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샤이닝'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여인 역할로 영화 팬들의 기억에 선명한 미국 여배우 셜리 듀발이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영국 BBC가 11일(현지시간) 전했다. 그녀는 우디 앨런 감독의 클래식 작품 '애니 홀'과 '내시빌'에도 출연했다. 이름 때문에 원로 배우 로버트 듀발과 관련 있지 않나 추측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는데 아무런 관계 없었다.
두 차례 결혼했는데 두 번째 남편이 1984~86년 결혼생활을 유지한 가수 폴 사이먼이었다.
1989년부터 동거해 온 댄 길로이는 할리우드 리포터에 그녀의 죽음을 확인해주며 "내 사랑, 다정하고 대단한 인생의 파트너이자 친구가 우리 곁을 떠났다. 너무 많은 고통 끝에 뒤늦게 이제야 그녀는 풀려났다. 훨훨 날아가, 아름다운 셜리"라고 말했다. 길로이에 따르면 고인은 텍사스주 자택에서 당뇨병 합병증으로 잠자던 중 세상과 작별했다.
듀발이 크레딧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는 로버트 알트먼이 연출했고, 그녀에게 칸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기고 영국아카데미(BAFTA) 후보로 지명됐던 드라마 '세 여인'(3 Women, 1977)이 있다. 3년 뒤 그녀는 역시 알트먼이 제작한 뮤지컬 '뽀빠이'에서 여주인공 올리브로 로빈 윌리엄스와 호흡을 맞췄다.
그러나 듀발은 할리우드에서 잊힌 여배우가 돼 20년 동안 스크린을 멀리한 뒤 지난해 '포레스트 힐스'로 컴백했다.
커다랗고 튀어나온 듯한 갈색 눈과 뻐드렁니, 엉뚱한 카리스마로 듀발은 독특하고 묘한 설득력을 지녔다. 그녀는 1970년 다크 코미디 '운명의 맥클라우드'(Brewster McCloud)로 알트먼 감독과 첫 인연을 맺었다. 이듬해 '맥케이브와 미세스 밀러'(McCabe and Mrs Miller)로 다시 뭉쳤다. 그 다음 작품으로 1930년대 은행강도를 위해 몰락하는 여인 역할로 '보위와 키치'(Thieves Like Us) 연기를 시켜본 뒤 알트먼 감독이 "네가 잘하는 건 알겠는데 네가 위대한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한 것이 "내가 걸려 들어 여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됐다"고 털어놓았다.
감독 역시 그녀에게 사로잡혀 그녀는 "매력있고 멍청하며 복잡미묘하며 정적이고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추의 모든 면을 흔들 수 있다"고 말한 적도 있다.
알트먼은 미국 사회와 정치, 컨트리 음악을 신랄하게 풍자한 '내시빌'(1975)에 다시 그녀를 캐스팅했다. 그 다음 협업은 '세 여인'이었는데 듀발은 말 많고 유행을 좇는 헬스 스파 직원을 연기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앤느 빌슨은 그녀의 연기 가운데 가장 빼어났다며 "1970년대 가장 위대한 연기 가운데 오뚝한 연기"라고 극찬했다.
듀발은 또 '애니 홀'(1977)에서 알비(우디 앨런)와 데이트하는 롤링 스톤 기자 팸 역할로도 영화 팬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하지만 역시 가장 널리 알려진 배역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호러 클래식 '샤이닝'에서 소름끼치는 호텔 관리인 잭 니콜슨의 아내 웬디 역할이었다. 촬영 과정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그녀는 "하루 12시간을 울어야 했다. 온종일, 마지막 아홉 달 연속으로, 주당 5~6일은"이라고 회상한 적도 있다.
그 뒤 듀발의 출연 작품은 테리 길리엄의 'Time Bandits', 스티브 마틴과 호흡을 맞춘 'Roxanne'로 이어졌다. 그녀는 자신의 프로덕션 회사를 차려 1980년대 사랑받은 어린이 TV 쇼 'Faerie Tale Theatre'를 만들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영화 출연이 줄기 시작해 가뭄에 콩 나듯 제인 캠피언의 '여인의 초상'에만 출연했고, 2020년 영화계 레이더에서 사라졌다.
일간 뉴욕 타임스는 그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로스앤젤레스 자택을 파괴한 1994년 지진의 여파와 오빠가 암 진단을 받은 데 따른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봤다. 지난 5월 그녀는 NYT에 변덕스러운 영화산업을 탓했다. 그녀는 "난 스타였다. 난 주역이었다. 사람들은 그저 나이를 먹는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이건 폭력"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설명을 청하자 "만약 사람들이 정말 친절하다면, 그리고 갑자기, 그들이 당신을 배신한다면 당신은 어떤 느낌일 것 같냐"고 되묻고 "당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당신은 결코 그것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다치는 거야, 그게 사실이라고 믿을 수 없으니까"라고 말했다.
듀발이 2016년 '닥터 필'에 출연했을 때 건강 문제에 대한 우려가 증폭됐다. 그녀는 "아주 아프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죽은 뒤 로빈 윌리엄스의 변신(shapeshifting)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며 심술궂은 세력들이 그녀에게 해를 끼치려고 튀어나왔다고 얘기했다.
그 시기에 대해 얘기하며 길로이는 NYT에 "편집증과 일종의 망상"에 빠지게 됐다고 말했다. 왜 '포레스트 힐스'로 스크린에 복귀하겠다고 동의한 이유를 묻자 듀발은 "다시 연기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 요녀석이 계속 전화를 해왔다. 해서 난 바짝 긴장하고 있다"고 답했다.
소설가 니콜 플래터리는 지난해 영국 일간 파이낸셜 타임스 기고를 통해 그녀의 마법이 여전함을 보여줬다면서 듀발을 "궁극의 영화 스타"라고 떠받들었다. 플래터리는 그녀의 재능을 요약하길 "슬플 때 행복하게 연기하며 우매함이 깊이를 가리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 마스터"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