마이크를 잡고 한 일성에는 사물의 합리성보다 정을 중요시하는 한 민족의 혼이 내재된 함께 참여한 여행자들에게 잊지못할 추억의 영원히 간직하고 그리워해야할 걸출한 여행 후담이 될 것입니다. "인연이 있으면 또 다시 만나겠지요.." 아멘!
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친구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친구들이 재미있게 읽어주시니 신이 나서 쓰게 됩니다. 신까먼. (감사합니다.)
훌륭하시니 제자복이 있으시지요. 산행이나 여행기가 어찌나 섬세한지 같이 동행한듯 느껴집니다. 베트남을 가긴 갔는데 곁 둘러서 하롱베이를 안갔으니 김빠진 맥주격이죠? '인도 차이나' DVD를 보며 내가 주인공 대신 배위에 서서 그 곳을 감상합니다만....앞으로도 사모님과 여행 많이 하시고 추억의 여행기를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