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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가애(珊珊可愛)
패옥소리가 사랑스럽다는 뜻이다.
珊 : 산호 산(王/5)
珊 : 산호 산(王/5)
可 : 옳을 가(口/2)
愛 : 사랑 애(心/9)
출전 : 명(明)나라 귀유광(歸有光)의 항척헌지(項脊軒志)
패옥소리가 사랑스럽다는 뜻으로, 산산(珊珊)은 형용사다. 원래는 허리에 패옥을 차고 사람이 걸을 때 가볍게 부딪쳐 나는 소리를 말한다. 사뿐사뿐 부드럽고 아름다운 모습을 형용하는 표현으로도 자주 쓴다.
이 성어는 명나라 귀유광(歸有光)의 대표작 '항척헌지(項脊軒志)'에 나오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항척헌(項脊軒; 귀유광이 곤산에 거처할 때의 서재)은 예전의 남쪽 별실(閤子)이다. 방이라야 사방이 겨우 한 장(丈)이어서 한 사람이 거처할 수 있었다.
백년이나 된 오랜 집이라(지붕의) 먼지와 진흙이 틈새로 스며들고, (비가 오면) 빗물이 흘려내려, 매번 책상을 옮겨가며 살 살펴보아도 옮겨 놓을 만한 곳이 없었다.
또 북향이어서 햇볕을 받지 못해, 정오가 지나면 이미 어두워진다. 내가 조금 보수하여, 위에서 비가 새지 않도록 했다.
(방의) 앞쪽에서 4개의 창을 새로 내고, 담장을 쌓아 정원을 둘러싸서, 이로써 남쪽을 햇볕을 가로막아, 햇볕이 반사되도록 만들자, 실내가 비로소 밝아졌다.
또 뜰에 난초와 계수나무, 대나무를 섞어 심으니, 오래된 난간들도 또한 경관이 나아졌다. 책을 빌려 서가를 가득 채우고, 편안히 쉬면서 노래를 읊조리고,(간혹) 조용히 단정하게 앉아 있으면, 자연의 온갖 음향이 귀에 들리는 듯하다.
(그러나) 뜰과 계단은 오히려 고요하고, 작은 새는 때때로 날아와 모이를 쪼아 먹으며, 사람이 가까이 가도 날아가지 않는다.
보름달 밤(三五之夜), 밝은 달이 담장을 반쯤 비출 때면, 계수나무 그림자가 서로 뒤엉켜, 바람이 불면 그림자가 따라, 움직이는데, 밝고 깨끗한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珊珊可愛).
項脊軒,舊南閤子也。室僅方丈,可容一人居。百年老屋,塵泥滲漉,雨澤下注,每移案,顧視無可置者。又北向,不能得日,日過午已昏。余稍為修葺,使不上漏;前闢四窗,垣牆周庭,以當南日;日影反照,室始洞然。又雜植蘭桂竹木於庭,舊時欄楯,亦遂增勝。借書滿架,偃仰嘯歌,冥然兀坐。萬籟有聲,而庭階寂寂,小鳥時來啄食,人至不去。三五之夜,明月半牆,桂影斑駁,風移影動,珊珊可愛。
바람이 그림자를 흔들다
귀유광의 항척헌지에 대해
1.
귀유광은 명나라 때 사람이다. 과거에 무려 여덟 번이나 떨어졌고 예순에 비로소 진사가 되어 벼슬길에 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전까지 사숙을 열어 시와 도를 논하였는데, 학생만도 1천여 명이 되었다고 한다.
유명한 글로는 ‘선비사략’과 ‘사자정기’ 등이 있다. 과거를 회상하거나 가까웠던 사람들을 애도하는 산문을 많이 남겼는데, 그의 글들은 사실성을 바탕으로 풍부한 감정을 드러낸다.
‘항척헌지’는 귀유광이 기거했던 ‘항척헌’이라는 자신의 쪽방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 쪽방의 경치, 어머니, 할머니, 그리고 그의 아내에 대한 추억들로 가득한데, 그 추억은 애정과 눈물들과 더불어 켜켜이 쌓여 있다.
먼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그의 예민한 감수성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집에는 늙은 할멈이 있었는데, 일찍이 여기에서 살았다. 할멈은 돌아가신 할머니의 시녀였다. 두 대에 걸쳐 유모를 하고 있었기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녀를 각별히 대우하였다.
