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경춘선 기차여행.
경춘선 열차를 타고 끝에서 끝까지 갈 경우, 청평에 도착하면 드디어 중간정도 왔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위치상으로도 알 수 있듯이 청평역은 청량리와 춘천의 정확히 중간지점에 위치해 있다.
대성리역과 함께 전구간이 기본요금을 받는 유일한 역이지만,
주변이 온통 관광지밖에 없는 대성리와는 달리 이 곳은 지역 중심지로서 큰 축을 담당하는 곳인데다,
주말에는 MT온 대학생으로 평일에는 서울, 춘천으로 가기 위한 주민들로 북적대는 365일 바쁜 역이다.
수도권에 끼인 듯 만 듯한 청평은 산과 들판, 계곡으로 이루어져 화려한 풍경을 자아내는 곳이기도 하다.
산과 계곡을 야틋하게 끼고 있는 여유넘치는 이 곳에서 삶의 여유를 잠시나마 되돌아본다.

수없이 지나가는 버스와 좁은 2차선도로 양 옆으로 정신없이 늘어진 건물들로 복잡한 터미널권과는 달리,
청평 역세권은 번화가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골목길 끄트머리에 조그맣게 위치해 있을 뿐이다.
지나다니는 차도 얼마 되지 않고 택시 몇 대 만이 죽 늘어서 있는 조용한 동네다.
아무래도 수시로 버스가 다니는 터미널이 역보다 상권이 훨씬 활발하게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겠지만,
청평의 경우는 기차역의 수요가 더 많은 편인데도 불구하고 역세권과 터미널권의 심한 격차가 느껴진다.

대성리역과 마찬가지로 청평의 마스코트라 할 수 있는 귀여운 역명판.
대성리가 네모 반듯하게 생겼다면 청평역은 둥글둥글하게 생겼다.
왠지 모르게 사각보다는 원형이 더 정감이 간다.
대성리, 청평역 모두 마스코트 역명판 뒤로 가평의 관광안내도가 그려져 있다.
역명판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관광안내 역할까지 하는 셈이다.

무지개의 일곱 색깔의 중간은 초록색. 앞쪽에 셋, 뒤쪽에 세 가지의 색을 가지고 있는 중간적인 색이다.
경춘선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역 아니랄까봐 역사 전체가 초록색으로 훤하게 도색되어 있다.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자연의 색 초록색.
그런 초록색으로 깔끔하게 단장된 청평역이 이전보다 더 자연스럽고 편하게 느껴진다.

청평역의 광장은 역 광장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조그만 근린공원이나 정원을 연상하게 한다.
역 내부가 꽤 큰 편인지라 바깥에 대합실이 없지만, 대신 나무 주변으로 나무의자가 둘러싸고 있다.
마치 사람들이 산책하다가 잠시 쉬어가는 공원 벤치같다.
그 뒤의 나무들까지 환상적인 조합을 이루어 청평역 광장은 하나의 공원으로 승화된 것이다.

역 내부는 그래도 다른 역들보다 꽤 넓은 편이다.
외부의 모습도 그러하듯이 내부도 금곡역과 완전히 닮아있다.
게다가 역 자체의 생김새만 닮은 것이 아니라,
요즘엔 좀처럼 볼 수 없는 형태의 난로가 중앙에 있는 것도 그렇고 역 입구와 출구가 직선으로 놓여져 있는 것도 그렇고.
표사는 곳과 시간표의 배치까지 모두 완벽한 궁합을 이루어 금곡역과 쌍둥이 모습을 하고 있다.

역 안에는 신물나는 KTX 사진이 아닌 아름다운 호반의 모습을 걸어놓았다.
그렇기 때문인지 매표소 위의 사진이 더욱더 멋있게 느껴진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바로 옆의 청평호반 사진이 아닌 충주호반의 단양8경 사진이라는 점이다.
청평을 상징하는 청평호 사진을 걸어놨으면 상징성도 더욱 크고 굉장히 잘 어울렸을텐데 조금 아쉽다.

청평역은 겉모습은 금곡역을 쏙 빼닮았지만, 역의 구조는 오히려 마석역, 대성리역과 판박이다.
타는 곳과 나가는 곳이 따로 있고 나가는 곳 구석에 조그맣게 맞이방까지 있는...
왠지 이런 구조가 갑갑하지 않고 확 트인 느낌이 들어 더 정감간다.
좁은 역사에 비교적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어 효율적으로 공간을 이용할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좁은 역에 사람은 많고 개방된 공간까지 있으니 무임승차가 쉽게 일어날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실제로 청평역은 나가는 곳에 좀처럼 직원을 배치해 놓치 않는다.
열차 안에서만 걸리지 않고 잘 버티면 역 밖으로 아무렇지 않게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이다.

