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도시 생활과 연애의 바이블 ‘섹스 앤 더 시티’ 시즌6에는 잭 버거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처음에는 제법 총기 있는 작가처럼 묘사되지만, 캐리와의 관계가 진행되면서 이 남자는 시리즈 사상 최악의 남자 캐릭터 중 하나로 전락한다. 그 이유는 캐리와의 이별 방법.
이 남자는 캐리와 결별과 재결합을 거듭하다 어느날 큰 꽃다발을 안고 찾아와 달콤한 밤을 함께 보낸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캐리의 노트북에 포스트잇 한 장을 붙여 놓고 남자는 사라진다. 내용은 ‘I’m sorry, I can‘t (love you again 정도로 추정). Don’t hate me’. 쪽지를 본 캐리는 꽃다발을 내팽개치며 분노를 터뜨린다.
미국과 한국의 차이를 느낄 필요 없이, 이런 식의 이별은 모든 사람이 싫어한다. 2013년 한 결혼정보업체가 돌싱 남녀 8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가장 싫은 이별 통보 방법으로 남녀 모두 압도적 1위로 ‘잠수타기’를 꼽았다. 그 뒤에는 순위 차이는 있었지만 ‘문자를 이용한 결별’, ‘친구를 통한 전달’ 등이 이어졌다. 이 싫은 방법의 공통점은 모두 상대방이 마지막 만남을 기피하고 달아났다는 데 있다. 물론 이 순위는 내가 이별을 통보받는 방법을 전제로 물어 본 것이다.
물론 좋은 이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대체 어떻게 하면 사랑하는 이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는다는 것을 덜 고통스러운 경험이 되게 할 수 있을까. 미안하지만 그런 이별법은 없다.
‘잠수’가 최악의 이별 통보라는 사람들의 주장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매일같이 하루에도 열두 번씩 전화와 문자, 톡을 주고받던 사람이 어느날 연락이 끊긴다. 처음에는 무슨 일이 난 게 아닐까 걱정이 시작되고, 걱정이 분노로 바뀌면서 끝없는 자책이 밀려온다. 대체 왜? 내가 뭘 잘못했길래? 다른 사람이 생긴 건가? 나에게 내가 모르는 무슨 문제가? 이런 지옥 같은 경험을 하고 나면 잠수를 타 버린 그(그녀)에 대한 처절한 원망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