집 서쪽은 여자들이 기거하는 규방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할멈은 어머니가 머물렀던 곳을 일일이 가리키며 이렇게 말하였다. “도련님의 어머니가 바로 여기에 서 계셨지요.”
할멈은 또, “도련님의 누이가 제게 안기어 앙앙 울면 도련님 어머니가 문을 두드리며 ‘아가, 추우냐? 배가 고프냐?’ 하셨답니다. 그러면 제가 문 뒤에서 답을 올렸지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내가 울면, 할멈이 따라 울었다.”
귀유광은 어머니를 일찍 여위었나 보다. ‘할멈’이 들려주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기실 아무것도 아니다. 어머니가 잠깐 들러 ‘아가 추우냐, 배가 고프냐?’라고 물은 것이다. 그럼에도 귀유광은 서럽게 울었을 것이다.
감성이 풍부한 귀유광은 이 단순한 대사 속에서 어머니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금세 알았던 것이리라. 어머니를 일찍 여윈 귀유광은, 어머니 이야기만 나오면 슬펐을 것이고, 그런 그를 내 마음 역시도 짠하게 저려 온다.
이것은 아내와의 추억에 관한 것이다. “(내가 뜻을 품고 항척헌에서 지낸 지) 다섯 해 뒤에 내 아내가 시집왔다. 때로 방안으로 와 내게 옛 일을 묻거나 혹 책상에 기대어 글을 읽었다. 내 아내가 친정으로 가면 여러 여동생들이 ‘듣자니 언니 집에는 문간방이 있다고 하던데, 또 문간방은 뭐예요?’라고 물었던 것을 얘기해 주었다. 그 후 6년이 지나 내 아내는 죽고, 집은 무너졌지만 수리하지 않았다.”
이 짧은 이야기 속에 그가 아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아내가 비스듬히 누워 애교 섞인 목소리로 옛일을 물으면 귀유광은 추억 속에 잠기어 느릿느릿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사랑했던 아내가 죽었을 때 그는 얼마나 슬펐을까. 왜 그가 사랑했던 여자들은 그토록 일찍 죽어야 했던 것일까.
이렇게 보자면 항척헌은 자신보다 먼저 죽은 어머니, 할머니, 아내에 대한 애도인지도 모른다. 또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자신에 대한 조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 슬픔은 수백 년이 지나도 소진되지 않고 지금 우리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 글에서 귀유광이 추억하는 것은, 잊을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이거나 대단한 것이 아니다. 매우 사소하고 평범한 것들, 언제든 잊어버려도 그만인 것들이다.
여기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다. 언제든 잊어버려도 그만인 사소한 것들을 기억한다면, 역설적으로 그는 이 항척헌과 관련된 혹은 그의 어머니, 할머니, 아내와 관련된 얼마나 더 많은 기억들까지도 잊지 않고 있단 말인가.
보잘 것 없는 것을 드러냄으로써 그리고 그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것까지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면, 그 너머에는 더 많은 추억들이 아로 새겨 있을 것이다.
2.
내가 이 글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문장과 관계되어 있다.
三五之夜, 明月半牆, 桂影斑駁.
風移影動, 珊珊可愛.
깊은 밤중에 밝은 달이 담장에 반쯤 걸리면 계수나무가 알록달록 그림자를 만든다. 바람이 그 그림자를 옮겨놓을 때 살랑거리는 소리가 좋았다.
여기에서 특히 좋아하는 부분은 ‘바람이 그림자를 흔들다(風移影動)’이다. 그림자는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빛이 투과하지 못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림자는 물질임에도 비물질에 가까워서 우리가 잡으려고 애써도 잡을 수 없다. 바람이 그림자를 움직일 수는 없다. 사실 이 말은 바람이 불어 나뭇잎을 흔들었고, 그러자 그림자가 움직였다는 말이다.
‘풍이영동’이라는 말은 나뭇잎이라는 매개를 지워버림으로써 인과법칙을 내파하여 바람은 그림자로 직결시킴으로써 우리의 인식 너머로 솟구친다.
바로 여기에 문학적 표현이 있고, 문학의 정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문학은 우리의 이성과 논리가 닿을 수 없는 곳까지 나아갈 수 있다. 문학은 우리의 이성 너머로 더 너머로 무수히 도약한다. 하여 문학은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늘 인식 너머를 지향하니까.
3.
바람이 그림자를 흔들다, 라는 말을 수학공식처럼 사용하여 ‘항척헌지’ 전체를 해석해볼 수 있다.