열차 주의. 문구 자체로만 보면 상당히 위압감이 느껴지는 말이지만,
청평역에서 보니 오히려 친숙한 느낌마저 든다.
사람이 많아도 전혀 각박하게 느껴지지 않는 여유로운 곳.
청평 주민들의 '일상'과 여행객들의 '낭만'을 동시에 끌어안고 있는 역인 셈이다.

귀여운 돌고래 두 마리가 조그만 인공호수를 향해 다이빙을 하려고 한다.
바다와는 전혀 거리가 먼 '산골마을'에 가까운 청평에서 돌고래를 보니 기분이 새롭다.

열차가 오기 전에 사람들이 철길에 올라서서 '한 장의 추억'을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고 있다.
현업중인 철길에 올라서는 일이 굉장히 위험한 짓인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겠지만,
같은 철도라도 경부선, 호남선 철길에 올라서는 것과 경춘선 철길에 올라서는 것은 그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경부선, 호남선에서 철길에 올라서면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끔찍한 기억으로 남겠지만,
경춘선에서 철길을 밟으면 여행의 낭만을 듬뿍 담을 수 있는 추억의 경험으로 남게 된다.

소화물 취급 중지로 더 이상 제 역할을 못하게 된 청평역 화물들이 어지럽게 묶여있다.
화물선은 사용을 아예 안 하는 듯 시커멓게 녹슬어 있다.
화물취급이 애초에 많지도 않았고 그나마 있던 화물도 몰락한 경춘선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조금은 씁쓸하다.
전형적으로 여객에만 의존해 오는 경춘선이기에 열차 이용객 한 명 한 명이 그렇게 소중할 수 없다.

자연과 더불어 낭만을 그려가는 청평역만큼 초록색이 잘 어울리는 역도 없을 것이다.
안개 사이로 아스라히 숨어버린 산과 조그만 산장의 관리소 같은 대합실이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경춘선의 승강장은 전부 비슷비슷한 시기에 개보수를 했는지,
역 안으로 들어오면 그 느낌과 분위기가 어딜 가든 비슷하다.
청평역의 경우는 복선전철화 현장에서 비켜나 있어,
경춘선의 다른 역들과 다르게 고유의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해 오고 있다.

새로운 '경춘전철'은 이 자리에서 좀 더 계곡 쪽에 붙어서 지어진다.
청평호반과 청평유원지와는 더 가까워지지만, 청평면내와는 완전히 떨어져 있는 지점에 역을 짓고 있다.
관광수요는 상당히 많아지겠지만 전체적인 수요는 그다지 크게 늘어날 것 같지는 않다.
대성리역처럼 관광으로서의 역할만 하는 역이 될까봐 불안하다.
좀 더 접근성을 높여서 기존 위치를 지켜내어 공사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생각도 내심 든다.

자연과 너무나도 잘 동화되어 있는 청평역에게는 아직 "복선전철화"라는 말이 낮설게 느껴진다.
하지만 복선전철화라는 이름의 거대한 폭풍이 청평역을 휩쓸 날도 머지 않았다.
여객열차가 운행하는 수도권에서 유일하게 '밟고 싶은 철길'을 간직한 경춘선에서
삭막함의 상징이자 자연과는 완전히 대비되는 전철이라는 단어은 너무 어색하게만 느껴질 뿐이다.
청평 주민들의 "일상"과 여행을 온 여행객들의 "낭만"을 동시에 담고 있는 청평.
삭막하고 답답한 일상 속에서 낭만이 함께 살아 숨쉰다.
'낭만'이 아니면 '일상' 둘 중에 하나로 무조건 치우쳐지는 기차역의 현실.
당장 경춘선만 보더라도 주요역은 모두 극과 극으로 분명하게 갈린다.
하지만 청평역은 가평, 남춘천처럼 일상에 치우치지도 대성리, 강촌처럼 낭만에 치우치지도 않아
그 어떤 역보다도 친숙하게 느껴지고 정감이 간다.
나뿐만 아니라 청평역을 방문한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느낄 것이다.
낭만과 일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있었기 때문에,
청평역이 오랫동안 꾸준히 관심받고 사랑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출처 : http://blog.naver.com/goyasoul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