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天路)를 걷는 삶(10/2)
-복음 전함에 있어서-
복음을 전하고 전파하며 전달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때로는 이 복음을 전달하고 전파하는 과정에서 여러 많은 고난과 환난을 겪기도 하게 된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부르시고 구원해 주신 주의 은혜에 뒤집어져서, 과거에는 예수님을 ‘훼방하고 핍박하던 자’였으나 이후는 예수님을 증거하고 자랑하며 가르치는 자가 되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과 그의 복음을 전하는 데에 순탄하고 평탄한 길이 놓여진 것이 아니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헐벗었노라”(고후11:23~27)
이러고도 바울은 자랑은커녕 오히려 교회를 염려했으며 예수님만 나타내며 죽음의 길로 향했다.
그는 주의 거룩한 복음을 전하면서 편안과 안전을 생각하거나 먹을 것과 누울 것을 바라지 않고 오직 저 푯대를 향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만을 향해 달려갔다는 뜻이다.
복음을 전하는 데에 때와 시기의 권한은 우리에게 없다. 그것을 아시는 분은 오직 주님 한 분뿐이시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는 데에 항상 힘쓰라고 하시며 동시에 범사에 오래 참음과 자신을 때리며 죄에 대해 경계하라고 분부하셨다.
복음 전함이 사랑이다. 복음만이 죄인된 인간에게 최고의 선물이다. 왜냐하면 주의 복음만이 인생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오늘 하루가 사명이다. 그래서 오늘을 우리가 참고 경계하며 절제하는 것은 오직 주를 위해서이며 그리고 주의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나의 모습에 따라 복음이 전해지고의 여부가 달려 있는 것은 아니다. 주의 복음은 주께서 전하시며 주께서 역사하신다. 내가 잘해서가 아니다는 것이며 내가 전하는 것 또한 아니다는 뜻이다.
우리는 복음의 도구요 통로이다. 나는 뿌리고 또 다른 이는 심었으나 자라나도록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주께서 처음이요 마지막이시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일을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존재들이다. 교회가 자화자찬하는 일은 주께서 하신 일을 도적질한 것이나 다름없다.
분명한 것은, 복음이 전해지는 전도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주의 일하심을 보게 되며 이로 인해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과 새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전하는 것이 은혜를 입는 또 하나의 통로가 된다. 이 귀한 은혜가 넘치시기를 기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