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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 홀저 LED부터 60년대 이응노 문자추상까지… 정보 전달 넘어 조형 언어와 물질로 진화한 텍스트 예술 세계 |
사진: 송미리내
[송미리내 작가]우리가 매일 읽고 쓰는 '언어'가 캔버스를 채우는 물질이 되고, 도시를 밝히는 전광판의 빛이 된다. 제니 홀저(Jenny Holzer), 글렌 라이곤(Glenn Ligon), 고암 이응노 등 동시대 미술 거장들은 텍스트를 단순히 메시지 전달 도구가 아닌 시각적 조형 언어로 '번역'하며 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읽는 언어에서 보는 예술로의 전환
언어는 본래 정보를 전달하는 가장 익숙한 도구다. 그러나 미술의 영역으로 들어온 언어는 가독성을 잃는 대신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문장이 이미지가 되고, 글자가 선과 면으로 해체되며 하나의 물질적 표면을 형성하는 것이다. 번역회화를 기획한 필자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언어가 '읽는 것'에서 '보는 것'으로 이동하는 하나의 번역 과정"이라고 평가한다.
제니 홀저, 도시의 빛과 공간으로 문장 번역
미국 출신의 세계적인 개념미술가 제니 홀저(Jenny Holzer)는 언어를 미술의 중심 매체로 끌어올린 대표적 인물이다. 1970년대 뉴욕 거리 곳곳에 익명으로 짧고 단정적인 문장을 인쇄해 붙인 '트루이즘(Truisms)' 프로젝트로 처음 주목받았다.
홀저에게 문장은 캔버스나 미술관 벽면에만 머물지 않는다. 포스터, 건축물의 표면, 그리고 거대한 LED 전광판의 빛으로 변모한다. 최근까지 이어진 '라멘츠(Laments)' 시리즈에서도 석관 형태의 구조물과 전광판을 결합해 다양한 사람의 목소리를 공간 속에 흐르게 만들었다. 관람객은 작품 앞에 정지해 감상하는 대신, 도시를 거닐며 거대한 시각 언어로 번역된 문장들과 마주하게 된다.
사진: 블루 틸트 2004 —국제 갤러리, 제니 홀저 공식 홈페이지 발췌
글렌 라이곤, 읽을 수 없는 문장이 만든 검은 회화
미국 작가 글렌 라이곤(Glenn Ligon)은 언어를 회화의 내부로 더욱 깊숙이 끌어들인다. 그의 1990년대 대표작 '화이트(White)' 시리즈는 리처드 다이어의 글을 스텐실과 오일스틱을 이용해 캔버스에 반복적으로 찍어낸 작품이다.
같은 문자를 수없이 겹쳐 쓰면서 화면은 점차 어두워지고 밀도가 높아진다. 결국 텍스트는 본래의 의미를 잃고 거대한 검은 회화적 표면으로 변한다. 1991년 작 '무제(나는 보이지 않는 인간이다)' 역시 랠프 엘리슨의 소설 문장을 화면에 채우고 오일스틱으로 뭉개어 알아볼 수 없게 만들었다. 라이곤의 캔버스에서 언어는 정보 전달 기능을 상실할수록 강력한 물질성을 획득하며 그 자체로 회화가 된다.
사진: 화이트 시리즈, 1995, 종이에 그린 오일 스틱 25.1×17.2cm/ 화이트 시리즈, 1996 종이에 그린 유화 스틱 225 ×17.1cm 라이곤 공식 홈페이지 발췌
이응노, 동양의 문자...현대 추상의 몸으로 바꿔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고암 이응노는 이 같은 질문을 독창적으로 밀어붙인 작가다. 1960년대부터 본격화된 그의 '문자추상'은 단순한 한자의 시각화가 아니다. 글씨와 그림의 뿌리가 같다는 동양의 전통 미학인 '서화동원(書畫同源)'을 서구 현대 추상미술의 맥락에서 재해석한 결과물이다.
이응노미술관 측은 "문자에 담긴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획의 방향과 속도, 먹의 농담과 화면의 균형이 새로운 의미를 창출한다"며 "전통 서예를 그대로 계승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문자 내부의 선과 구조를 해체하고 재조합해 새로운 조형 언어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응노에게 문자란 읽는 기호에서 벗어나 회화, 판화, 조각, 태피스트리 등 다양한 매체의 몸으로 번역된 셈이다.
사진: 군상(People), 1988, 종이에 수묵담채, 38x28cm 이응노 미술관 발췌
대중의 언어 번역하는 회화의 미래
이들 세 작가는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권에 속해 있으나, 언어를 빛, 물질, 움직임 등 다른 감각 체계로 변환했다는 흥미로운 공통점을 지닌다. 작가의 언어나 기존 텍스트를 조형 언어로 번역해 온 미술계의 실험은 이제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대중이 남긴 짧은 문장이나 기억의 파편을 수집해 데이터와 파형으로, 이를 다시 실과 먹 등 섬유 물질로 옮긴다면 어떨까. 관람객이 자신의 언어를 작품의 출발점으로 제공하는 참여자가 될 때, 회화는 단순히 '언어를 보여주는 것'에서 '언어를 번역하는 것'으로 한 단계 더 진화하게 된다.
사진; 바람이 통하는 사이 붉은 실의 방, 2025. 관람자 참여로 남겨준 텍스트/ 소마 미술관 발췌
미술계가 "무엇을 그릴 것인가"를 넘어 "무엇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에 주목하는 가운데, 이어지는 기획 연재 [번역회화④]에서는 '실'이 다시 미술관으로 돌아온 이유를 섬유와 관계 미학의 관점에서 조명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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