우선 바람의 자리에 항척헌을 대입한다. 그런 후 그림자에 해당하는 것을 찾으면 된다. 이것을 이렇게 바꾸어 말할 수 있다.
항척헌을 추억함으로써 떠올린 것은 그 공간보다는 어머니, 아내, 할머니 등등 주로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항척헌을 통해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렸다,라고 한다면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었다,의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림자까지를 흔드는 건너뜀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항척헌을 통해 떠올린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 항척헌을 둘러싼 사람들,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 그런 것들을 상실한 귀유광일 것이다.
이 글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다.
“그러나 이후로 내가 밖에 많이 있어서 항상 거처하지 못했다. 지금 뜰에는 내 아내가 죽던 해에 손수 심은 비파나무가 자라고 있을 것이다. 지금 무성하게 우뚝서서 그곳을 덮고 있으리라.”
귀유광은 자신의 외로움과 쓸쓸함의 깊이를 저 비파나무로, 그 외로움과 쓸쓸함의 두께를 비파나무 잎의 무성함으로 옮겨 놓고 있다.
아, 어찌 그의 글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산산가애(珊珊可愛)
명나라 귀유광(歸有光)의 대표작 '항척헌지(項脊軒志)'는 애잔한 글이다. 항척헌은 고향집의 서실 이름이다. 한 사람이 겨우 거처할 만한 공간인데, 백 년이나 묵어 비만 오면 천장에서 빗물이 새고, 진흙이 떨어졌다. 북향으로 앉으면 해를 받지 못해, 오후면 이미 어두워지는 그런 방이었다.
이 방을 물려받은 그는 수리부터 했다. 지붕을 새로 이어 비가 새지 않게 하고, 창을 네 개나 두어 환하게 했다. 뜨락엔 꽃나무를 심고 난간을 둘러 눈을 기쁘게 했다. 책을 시렁 가득 꽂아두고, 누워 휘파람 불다가 고요히 앉아 책을 읽었다. 온갖 자연의 소리가 들려왔다. 정원은 적막해서 작은 새가 이따금 와서 모이를 쪼고 갔다.
나는 특히 이 대목이 좋다. '보름밤 밝은 달이 담장에 반쯤 걸리면 계수나무 그림자가 어른댄다. 바람이 흔들어 그림자가 움직이면 쟁글쟁글 그 소리가 사랑스러웠다(三五之夜, 明月半墻, 桂影斑駁, 風移影動, 珊珊可愛).'
귀유광이 이곳을 특별히 아꼈던 것은 어머니와 일찍 세상을 뜬 아내와의 추억이 깃들어서다. '항척헌지'는 이렇게 끝난다. '마당에는 비파나무가 있는데, 내 아내가 세상을 뜬 해에 손수 심은 것이다. 지금은 이미 높이 자라 일산(日傘)만 하다.' 마음이 애틋해진다.
▶️ 珊(산호 산)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구슬옥변(玉=玉, 玊; 구슬)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刪(산)의 생략형(省略形) 冊(책)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珊(산)은 ①산호(珊瑚: 산호류를 통틀어 이르는 말) ②패옥(佩玉: 허리띠에 차는 옥) 소리 ③비틀거리는 모양 ④조잔(凋殘)하다(빼빼 말라서 쇠잔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산호 호(瑚)이다. 용례로는 몸에 석회질의 골격을 가진 산호충의 유해가 쌓이고 쌓여서 된 바위를 산호초(珊瑚礁), 산호로 만든 비녀를 산호잠(珊瑚簪), 산호빛과 같은 유약을 산호유(珊瑚釉), 산호를 어획하는데 쓰이는 기구를 산호망(珊瑚網), 산호를 갈아서 만든 구슬을 산호주(珊瑚珠), 나뭇가지처럼 생긴 산호의 가지를 산호지(珊瑚枝), 산호초가 수면 위에 드러나서 이루어진 섬을 산호도(珊瑚島), 사람의 손으로 만든 산호를 조산호(造珊瑚), 장식품에 쓰기 위하여 인공으로 만든 가짜 산호를 가산호(假珊瑚) 등에 쓰인다.
