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9장 제가 한동안 <팬텀싱어>라는 음악 경연 프로그램을 정말 행복한 마음으로 보았습니다. 솔로, 듀엣, 트리오, 사중창으로 바꿔가면서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출연자들의 노래 실력에 감탄합니다. 그런데 출연자들의 노래 실력보다 더 감탄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심사위원들의 반응과 심사평입니다. 팬텀싱어뿐만 아니라 성리가 출연하는 보이스 트롯도 마찬가지지만 팬텀싱어는 성악하는 젊은분들이 출연하지 클라식 어려운 곡들이 많이 나옵니다.
심사위원들은 어떤 때는 울고, 어떤 때는 깊은 감명을 받으며 황홀한 표정을 짓습니다. 하지만 같은 노래를 들었던 저는 울지 않았고, 제가 받은 감명은 심사위원들이 받은 감명에 비해 보면 1/10도 채 안 되어 보였습니다. 어떤 경우 노래를 듣고 저는 무덤덤했는데, 심사위원들은 가슴 벅찬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또 심사평에서 제가 전혀 알지 못하는 감상과 평을 말하는 겁니다. 저는 심사평을 들으며 연신 속으로 ‘아, 그런 것이었구나. 그런 걸 느낄 수 있는 거였구나.’라고 말하였습니다. 제가 노래를 듣고 느끼는 행복감이 10이라면, 그들은 100이나 200 아니, 그 이상의 행복감을 느끼는 거 같아 보였습니다.
결론적으로 그 차이가 무엇일까요? 음악을 잘 아는 사람과 잘 모르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그런데 그 차이가 그렇게 큰 건데요 결국 아는 만큼 노래가 들리고, 들은 만큼 행복감을 느낄 테니 말입니다. 그래서 잘 안다는 것이 매우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음악을 잘 아는 사람들은 우선 그런 재능을 타고났을 겁니다. 그리고 그 후 공부도 많이 하여, 좋은 음악을 들었을 때 감동을 받거나 행복감을 느끼는 실력이 높은 겁니다. 하지만 저는 음악을 좋아하긴 하지만, 좋은 음악을 들어도 감동을 받거나 행복감을 느끼는 실력이 낮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그분들에 비해 삶에서 행복감을 느끼기 불리한 조건에서 살고 있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음악을 그것도 클라식을 잘 알면 좋은 노래를 듣고 행복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미술도 잘 알면 좋은 그림을 보고 행복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많은 것 중에서 행복감을 가장 많이 느끼게 될 때는 언제일까요? 아니 최고의 기쁨과 행복을 느낄때는 언제일까요? 그것은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것입니다. 나를 아는 기쁨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나는 누구인가요?”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수많은 사람이 가졌던 물음, 어떤 이들은 평생 그 답을 찾기 위해 애썼던 물음, “나는 누구인가?”입니다. 그 답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알고보니 나는 하나님의 거룩한 아들(딸)입니다. 나는 작은 그리스도입니다. 그것이 정답입니다.
그런데요. 음악은 잘 아는데, 미술은 잘 아는데, 법은 잘 아는데, 정치는 잘 아는데,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는 ‘내가 아닌 것들’을 나로 알고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을 혼이 없다, 영혼이 없다고 합니다.
어떤 이름을 가진 사람, 누구의 남편이나 아내, 누구의 자식이나 부모, 선생님이라는, 음악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나로 알고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그는 좋은 음악을 듣는 순간에는 행복감을 느끼겠지만, 나머지 시간에는 행복감을 느끼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어쩌면 좋은 음악을 듣지 않을 때는 슬퍼하고 두려워하고 미워하고 화를 내고 싸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음악을 듣고, 왜 이 정도밖에 안 되느냐면서 화를 내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좋은 음악만 들으며 살 수는 없습니다. 배우자와 갈등을 겪거나, 자녀가 속을 썩이는 일같은 원치 않는 상황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그는 시궁창 같은 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늘 행복감을 느끼며 살 수 있습니다. 그에게도 원치 않는 상황이 찾아오겠지만, 그런 때라도 그 상황에 감사할 실력이 있는 겁니다. 그가 음악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음악을 들을 때 음악을 잘 아는 사람과 다른 차원에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음악을 들으며 음악만 듣는 게 아니라, 깨어만 있으면 “너는 내가 사랑하는 나의 소중한 아들(딸)이다.”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음악만 들으면 별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겠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 깊은 행복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내가 누구인지도 잘 알고 음악도 잘 알면 더 좋을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늘 거짓자아의 그른 마음과 참나의 바른 마음으로 나뉘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른 마음 상태에서는 내가 누구인지를 몰라서 거짓된 나로 살게 되고, 바른 마음 상태에서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참된 나로서 살게 됩니다. 오늘은 내가 아닌 거짓된 자아로 사는 세상과 참나로 사는 세상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은 친구입니다. 그런데 한 친구는 일주일 전에 자기가 몹시 사랑하는 애인이 다른 남자한테 가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 마음은 지금 지옥 같은 상태입니다. 한편 다른 친구는 일주일 전에 몹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는 지금 마음이 천국 같은 상태입니다. 그런 두 친구가 길에서 우연히 만나 악수를 나눴습니다. 지금 두 사람 눈에 보이는 주변 풍경은 똑같습니다. 하지만 한 친구는 지금 마음이 어때요? 한 사람은 지옥 같고, 다른 한 친구 마음은 천국 같은 상태입니다. 두 사람의 주변 풍경은 똑같지만, 두 사람이 지금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산다는 사실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똑같이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마음 상태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천국의 예배를 드리고 있고, 어떤 분은 그렇지 않는 예배를 드리고 있을 수 있습니다.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여기에 앉아 있다면 그 마음이 바로 지옥같은 마음이요, 정말 나를 재 충전하고, 내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온갖 정성을 다해서 예배를 드린다면 그 마음이 천국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아닌 것들로서 사는 세상과 내가 나로서 주인공으로 사는 세상이 완전히 다릅니다. 이것은 방금 말씀드린 이야기처럼 천국의 마음으로 사는 세상과 지옥으로 사는 세상이 완전히 다름과 비슷합니다. 겉보기에는 똑같은 세상이지만 둘이 주관적으로 지각하는 세상은 완전히 다릅니다.
