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한국에서 연이어 조폭 소식이 들려온다.
조폭, 듣기만 해도 무섭다. 옛날에나 곶감이 호랑이 보다 무서웠지 요즘은 아니다. 조폭 가운데 몸에 호랑이 여러마리 붙이고 다니는 오빠들 많다. 뭐 용도 갖고 다니는 데 호랑이 정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이렇게 따지다 보면 당근 제일 무서운 건 조폭이다. 초등학생 들마저 또래들한테 한 대 맞으면 곧바로 조폭을 들먹인다는 세상이다. 조폭 만능시대라고나 할까?
어제 일본에서 들려온 조폭소식은 마치 기타노 다케시 주연의 야쿠자 영화 속 한 장면 같다. 헬멧을 쓴 히트맨(일종의 현대판 자객)이 벤츠 승용차 뒷자리에 탄 폭력조직의 간부에게 총을 난사했다. 물론 총 맞은 스미요시 카이 간부 되시는 분은 즉사하셨다. 조직원만 4만에 육박하는 일본 최대 폭력조직인 야마구치 구미가 움직인 것 같단다. 그러나 규모는 좀 작아도 (그래도 조직원이 만 명이 넘는) 도쿄 터줏대감 스미요시 카이가 가만 있을 리 만무다. 즉각 보복에 나서 오늘 새벽 야마구치 구미 사무실에 대고 총질을 해댔다. 도쿄의 밤거리는 하룻밤 사이에 살벌해졌다.
일본에서는 90년대까지만 해도 <오사카 전쟁>이니 <규슈 전쟁>이니 하면서 이른바 전국구 규모의 야쿠자 조직들이 총,칼을 휘두르는 살벌한 사건들이 끊이지 않았다. 서로 건드렸다 하면 몇 달 며칠을 으르렁거렸다. 80년대 후반에는 폭력조직 두목의 집에 휴대용 로켓포를 발사하는 황당한 사건도 있었다. 연예계 인사들에 대한 야쿠자의 테러는 90년대 들어서도 이어졌다.
길게 보면 600년 짧게 봐도 100년이 넘는 다는 ‘야쿠자’의 역사를 들먹이지 않아도 그들의 위세는 여전히 대단하다. 95년 발생했던 고베 지진 때는 야쿠자들이 구호봉사모임까지 만들어 공개활동을 펼칠 정도였다. 정치권과도 끈끈한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90년 대 이후 사회여론 때문에 활동범위가 다소 위축됐다고 해도 여전히 건설, 연예, 도박, 마약, 주류 등에서 야쿠자의 기반은 탄탄하다는 게 정설이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야쿠자’라는 말은 우리의 조폭과 비슷한 것 같지만 일본 사회에서는 ‘곶감’은 비교도 안 되는 무서운 어감으로 받아들여진다. 일반인들은 공개석상에서는 언급을 꺼리는 말이다. 상대적으로 우리는 아무데서나 ‘조폭’이라는 말을 쓰는 걸 보면 비슷한 단어라도 ‘일제’의 위력이 더한 것 같다.
밤의 제왕 이라는 칭호를 들으면서 경찰과 대등한 수준의 강제력을 지닌 야쿠자. 하지만 검은 벤츠를 타고 남들이 두려워하면 뭐하겠는가. 폭력배는 폭력배일 뿐인데. 깍두기가 아무리 맛있어도 총각김치 되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야쿠자들은 밝은 세상에서는 온전한 힘을 쓸 수 없다. 뱀파이어 같은 처지랄까. 역사가 제 아무리 오래돼도 밤에만 목에 힘을 주고 음습한 곳에서 살아야 하는 게 운명이다.
문제는 이런 야쿠자를 마치 폭력배의 진화된 버전으로 착각하는 인간들이 우리 사회에 적지 않다는 데 있다. 물론 초록이 동색이라고 우리나라의 조직폭력배들이 바로 그들이다. 협객이라고 불리던 시절의 풍류는 간데 없고 온통 야쿠자 따라하기에 급급한 모양새다.
문신은 기본이다. 야쿠자들이 70년대 그랬던 것처럼 검은 색 대형 외제차에 몰입한다. 일식집에서 쓰는 조리용 도구를 무사들의 무기마냥 여러 자루씩 차고 다니는 것도 다반사다. 집에는 우리 칼 대신 일본도를 걸어 놓는다. 기업화하는 양태도 그대로 벤치마킹한다. 밤무대 연예인 공급하기부터 오락실, 연예기획사, 건설업, 사채업으로 운신의 폭을 넓혀가는 게 지상과제다. 돈 좀 모은 원로 두목급들은 예외 없이 넓은 빌라나 고급아파트에 살면서 그럴듯해보이는 명함을 들고 다닌다. 그 아래 행동대장 급들은 두목 반열에 오르기 위해 또다시 밤거리를 누비면서 서민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게다가 지난 90년 대부터는 세계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지방에 거점을 둔 조폭들이 너도나도 일본, 대만의 조폭들과 경쟁적으로 동맹관계를 맺는 것이다. 양쪽으로 덩치들을 줄 세운 뒤 잔을 기울이며 말도 안 통하는 섬나라 조폭들과 ‘형제’임을 과시하는 그들.
어설픈 세계화의 부작용이라고 웃어넘기기에는 너무 씁쓸한 일이다. 우리 조폭들은 그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일본 야쿠자들이 갈수록 극렬해지는 일본 극우단체의 핵심이라는 걸 알고 나 있을까? 90년대 국산 조폭영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된 <넘버 3>란 영화를 보면 그래도 민족적 자긍심이 있는 조폭이 등장한다. 박상면이 연기한 ‘재떨이’란 캐릭터다. 그는 수 틀리면 바로 재떨이를 던지는 단순.무식한 인물이지만 반일감정 하나는 투철한 인물이다. 이제는 그런 지사형(?) 조폭마저 사라지고 돈 되는 일이면 ‘독도가 아니라 다케시마’라고 주장하는 일본 극우의 전위조직과도 부끄러움 없이 손잡는 이코노믹 조폭만 남은 것 같다.
