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계속되는 공직(公職)의 幻(illusion)
최 순 태
30년의 공직을 마무리 하고 퇴직한지 2년이 다 되어간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공무원으로 착각하며 환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지난달 대구 시내 중앙의 어느 단체에서 사흘간 교육을 받았다.
내가 공무원 생활을 그만 둔 1년까지는 틀에 박힌 직장생활에서 벗어나 취미를 즐기는 등 자유로웠으나 그러한 생활도 서서히 싫증이 나면서 무언가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 위해서였다.
이틀째 오전 교육을 끝내고 옆자리에 앉은 형님벌인 교육생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던 중 그분이 내게 “선생은 공무원 출신이요”라고 말하였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그러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제가 공무원 생활을 한 사람인줄 어떻게 알았습니까?”하고 물어보니 오랫동안 사람들을 대하다 보니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직업을 알 수 있단다. 시청에서 퇴직하여 일반인이 되었어도 여전히 나에게 공직자의 체취가 남아 있는 까닭이리라!
맨 처음 공무원에 입문하여 동사무소에 발령을 받았을 때가 생각이 난다. 그 때 제5공화국 정권이 대통령 직선제개헌을 하기 위한 국민투표 실시가 예정되어 있었다. 근무가 시작되자마자 선거인명부 작성 작업에 투입되었다.
지금은 전산으로 선거인명부를 추출하지만, 당시에는 명부 용지에 먹지를 대고 직접 볼펜으로 한자로 선거인의 성명을 기재하고 주소를 적어서 5부의 선거인명부를 작성하였다.
이윽고 투표일이 되어 국민투표가 실시되었으나, 투표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부족하여 투표율이 저조하였다. 마감시간이 가까워져도 좀처럼 투표에 참가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투표가 마무리되자 투표구 선거 간사와 총무가 당직실에 들어가 무언가 작업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투표에 참여하지 않아 남은 투표용지를 챙기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당직실 안을 들여다보니 정상적인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투표 다음날 동장님이 내게 난생 처음 해보는 투표사무에 대한 소감을 물어보았다. 나는 “동장님 이런 투표가 어디 있습니까?”라며 항의하였다.
동장은 “투표사무가 다 그렇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였다. 선거를 치루었으면 난리가 났을 일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이 되려고 공부할 때 내가 만일 공무원이 된다면 모든 일을 올바르고 처리하고 정의를 지키겠다고 다짐한 나는 상당히 실망하였다.
처음에 동사무소에 임용될 때 보직을 받지 못했으나 선배공무원들이 상급기관으로 전보되어 빈 자리에 배치되어 주민등록과 병무업무를 맡을 때도 사리에 어긋난 지시나 강요를 무수히 받았으나, 되도록이면 원리원칙대로 하려고 노력하였다.
상급기관인 구청으로 전보되어 여러 부서를 거치면서 근무할 때 상관들의 무리한 요구와 일관성 없는 지침 등으로 갈등을 겪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일을 당하면서도 몇 번을 참고 이겨내려고 하였으나 결국 참지 못하고 상사와 다투기도 하였다. 나중에 이러한 일로 내가 피해를 보지는 않았을까 생각해 보지만 그런 경우는 없는 듯 하였다.
원래 일만 열심히 할뿐 사교성이 없는 나는 상위 직급으로 올라갈 때 같이 발령받은 동료보다 늦게 진급을 하였다. 물론 공무원이 승진하는 보람에 일을 하지만 나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이렇게 정신없이 일을 하다가 마침내 사업소에서 공직의 마무리를 할 때 팀장이란 보직을 받아 기안을 하는 입장에서 결재를 하는 사람으로 변신을 하였다. 이때 내가 하위직에 있을 때 몰랐던 업무 전반을 알 수 있었다.
기안을 하는 직원들의 서류를 보니 어딘가 모르게 어설픈 문장이 있어도 직원을 가만히 불러 상대방의 의견을 물어보고 수정을 하는 등 최대한 자세하게 가르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나의 자세는 예전에 내가 기안을 할 때 당한 일을 동료들에게 앙갚음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속마음과 달리 동료들이 오해를 한 부분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내가 신이 아니기 때문에 얼마든지 발생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동사무소, 구청, 사업소, 시 본청에서 근무를 마치고 퇴직한 요즈음의 나의 생활태도를 보면 내가 완전히 관청에서 묻은 때가 벗겨지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여전히 가족에게 권위적이며 딱딱하며, 원리원칙을 따지며 융통성이 없다.
