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이세모 - 백기연
그리고 일본유학중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체포
이게 이유야
윤동주는 어릴 적부터 민족학교 교육을 받고
사상적 문화적으로 심독했으며 친구 감화 등에의해
대단한 민족의식을 갖고 내선(일본과 조선)의
차별 문제에 대하여 깊은 원망의 뜻을 품고 있었고,
조선 독립의 야망을 실현시키려 하는 망동을 했다.”라고 적혀 있다
?
1943년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福岡刑務所)에 투옥,
100여 편의 시를 남기고 27세의 나이에
옥중에서 요절하였다.
사인은 일본의 소금물 생체실험으로
인한 사망인 것으로 사료된다는 견해가 있고
또한 그의 사후 일본군에 의한 마루타
생체실험설이 제기되었으나 불확실하다.
25살에 감옥에가셔서
27살에 돌아가셔
가족분들이나 친구분들은
저말듣고도 믿지못했대
왜냐면
윤동주시인은 엄청 건강하셨던 분이심
그리고 생체실험???;;;;;;
What?;
식염수가 피를 대체할수있는지
알아보려고 몸에 식염수 주입하는 실험
이실험을 당하셨다는 이야기가
가장유력해
이게아니더라도
윤동주 시인에게 생체실험한건
확실하다고 봄
-
윤동주에게 주사한 물은 다름 아닌 후쿠오카 앞바다의 바닷물로
2000년대 미국 국립도서관 기밀해제 문서 중에서
1948년 일본 전범재판 관련 문서에 당시 큐슈제국대학이
실제로 연구하고 있던 대체혈액 실험의 일환으로,
후쿠오카 형무소 재소자들을 상대로 생리식염수 대체용액을
수혈하는 생체실험을 했다는 증언이 쓰여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
요절이라고는 하지만, 윤동주는 사고나 병으로 죽은 것은 아니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정체 모를 주사를 반복해서 맞았다고 한다.
언젠가는 일본인의 손에 의해, 그 전모가 밝혀져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일본 문학 교과서)
(진짜 눈물남
이렇게 슬플줄 몰랐어
대충을 알고있던내용인데..)
....
독립운동가 이며 서정시인은
1945년 2월 16일
오전 3시 36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 27세였다.
그가 죽고 10일 뒤
'2월 16일 동주 사망, 시체 가지러오라'
는 전보가 고향집에 배달되었다.
그런데 뒤늦게
'동주 위독하니 보석할 수 있음.
만일 사망시에는 시체를 가져가거나 아니면
큐슈제대 의학부에 해부용으로 제공할 것임. 속답 바람'
이라는 우편 통지서가 고향집에 배달되었다.
후일 윤동주의 동생 윤일주는 이를 두고
"사망 전보보다 10일이나 늦게 온 이것을 본 집안
사람들의 원통함은 이를 갈고도
남음이 있었다."고 회고하였다.
[위키백과]
저때가 8.15광복
6개월전 그토록 바라시던걸
결국 못보고 떠나셨어
너무 안타까워
그리고 편지봐 악마가 따로없어
남의나라 독립운동가를
해부용으로 제공한대;;;;;;;
악마같아8ㅁ8
윤동주 시인 사후에
시인이 존경하시던
정지용 시인에 의해서
윤동주 시인의 글이 세상에 알려지게되
시집 이름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생전에 내고싶어하셨으나
일제 검열에의해 내지못하심
마지막으로 윤동주시인의
생전 모습과 시올리고 끝낼게
오른쪽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있읍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헤는 것은
쉬이 아츰이 오는 까닭이오,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오,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별 헤는 밤이면 中
-
누나
이 겨울에도
눈이 왔읍니다
흰 봉투에
눈을 한 줌 넣고
글씨도 쓰지말고
우표도 붙이지 말고
말쑥하게 그대로
편지를 부칠까요?
누나가신 나라엔
눈이 아니온다기에
윤동주-편지
읽어준 세모들 고마워 :)
스크랩풀었어 ~
첫댓글 후우... 좋다.. 그 부암동에 윤동주 기념관있는데 거기도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