▶️ 可(옳을 가, 오랑캐 임금 이름 극)는 ❶회의문자로 막혔던 말이(口) 튀어 나온다는 데서 옳다, 허락하다를 뜻한다. 나중에 呵(訶; 꾸짖다), 哥(歌; 노래) 따위의 글자가 되는 근본(根本)이 되었다. 또 나아가 힘드는 것이 나갈 수 있다, 되다, 그래도 좋다, 옳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可자는 ‘옳다’나 ‘허락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可자는 곡괭이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可자는 본래 농사일을 하며 흥얼거린다는 뜻으로 쓰였던 글자였다. 전적으로 노동력에 의존해야 했던 농사는 매우 힘든 일이었다. 그런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이겨내고자 흥얼거리던 노래가 바로 농요(農謠)이다. 그래서 可자는 곡괭이질을 하며 흥얼거린다는 의미에서 ‘노래하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후에 可자가 ‘옳다’나 ‘허락하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지금은 여기에 입을 벌린 모습의 欠(하품 흠)자를 결합한 歌(노래 가)자가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可(가, 극)는 (1)옳음 (2)좋음 (3)성적이나 등급 따위를 평점하는 기준의 한 가지. 수,우,미,양,가의 다섯 계단으로 평점하는 경우에, 그 가장 낮은 성적이나 등급을 나타내는 말 (4)회의(會議)에서 무엇을 결정하거나 어떤 의안을 표결할 경우에 결의권을 가진 사람들의 의사(意思) 표시로서의 찬성(동의) (5)…이(가)됨, 가능(可能)함의 뜻을 나타내는 말로서 동작을 나타내는 한자어 앞에 붙음 등의 뜻으로 ①옳다 ②허락하다 ③듣다, 들어주다 ④쯤, 정도 ⑤가히 ⑥군주(君主)의 칭호(稱號) ⑦신의 칭호(稱號) 그리고 ⓐ오랑캐 임금의 이름(극)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시(是), 옳을 의(義),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不), 아닐 부(否)이다. 용례로는 할 수 있음을 가능(可能), 여러 사람의 의사를 따라 의안을 좋다고 인정하여 결정함을 가결(可決), 변화하거나 변경할 수 있음을 가변(可變), 움직이거나 이동할 수 있음을 가동(可動), 대체로 합당함을 가당(可當), 가능성 있는 희망을 가망(可望), 두려워할 만함을 가공(可恐), 하고자 생각하는 일의 옳은가 그른가의 여부를 가부(可否), 얄미움이나 밉살스러움을 가증(可憎), 불쌍함이나 가엾음을 가련(可憐), 눈으로 볼 수 있음을 가시(可視), 나눌 수 있음이나 분할할 수 있음을 가분(可分), 어처구니 없음이나 같잖아서 우스움을 가소(可笑), 참고할 만함이나 생각해 볼 만함을 가고(可考), 꽤 볼 만함이나 꼴이 볼 만하다는 뜻으로 어떤 행동이나 상태를 비웃을 때에 이르는 말을 가관(可觀), 스스로 생각해도 우습다는 뜻으로 흔히 편지에 쓰이는 말을 가가(可呵), 법령으로 제한 금지하는 일을 특정한 경우에 허락해 주는 행정 행위를 허가(許可), 옳지 않은 것을 불가(不可), 인정하여 허락함을 인가(認可), 아주 옳음이나 매우 좋음을 극가(極可), 안건을 결재하여 허가함을 재가(裁可), 피할 수 없음을 불가피(不可避),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불가능(不可能), 될 수 있는 대로나 되도록을 가급적(可及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것을 가시적(可視的), 현상이나 상태 등이 실제로 드러나게 됨 또는 드러나게 함을 가시화(可視化), 침범해서는 안됨을 불가침(不可侵), 의안을 옳다고 결정함을 가결안(可決案), 옳거나 그르거나를 가부간(可否間), 불에 타기 쉬운 성질을 가연성(可燃性), 높아도 가하고 낮아도 가하다는 가고가하(可高可下), 동쪽이라도 좋고 서쪽이라도 좋다는 뜻으로 이러나 저러나 상관없다는 말을 가동가서(可東可西), 머물러 살 만한 곳이나 살기 좋은 곳을 가거지지(可居之地), 어떤 일을 감당할 만한 사람을 가감지인(可堪之人), 그럴듯한 말로써 남을 속일 수 있음을 가기이방(可欺以方) 등에 쓰인다.