그 원리는 이런 겁니다. 사람은 자기 마음 상태를 투사한 세상에서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지옥 같은 사람은 그 마음을 투사하여 지옥 같은 세상에서 살게 되고, 마음이 천국 같은 사람은 그 마음을 투사하여 천국 같은 세상에서 살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 객관적 세상이 존재할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런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투사한 주관적 세상만이 존재합니다. 이런 현상을 여러분이 잘 이해하시고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그동안 우리는 ‘내가 아닌 것’을 나로 알고 살아왔습니다. 내가 아닌 거짓된 자아라는 안경을 쓰고 내가 만들어 내는 수많은 것을 나로 알고 살아왔습니다. 어떤 이름을 가진 사람, 누구의 남편이나 아내, 누구의 자식이나 부모,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을 나로 알고 살아왔습니다. 이런 기독교인들의 특징이 뭔지 아십니까? 나는 죄인이라는 생각, 프레임이고 죄인의 안경을 쓰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내가 아닙니다. 이제 참 나를 알아 그 나로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죄인이라는 안경, 정체성을 하나님의 자녀라는 안경으로, 정체성으로 바꾸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인도성자라 불리는 라마나 마하리쉬라가 지은 <진아여여>라는 책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진아가 나옵니다. ‘진아’는 참 나를 가리킵니다. ‘여여’는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뜻하는데,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꼭 그대로의 모습을 가리킵니다. 그 책이 말하듯이 진아로서 여여하게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오늘 설교 부제가 있습니다. 너무 길어서 주보에 넣기가 힘들어 뺏습니다. <네 안의 잠든 거인을 깨우라>입니다. 이것은 책 제목이기도 합니다. 변화와 성공을 위한 일종의 자기계발서지만 그 책의 제목이 마음에 듭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참 나는 내 안의 잠든 거인과 비슷한 성격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나를 잠재우고 내가 아닌 것들로서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아닌 것들로서 살아가기를 중단하고, 내 안에서 잠들어 있는 참 나를 깨워서 그 나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짓된 나의 그른 마음에 있는 내가 아닌 것들, 거짓된 자아는 힘이 아주 약한 소인과 같습니다. 그러나 참나의 바른 마음에 있는 참 자아는 힘이 매우 강한 거인과 같습니다.
죄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거짓 자아의 밝기가 한 개의 반딧불과 같다면,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가진 참 자아의 밝기는 태양과 같습니다. 아니, 우주에는 태양보다 43만 배나 더 밝은 별이 있는데, 하나님의 자녀는 그 별보다 훨씬 더 밝은 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이 얼마나 귀한 가치를 지니는지를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자녀가 자신 안에서 잠들어 있는 겁니다. 자신 안에 잠든 위대한 거인을 깨워 사랑과 권능의 거인으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뜻은 하늘 아버지의 뜻과 같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과 같은 뜻을 세우면 그분은 성령을 통해 우리를 친절하게 도와주십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면 그 세상을 살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음악을 잘 모르더라도, 가진 돈이 적어도, 학력이 좀 낮아도 아무 상관 없습니다. 다만 내가 죄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는 사실을 온전히 알게 되면, 그리하여 지금 이 순간 아버지 하나님께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음을 온전히 알게 됩니다. 내 안에 아버지 하나님의 영적 유전자인 사랑과 권능이 있음을 온전히 알게 되면, 누구라도 자유의 삶, 은총의 세상을 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 안에 잠들어 있는 나는 참으로 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 무한한 사랑을 받는 존재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영적 유전자인 사랑과 권능을 지닌 존재입니다. 여러분이 참 나로서 살기를 열망하여 그 열망을 성취해나가는 복된 여정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