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은 '저출산' 용어를 대체할 수도 없고, 대체해서도 안 된다]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윤석열 정부에서 ‘대책’을 내놨습니다. 그런데 이를 다룬 기사마다 저출산·저출생 용어를 달리 사용합니다. 두 용어는 어떻게 차이가 나는 걸까요.
먼저 출산과 출생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출산’은 ‘아이를 낳음’, ‘출생’은 ‘세상에 나옴’이라는 뜻입니다. 인구학적으로도 의미는 다릅니다. ‘합계출산율’과 ‘조출생률’(Crude Birth Rate)이 대표적입니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한 명이 가임기간(15-49살)에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나타냅니다. 조출생률은 인구 1000명당 새로 태어난 사람의 비율을 말합니다. 2022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8명, 조출생률은 4.9명으로 다른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현재 정책과 법률은 ‘저출산’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에 ‘저출산’으로 규정돼 있는 탓입니다. 대통령 직속기관 명칭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입니다. 정부가 낮은 출산율에 대응해 발표하는 대책명도 ‘저출산 대책’입니다.
몇년 전부터 여성계를 중심으로 ‘저출산’을 ‘저출생’으로 바꿔부르자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저출산’ 용어가 아이를 적게 낳는 주체에 무게를 둔다면, ‘저출생’은 출생인구가 줄어드는 사회 구조에 주목하기 때문입니다. 인구감소의 책임이 여성이 아닌, 성차별적 사회구조에 있다는 인식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가치 중립적인 ‘저출생’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국회에는 저출산·고령사회 기본법의 명칭과 해당 법에서 사용된 ‘저출산’이라는 용어를 ‘저출생’으로 바꾸는 법안이 발의돼 있습니다. 일부 지자체에서도 조례에서 ‘저출생’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출산’과 ‘출생’의 뜻이 다른 만큼 ‘저출산’을 ‘저출생’으로 바꿔 쓰면 안 된다고 설명합니다. 젊은 세대가 아이를 얼마나 낳는지를 파악하려면 인구구조에 영향을 받는 ‘출산율’을 사용해야 하는데, ‘저출생’의 ‘출생’은 ‘출산율’에서 쓰는 ‘출산’과 다른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요즘은 정부에서 개념에도 맞지않게 '저출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인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성평등을 반대하는 사람이 아니라, 성평등을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다만, '개념에 맞게 용어를 쓰자'는 지극히 당연한 주장을 하는 거에요.
'출생률'이라는 용어는 출산율(fertility rate)과는 다른 개념이에요. 출생률은 특정 해에 태어난 신생아 수를 그해 인구로 나눈 것으로, 보통 인구 1000명 당 신생아 수로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실측 데이터이고, 따라서 경향을 통해 미래에 이와 관련된 동향이 어떻게 될지 예측을 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또한, 이것은 인구 증가율과도 다르므로 유효한 흐름을 잡아내는 도구로 사용할 수도 없습니다. 평균 수명은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는 것인데 '출생률'이라는 개념은 특정 해에 태어난 신생아 수를 그해의 인구로 나눈 것이므로 인구 증감 추이를 측정할 수 없는 쓸모없는 도구라는 얘기에요. 게다가 '이민을 가거나 이민을 온 인구'는 어떻게 측정할건가요?
이런 모든 난점은 물론, 개념 자체도 출산율과 다른 출생율이라는 개념을 왜 자꾸 출산율을 대신할 수 있는 개념인 것처럼 쓰려고 하는 것인지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합니다. 이제 여성계의 눈치는 그만 봤으면 합니다. 개념에도 맞지 않는데 억지로 자꾸만 '출생률'이라는 것을 '출산율' 대신 쓰려고 하는 건 정말이지 뭘 모르는 얼치기들의 작태에 지나지 않습니다. 당정은 이제라도 용어 사용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