江上(강상) - 杜甫(두보)선생 詩
반절지(35*135cm) 王鐸선생 筆意, 10호 양모필.
강상(江上) - 두보(杜甫)
江上日多雨 강상일다우
蕭蕭荆楚秋 소소형초추
高風下木葉 고풍하목엽
永夜攬貂裘 영야람초구
勳業頻看鏡 훈업빈간경
行藏獨倚樓 행장독의루
時危思報主 시위사보주
衰謝不能休 쇠사불능휴
▶荊楚=① 荊, 楚 둘 다 가시나무
② 중국의 중부, 장강 중류에 위치한
호북 지방의 옛 명칭,
옛 초나라 지역 / 攬=잡아당기다 /
貂裘=담비 모피(毛皮)로 만든 겉옷 /
衰謝=노쇠함. 두보의
「九日 重陽節」이라는 시에
‘干戈衰謝兩相催(전란과 노쇠가
서로를 재촉한다)’라는 구절이 있음.
강위에 하루 종일 비가 내리니
형초의 가을이 쓸쓸하구나.
바람은 높이 불고 낙엽은 지고
긴긴 밤 가죽 외투를 여미게 하네.
공훈을 생각하며 거울을 자주 보고
진퇴를 고민하며 홀로 누대에 기대네.
시절이 위태로워 보은할 생각하니
비록 늙었어도 쉴 수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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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 위로 하루 종일 비 뿌리면
쓸쓸하다. 가을비는 더욱 쓸쓸하다.
한동안 혼자 낚시를 다녔는데
강이건 저수지건 낚싯대 던져
놓은 위로 빗방울 들면
쓸쓸하고 아늑했다.
貂裘는 모피 외투로 가령
‘금모초구(錦帽貂裘)’는
사냥 등 야외 활동할 때 착용했던
모자와 외투를 가리킨다.
장강에 비 뿌리니
형초의 가을이 쓸쓸하구나.
높이 부는 바람에 낙엽은 지고
외투를 여미며 밤을 보내네.
제2연의 1-2구가 유명하다.
야심이나 희망으로 마음이 들뜰
때는 거울을 자주 보게 되고,
자리에서 물러날까 말까를
고민할 때는 홀로 누대에
기대게 된다. 이 구절에서는 절로
아, 하는 탄성이 나온다.
이백이 老莊 계열이라면
두보는 孔子類에 속한다.
그의 시는 괴롭다.
소위 苦吟에 속한다.
관료로서 그다지 성공하지 못한
두보는 기대와 좌절,
頻看鏡(빈간경)과 獨倚樓(독의루)가
반복되는 삶을 살았다.
行藏(행장)은 벼슬길에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을 뜻한다.
왕안석(王安石)의 ‘독사(讀史)’에
주를 달아 놓았지만 이는
논어 술이편 “用之則行, 舍之則藏.
써 주면 나아가 행하고
버려지면 물러나 숨는다.”
에서 나온 말이다.
희망에 들떠 자주 거울을 보다가
실의에 잠겨 홀로 누대에 기대네.
난세에는 나라의 은혜를
갚아야 하니 늙었다고
어찌 쉬겠는가..
夷月堂(이월당)님의 글을 옮겼습니다..
[출처] 190.강상(江上) - 杜甫|작성자 송 석
金希壽(1475~1527)
字는 夢禎, 號는 悠然齋로 趙法을 따랐다.
이 詩帖은 <金石淸玩>에 수록된 것으로 木板으로 된 첩에서 옮긴 듯하다.
江上日多雨 蕭蕭荊楚秋
高風下木葉 永夜攬貂裘
勳業頻看鏡 行藏獨倚樓
時危思報主 衰謝不能休
이하 동아일보=입력 2022-10-07 형극의 삶[이준식의 한시 한 수]〈181
강 위로 날마다 쏟아지는 비,
옛 초나라 땅에 찾아든 소슬한 가을.
거센 바람에 나뭇잎 지는데,
밤늦도록 담비 갖옷을 움켜잡고 있다.
공훈 세울 생각에 자주 거울 들여다보고,
진퇴를 고심하며 홀로 누각에 몸 기댄다.
위태로운 시국이라 임금께 보은하고픈 마음,
쇠약하고 병들어도 그만둘 수 없지.
江上日多雨, 蕭蕭荊楚秋.
高風下木葉, 永夜攬貂裘.
勳業頻看鏡, 行藏獨倚樓.
時危思報主, 衰謝不能休.
―‘강가에서(강상·江上)’ 두보(杜甫·712∼770)
주룩주룩 가을비 쏟아지는 남쪽 지방 어느 강변의 누각.
추풍에 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시인은 밤늦도록 가죽 외투를 쥐고 있다.
언제든 조정의 부름에 응할 수 있다는 충일한 자신감일 테다.
그래서 자주 거울을 들여다보며 공훈을 세우겠다는 의지를 다진다.
하지만 거울에 비치는 건 젊은 날의 기개에 찬 모습이 아니라
‘쇠약하고 병든’ 현재의 모습. 시인의 고뇌가 깊어진다.
무기력한 자아와 우국충정(憂國衷情)의 자아가 서로 갈등하는 지점이다.
이 갈등으로 빚어진 마음의 결손(缺損)을 도무지 채울 수 없는 이 밤,
시인은 ‘홀로 누각에 기대어’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스스로 더 이상 나라를 위해 기량을 발휘할 수 없다는 좌절감을 느끼면서도
차마 그 좌절감을 자인하지 못하는 회한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패기와 공명심으로 점철된 젊은 날의 찬란한 광휘가
아스라이 추억으로 묻히고 마는 쓰라린 경험을 감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시는 시인의 말년 무렵인 55세 때 쓴 작품. 청년 시절 도처를 만유(漫遊)하고
폭넓은 독서와 교유를 통해 삶의 지혜를 터득한 두보이지만,
끝없는 구직 활동과 방랑, 전란과 질병 등 겹겹의 장애 앞에서
그는 형극(荊棘)의 삶을 살아야 했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