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路曰 君子尙勇乎 子曰 君子義以爲上 君子有勇而無義爲亂 小人有勇而無義爲盜 자로가 말하기를, “군자가 용맹을 숭상합니까?”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君子)는 의(義)를 으뜸으로 삼는다. 군자(君子)가 용기(勇氣)만 있고 의(義)가 없으면 난(亂)을 일으키고, 소인(小人)이 용기만 있고 의(義)가 없으면 도둑질을 한다.”고 하셨다.
尙 上之也 君子爲亂 小人爲盜 皆以位而言者也 尙이란 그것을 받들어 올리는 것을 말한다. 군자가 난을 일으키고 소인이 도둑이 된다는 것은 모두 지위를 가지고 말한 것이다.
尹氏曰 義以爲尙 則其勇也大矣 子路好勇 故夫子以此救其失也 胡氏曰 疑此子路初見孔子時問答也 윤씨가 말하길, “의로움으로써 숭상할 것을 삼으면, 그 용기는 위대한 것이다. 자로는 용감함을 좋아하였기에, 그래서 부자께서 이것으로써 그 잘못을 구제하신 것이다.”라고 하였다. 호씨가 말하길, “이것은 자로가 공자님을 처음 뵈었을 적에 묻고 답한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子路之勇 夫子屢箴誨之 是其勇多有未是處 若知勇於義爲大勇 則不如此矣 又其勇有見得到處 便行將去 如事孔悝一事 却是見不到 蓋不以出公之立爲非 觀其謂正名爲迂 斯可見矣 又曰 若是勇於義 必不仕季氏 주자가 말하길, “자로의 용기에 대하여 공자께서는 누차 경계하고 깨우쳐 주셨으니, 이는 그 용기에 옳지 않은 곳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義에 용감한 것이 大勇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이와 같이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그 용기에 알아볼 수 있었던 부분이 있다면 곧 바로 떠났을 것이므로, 자로가 공회를 섬긴 사건은 오히려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대체로 자로가 위출공의 즉위가 잘못된 것이라고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명분을 바르게 하는 일을 일러 우활한 것이라고 말한 것을 살펴본다면, 이것 역시 알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길, “만약 義에 용감하였더라면, 반드시 계손씨에게 벼슬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此章言君子者有三 其上二者以德言也 其對小人者則以位言耳 이 장에서 군자를 말한 것이 3개가 있는데, 그 중 위의 2개는 덕으로써 말한 것이고, 그 중 소인에 對句한 것이 곧 지위로써 말한 것일 뿐이다.
南軒張氏曰 徒知勇之務 至於犯義者 有之 尙義則義所當爲 勇固在其中矣 남헌장씨가 말하길, “勇에 힘써야 할 줄만 헛되이 알고서 義를 범하는 지경에 이르는 자가 있기는 하다. 義를 숭상하는 것은 義에 비추어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이니, 勇은 본래부터 그 안에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尙義而勇 義理之勇也 勇而無義 血氣之勇也 爲血氣所使而不以義理制之 則其爲害 隨所居而爲大小 故在上則逆理而爲亂 在下則肆欲而爲盜 味子路之言 有自負其勇之意而疑聖門或不以勇爲尙也 若後來進德高 必不復以此爲問矣 경원보씨가 말하길, “義를 숭상하면서 용감한 것은 義理의 용기이고, 용감하되 義가 없다면 혈기의 용기다. 혈기에 의해 부림을 당할 뿐 합당한 이치로 통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해가 되는데, 처한 곳에 따라 크거나 작아진다. 그러므로 위에 있다면 이치를 거슬러서 난리를 일으키고, 아래에 있다면 함부로 욕심을 부려 도적이 되는 것이다. 자로의 말을 음미해본다면, 스스로 자기의 용기를 자부하는 뜻이 있지만 성문에서 혹시라도 용기를 숭상하는 것으로 삼지 않을까 의심한 것이다. 예컨대 나중에 높은 덕에 나아간 경우라면, 반드시 더이상 이것을 가지고 질문거리로 삼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