조폭들의 성장에는 영화와 만화도 한 몫을 했다. 화면과 지면을 통해 멋있는 남자로 그려지는 조폭 주인공들을 보면 ‘아 나도 한 번 저런 인생을 살아봤으면’이라는 생각을 하는 청소년들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지방에 이권다툼을 위해 내려갔다가 라면집 주인을 보고 반해서 정의(?)의 주먹을 휘두르는 우등생출신 미남 조폭. 배에 칼이 들어오는 순간에도 ‘많이 먹었다 아이가’라며 여유를 보이는 더 미남 조폭. 어릴 때 첫사랑 앞에만 서면 순한 양이 되는 더더욱 잘 생기고 늘씬한 조폭.
그래도 영화는 약과다. 인터넷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스포츠신문 연재만화의 소재 가운데 상당수가 ‘조폭’이다. 하나같이 잘 생기고 똑똑하다. 싸움이라는 말이 부적절할 정도로 현란한 무술실력은 기본이다. 웬만한 무협지는 울고 갈 정도다.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다가도 필이 꽂힌 여인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안위를 가리지 않고 희생한다. 결론은 늘 권선징악.
이런 콘텐츠를 접하면서 자란 청소년들이 ‘조폭’을 하나의 직업으로 생각하는 건 당연한 결과인 것 같다. 직업만족도가 경찰 보다도 높은 것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친구 중에 조폭 하나만 있으면 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는 거리의 청소년들. 우리 조폭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처럼 자신들을 동경하는 청소년들을 어릴 때부터 끌어들여 미래의 조직원으로 양성하고 있다. 이들이 자라서 ‘멋있는’ 두목을 꿈꾸며 온갖 불법행위를 저지른다.
심각한 문제는 또 있다. 일반인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과거 ‘야쿠자’의 불문율 역시 갈수록 퇴색되고 있다. 그들의 활동영역이 밤에서 낮으로 확장되면서 나타난 일이다. 버젓이 회사를 만들고 사무실을 열어 건설, 채무회수 등에서 공공연하게 돈벌이를 하다 보면 보통사람으로 불리는 서민들과 얼굴을 맞대지 않을 수 없다. 가뜩이나 어른 아이 구분이 없어지는 무례한 사회에서 어리고 철없는 앳된 하부 조직원들은 곳곳에서 점점 겁 없이 폭력을 휘두른다.
그나마 경찰력이 살아 있으면 거기에라도 기대 볼 텐데 불쌍한 우리의 공권력은 갈수록 작아지고 있다. 어린 조폭들조차 ‘인권’을 외치면서 경찰 알기를 우습게 안다.
벌써 일부 지역의 조폭은 러시아에서 밀수한 총기를 다량 보유하고 있다는 설이 나돈 지 오래다. 이렇게 가다가 정말 그들이 총기라도 쓰기 시작하면 뉴욕의 밤거리, 홍콩의 뒷골목, 긴자의 뒷골목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영화 속 암흑가로 변할지 모르는 서울의 밤거리를 상상하면 아찔하기 그지없다.
사족 하나. 우리 수사기관이 조직폭력배와 일반폭력배를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국가보안법과 비슷하다. 수괴 즉 두목과 행동강령이 있으면 바로 ‘조직’으로 간주한다. 예를 들어 영화 속 ‘불사파’ 처럼 수시로 조직기강을 담은 문장을 되새겨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인터넷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조폭들이 과연 그럴까? 강령 외울 필요가 없다. 네이버에 물어보면 다 나올 걸 뭐 하러 어렵게 만들고 외우겠나.
사족 둘. 언론에 보도되는 우리 폭력조직의 이름은 왜 촌스러울까? 사람이름을 딴 @@ 파 같은 경우는 그나마 귀여울 정도다. 제일 웃긴 이름이 지명에 식구를 붙인 ‘&& 식구파’다. 어느 조폭이 체면 깎이게 ‘식구’라는 단어를 지명에 덧대서 조직이름으로 삼을 지 의문이다. 당근 이런 명칭은 우리 형사님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 야 니들 전부 식구가 몇 명이야? 뭐 30명. 이것들 봐라. 전부 그럼 신촌식구야?. 알았어. 니들은 이제부터 신촌식구파야 “ 뭐 이런 과정을 거쳐서 탄생한 이름이다.
사족 셋. 흔히 깍두기라고 불리는 거구에 머리가 짧은 행동대원들을 전문용어로는 뭐라고 부를까? 절대 음식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정답은 ‘병풍’이다. 주로 날랜 조직원이나 간부급 조직원의 주변에 병풍처럼 꼼짝 않고 서서 분위기를 잡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사족 넷. 소문난 보스급 중에는 절대 몸놀림이 둔하고 덩치만 큰 사람은 없다. 물론 60년대 자유당 시절에는 거구의 보스들이 있었지만 이른바 조폭으로 불리고 난 뒤에는 그런 분 절대 없다. 하나같이 날렵하고 탄탄한 몸매를 가졌다. (이거는 몇 분을 직접 만나 본 경험담이다) 눈,귀가 모두 예민한 분들이지만 언뜻 보면 마라톤 열심히 하시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마르고 수더분하게 생긴 분들도 많다
첫댓글 조폭 전문가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