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11: 30 약한 자와 병든 자 - 고전 11: 34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 상 )
고전 11: 30 약한 자와 병든 자 -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
잘못된 태도로 성찬에 참여한 결과, 고린도교회 안에는 심신으로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았고, 잠자는 자 곧 죽은 자도 적지 않았다.
1] 그러므로
이 말은 본 절이 앞 절에 대한 증거임을 시사한다.
2]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약한 자'(*, 아스데네이스), '병든 자'(*, 아르로스토이), '잠자는 자'(*, 코이몬타이)를 이해함에 있어서 혹자는 영적인 측면으로만 해석한다(Eichhorn, Krause, Morus).
그러나 영적인 차원에서라면 '약한 자'나 '병든 자'는 의미상 같은 것이기에 꼭 그렇게만 해석되지 않으며 '잠자는 자'는 '죽은 자'를 나타내는 용어이다(Edwards).
따라서 오히려 본 절은 성만찬에 합당치 못하게 참여함이 영적 병약함과 죽음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연약함과 죽음까지도 초래하게 됨을 시사한다.
(1) 약한 자
육신의 연약함 같이 영적 약한 자가 된다.
(2) 병든 자
연약함이 심화하면 병들게 된다.
(3) 잠자는 자
영적으로 맑은 상태에 있던 자가 죄를 범하면 영적으로 흐려져 혼탁하여지고 기도가 막히며 침체가 찾아와 잠자는 현상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죄의 문제를 회개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죽게 된다.
고전 11: 31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
개역 성경에는 '데'(*, '그러나')가 생략되어 있다.
사본에 따라 '데'가 삽입되어 있기도 하고(*, A,B,D), '가르'(*, '왜냐하면')로 대체(代替)되기도 한다(C 사본).
그러나 '데'가 더 신빙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Godet) 문맥상으로도 알맞다. '데'는 논쟁에 귀한 논리적인 진보롤 나타내는 것으로, 성만찬과 하나님의 징계 문제를 연결시키고 있다.
1]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1) 살폈으면
'살폈으면'(*, 디에크리노멘)은 29절과 상관성을 갖는데, 그것은 주의 몸과 피의 가치를 분명히 이해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그리스도를 기쁘게 하는가를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다(Godet).
(2) 판단을 받지
'판단을 받지'(*, 에크리노메다)는29절의 '죄를 먹고 부시느니라'와 연관된다. 29절에서 '죄'가 하나님의 징계나 심판을 의미하는 것처럼, 본 절에서도 '판단'은 하나님의 징계를 의미한다.
고전 11: 32 주께 징계를 받는 것 -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
개역 성경에는 '데'(*, '그러나')가 생략되어 있다. '데'는 앞절에 대한 대조적인 개념을 소개한다.
바울은 앞 절과 본 절에서 세 가지 용어를 통해 세 단계의 '판단'에 대해 논증한다(Godet).
첫 단계, '디에크리노멘'(*)으로서(31절)
그리스도인들 스스로가 자신을 판단하는 것이다.
둘째 단계, '크리노메노이'(*, '판단을 받는 것')로서(32절)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로 하여금 회개케 하고 세상과 함께 정죄(情罪)받지 않게 하기 위한 사랑의 표현이다.
셋째 단계, '카타크리도멘'(*, '죄정함을 받은')으로서(32절)
마지막 심판 때에 영원한 심판을 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1]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본문에서도 '판단을 받는 것'과 '징계를 받는 것'은 동일시 된다.
본 절의 '하나님의 징계'는 잘못한 자식을 회개케 하기 위한 아버지의 사랑의 표현으로서 하나님의 구속의 수단이다.
* 딤전 1: 20 -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 딤후 2: 25-26 – 25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26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라.
* 딛 2: 12-13 – 12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 히 12: 6 -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2]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본 절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에게 징계하시는 목적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서 그 징계는 영원한 심판을 막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영원한 심판의 때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이다(Edwards).
성도가 징계를 받는 것도 유익하다. 그것 때문에, 그가 회개함으로 세상과 함께 영원한 멸망을 당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전 11: 33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
고린도교회는 성찬식이 당파적 식사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1] 그런즉(*, 호스테)
이것은 이제까지 성만찬에 대해 논증한 것에 대한 결론임을 시사한다.
2] 내 형제들아
이는 바울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권속(眷屬)들을 향해 자주 사용하는 애정 어린 표현이다.
바울은 본 장 2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책망과 유사한 강력한 권면을 하기 전에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의 권면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애정 어린 호칭으로 부르고 있다(Godet).
3]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기다리라'로 번역된 헬라어 '에크데케스데'(*)는 두가지로 해석된다.
(1) '환영하다'(to welcome) 혹은 '용납하다'(to receive).
(2) '기다리다'(to wait).
혹자는 전자로 해석해서 '만찬에 서로 용납하라'는 의미로 이해한다(Hofmann, Ruchert). 그러나 본 절에서는 후자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Edwards, Godet).
왜냐하면 본 절은 21절의 '프롤람바네이'(*, '취함이라')와 대조되기 때문이다.
고전 11: 34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 밖의 일들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바로잡으리라. (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찌니 이는 너희의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함이라. 그 남은 것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귀정하리라. )
하나님의 교회의 모임이 정죄받는 모임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1]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본 절은 22절과 연관성을 지닌다.
그것은 어떠한 형편의 사람이든지 간에 먹고 마시는 것 자체에 관심을 갖고 성만찬에 참여하려면 집에 가서 먹으라는 의미이다.
2] 이는 너희의 모임이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본 절은 허기를 메우려고 성만찬에 참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제시한다.
그 이유는 잘못을 범함으로 하나님의 징계를(29-32절) 받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성만찬의 목적을 분명히 이해하고 참여할 것을 권고한다.
3] 그 밖의 일들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바로잡으리라.
(1) 그 밖의 일
'성만찬 외에 다른 문제들에 대한 교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만찬에 대해서 지금 말하지 못한 세부적인 사항을 의미한다(Godet, Grosheide).
본 절은 성만찬의 규례에 대한 설명을 맺으며 바울이 부언하는 내용이다.
(2) 바로잡으리라.
'바로잡으리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탁소마이'(*)는 '정돈하다'라는 의미로(Edwards, Hodge) 아울러 사도 바울의 권위를 암시한다.
바울은 사도로서 모든 규례를 제정하고 정비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