일반사회의 일원이 되려면 그 사회의 구성원과 어울리려는 포용심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은 조금 부족한 실정이다. 이제부터라도 제일 가까운 가족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자! 나는 지금 공무원이 아니지 않는가!
앞에서 말한 어느 단체의 교육에서 강사님이 강의실에서 한 말씀이 생각난다. 예전에 자기가 하던 일, 지위 등을 생각하면서 남에게 대접받으려는 생각을 버리면 퇴직 후 어떤 일을 하더라도 떳떳하고 즐겁게 일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누구에게 대접을 받으려고 하지 말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봉사정신을 가질 때 앞으로 남은 삶을 사는데 보람을 느끼고 나의 건강도 좋아지리라 생각된다.
첫댓글 공직자가 살아가는 울타리, 교육자가 살아가는 세상은 늘 답답하고 유치하고 융통성이 없다고 욕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하지만 그게 바르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공직생활하면서 누구나 겪은 애환이지만 막상 글로 표현하기에는 쉽지 않습니다. 30년 말 못할 어러음이 어디 이것 뿐이겠습니까.
진솔한 글 잘 읽었습니다.
30여년의 공직생활에서 느끼신 애환을 진솔하게 쓰신 글 공감 하면서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최상순드림
처음 공직 입문때 국민투표 과정에 있었던 일은 신중하게 표현하였으면 합니다,. 잘못 알수도있고 법정업무는 허술하지 않기때문입니다. 어려운 공직을 잘 마무리하고 정년퇴임의 자부심을 가지고 사회에 적응을 잘하신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30년을 몸담은 공직에서의 애환을 읽으며 어디라도 쉽고 편한 일은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 오랜 세월 근무하면서 체화된 습관은 퇴직 후에도 불쑥불쑥 튀어 나오곤 합니다. 저도 식구들에게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이해하겠어요?'하는 말을 자주 해서 직업병, 이제는 치료할 때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퇴임 후에도 평생의 업이었던 공직에 자부심을 가지고 계시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긴 공직생활에서 겪은 애환이 피부에 와 닿습니다. 저도 공직의 공 비슷한 교직의 공이 남았는 것 같아 비우려고 노력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최순태 선생님! 반갑습니다. 공직에 계실 때도 반듯하고 원칙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모습이 글 속에서 느껴집니다. 그 자부심이 있기에 퇴직 후에도 환상처럼 여전히 그 느낌이 몸에 배어 있으리란 생각을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가끔 학교 앞을 지나다 보면 재잘대는 아이들 소리가 반갑습니다.
선생님의 30년도 아름답게 기억될겁니다. 잘읽었습니다.
퇴직한지 3년이 지났건만 중요한 보고 문서를 놓쳐 허둥대다가 잠에서 깰 때가 있습니다. 아직도 허깨비 같은 공직의 환상을 떨쳐버리지 못해서 일까요? 아내는 몸이 허하여 그렇다고 보약 한재를 먹어보라고 하는데 빈말이라도 그 말이 그럴 수 없이 고마웠습니다.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큰 대과없이 공직생활의 영예로운 퇴임을 축하합니다. 현직때의 마음을 비우면 홀가분 하겠지요. '누구에게 대접을 받기보다 배려하는 봉사정신을 가진다'는 내용에 공감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더 나은 알찬 생활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공직생활 30년간 몸에 베긴 습속으 터어내는 일이 쉬운일이 아닐 것입니다. 아직도 몸에 벤 습관을 되풀이 하려는 자신을 발견하고 고쳐 보려는 노력이 고무적입니다. 그렇더라도 불쾌했던 일 보다는 좋은 일들을 기억에 오래 남겨두고 싶은 일들 으 ㄹ회상해 봄이 더 좋지 않을가 생각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직장을 떠난지 올해로 꼭 20 년입니다. 직장생활 32 년 1개월 휴직도 일년 했지만 지루하다 싶었는데 떠나고보니 그리워지더랍니다. 봉급계산을 수작업으로 하던시절 원이하 몇십전이 틀려도 꼭 찾아내야했던 기억 아무리 찾아도 못 찾아 서류를 돌려가면서 점검하던 시절 그 버릇이 몸에 베었답니다 가계부도 정확해야 넘어가는 나를 영감이 참 답답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