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조(落照)처럼
장석민
어렵게 찾아온 가을
어느 휴일 늦은 밤
전철 안에 쌀쌀한 공기가 함께 달리고 있다
갑자기 내려간 기온
여름에서 겨울로 수직 낙하하는 것인지
번지 점프하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낮에는 빼곡하던 노약자석이 텅 비어 있다
이제는 노약자석에 앉아도
눈치 보이지 않는 나이
조용히 가을밤의 어둠을 뚫고 있다
어느 역에서 탄 할머니
맞은편 의자에 앉는다
골격이 크다
젊었을 때는 힘 좀 썼을 것 같은 느낌의 노익장
자리에 앉자마자 상의를 벗고 민소매 차림으로
바지를 둘둘 말아 올려 무릎 위까지 걷는다
한동안 휴대전화를 쳐다보더니
어느 순간 잠이 든다
상의와 함께 둔 커다란 비닐 봉투
삶의 흔적이 보이는 듯한 물건들
누구를 만나 한 잔 했을까
누가 열 받게 한 것일까
슬리퍼도 벗어 버리고 맨발로 앉아
숙면의 바다로 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낙조(落照)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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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가~사)
낙조(落照)처럼
장석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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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8
24.10.04 13:28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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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밖이 아니라 온도 조절이 되어 있는 전철에서 옷을 벗는다?
열 받고 있었는데 바로 전철을 탔나 보네요.
늦은 밤에 전철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는
한때는 장미꽃처럼 살았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술 한잔 하시지 않았을까 싶네요. ㅎ
전철안 풍경이 그려집니다.
그러게요
술 한 잔 하고 늦은 밤 전철에서 편하게 잠든
젊었을 때는 하지 못한 행동을 하는 용기
때론 그런 날도 있어야겠지요
나이가 찬란한 낙조처럼 잘 익어가야 할 텐데요~
사진은 얼마 전에 강화도 여행 가서 찍은 낙조~
찬란하고 아름다운 낙조처럼 사는 사람들
많은 사람들의 노년의 삶이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맞은 편 타인을 관조하는 시인님의 모습도 한 편의 시가 될 듯하네요~
세파를 견디며 살아가는 서민들의 애환이 모두
한 편의 시가 될 듯한데요
그것을 다 표현을 못하고 있습니다.
편안한 휴일 되시기 바랍니다.
무슨 이유로 슬리퍼를 벗고
의자에 앉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