▶️ 愛(사랑 애)는 ❶형성문자이나 회의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본디 천천히걸을쇠발(夊; 천천히 걷다)部와 기운기엄(气; 구름 기운)部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음(音)을 나타내는 천천히걸을쇠발(夊)部를 뺀 글자 애(가슴이 가득차다, 남을 사랑하다, 소중히 하다, 아끼다)와 좋아하는 마음에 다가설까 말까(夊) 망설이는 마음의 뜻이 합(合)하여 사랑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愛자는 ‘사랑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愛자는 爫(손톱 조)자와 冖(덮을 멱)자, 心(마음 심)자, 夊(천천히 걸을 쇠)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금문에 나온 愛자를 보면 단순히 旡(목맬 기)자와 心자가 결합한 형태였다. 이것은 사람의 가슴 부위에 심장을 그린 것이다. 그러니까 금문에서는 사람의 가슴에 심장이 들어가 있는 모습을 그려져 ‘사랑하다’를 표현했다. 이러한 모습이 변하면서 소전에서는 마치 손으로 심장을 감싸 안은 것과 같은 형태가 되었다. 그래서 愛(애)는 어떤 명사(名詞)의 밑에 붙어서, 위의 명사의 내용에 대하여 가지는 자애(慈愛), 사랑 등을 나타내는 어미(語尾)의 뜻으로 ①사랑, 자애(慈愛), 인정(人情) ②사랑하는 대상(對象) ③물욕(物慾), 탐욕(貪慾) ④사랑하다 ⑤사모(思慕)하다 ⑥가엾게 여기다 ⑦그리워하다 ⑧소중(所重)히 하다 ⑨친밀(親密)하게 대하다 ⑩역성들다(옳고 그름에는 관계없이 무조건 한쪽 편을 들어 주다) ⑪즐기다 ⑫아끼다, 아깝게 여기다 ⑬몽롱(朦朧)하다, 어렴풋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사랑 자(慈),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미울 증(憎), 미워할 오(惡)이다. 용례로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애국(愛國), 사랑하는 마음이나 남녀 사이에 서로 그리워하는 정을 애정(愛情), 자기가 사랑하는 말을 애마(愛馬), 사랑하고 좋아함을 애호(愛好), 사랑과 미워함을 애증(愛憎), 윗사람의 딸을 높여 이르는 말을 애옥(愛玉), 남을 사랑함 또는 열애의 상대자를 애인(愛人), 사랑하여 가까이 두고 다루거나 보며 즐기는 것을 애완(愛玩), 아끼고 소중히 다루며 보호함을 애호(愛護), 본이름이 아닌 귀엽게 불리는 이름을 애칭(愛稱), 어떤 사물과 떨어질 수 없게 그것을 사랑하고 아낌을 애착(愛着), 사랑하고 사모함을 애모(愛慕), 좋아하는 사물에 대하여 일어나는 애착심을 애상(愛想), 사랑하는 마음을 애심(愛心), 사랑하고 좋아함을 애요(愛樂), 겨울철의 날이나 날씨 또는 시간을 아낌을 애일(愛日), 사랑하는 아들이나 아들을 사랑함을 애자(愛子), 귀여워 하는 새 또는 새를 귀여워 함을 애조(愛鳥), 사랑하는 아내 또는 아내를 사랑함을 애처(愛妻), 남의 딸의 높임말을 영애(令愛), 형제 사이의 정애 또는 벗 사이의 정분을 우애(友愛), 아쉬움을 무릅쓰고 나누어 줌을 할애(割愛), 모든 것을 널리 평등하게 사랑함을 박애(博愛), 남달리 귀엽게 여겨 사랑함을 총애(寵愛), 남녀 사이에 서로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사랑함을 연애(戀愛), 널리 사랑함을 범애(汎愛), 아랫 사람에게 베푸는 자비로운 사랑을 자애(慈愛), 이성에게 자기의 사랑을 고백하여 상대편도 자기를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일을 구애(求愛), 어질고 남을 사랑하는 마음 또는 어진 사랑을 인애(仁愛), 자타나 친소를 가리지 아니하고 모든 세상 사람을 똑같이 사랑함을 겸애(兼愛), 매우 사랑하고 소중히 여김을 애지중지(愛之重之), 자기의 나라와 겨레를 사랑함을 애국애족(愛國愛族), 남을 자기 몸같이 사랑함을 애인여기(愛人如己), 사람은 덕으로써 사랑해야 함을 애인이덕(愛人以德),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함을 애주애인(愛主愛人), 사랑이 지붕 위의 까마귀에까지 미친다는 뜻으로 사람을 사랑하면 그 집 지붕 위에 앉은 까마귀까지도 사랑스럽다는 말을 애급옥오(愛及屋烏), 얼음과 숯이 서로 사랑한다는 뜻으로 세상에 그 예가 도저히 있을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빙탄상애(氷炭相愛)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