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제봉 숲속
지속된 가뭄 끝에 뒤늦게 도착한 장마다. 그간 비가 간간이 내리긴 했다만 워낙 가물었기에 완전 해갈되기엔 이른 편이다. 바닥을 드러낸 저수지에 물은 다시 채워져야 하고 계곡에도 맑은 물이 철철 흐르려면 장맛비는 더 와야 한다. 중부지방은 국지성 강한 강우대가 형성된다는 칠월 둘째 토요일이었다. 새벽부터 날이 밝아오기를 기다려 길을 나서 집 앞에서 101번 버스를 탔다.
월영동에서 첫차로 출발한 버스는 창원대학과 도청 앞을 둘러 대방동 종점으로 향했다. 나는 법원을 지난 대암고등학교 부근에서 내렸다. 그곳은 국도 25호선 나들목이기도 하고 대암산 등산로 들머리였다. 나는 대암산으로 오르지 않고 성주동 아파트단지를 돌아 용제봉 등산로로 갔다. 새벽 산행을 마치고 하산하는 사람들이 더러 보였다. 나는 시내버스 운행 첫차로 가도 늦은 편이다.
여름 장마철엔 한낮 산행은 자제해야 한다. 흔히 온열질환을 걱정해야 한다. 시골의 고령층이나 건선현장 인부들에게서 더러 발생한다. 산행도 무더위 속에 감행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나는 여름이면 이른 아침 길을 나서 한낮이 되기 전 하산한다. 도시락은 챙기지 않은 빈 배낭이었다. 무척 오랜만에 용제봉으로 가는 길이었다. 겨울에 들리고는 봄은 건너뛰어 어느새 여름이 되었다.
용제봉 등산로는 여름 장마철 이른 아침인데도 산행객들이 많은 편이었다. 근래 성주동 일대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 그곳 주민들이 즐겨 찾는 산이었다. 또한 용제봉 가는 길은 중간에서 여러 갈레로 나누어져 산행객들의 선호도에 따라 목적지가 각기 달랐다. 용제봉 정상까지 가는 사람들보다 불모산 숲속 길을 비롯해 여러 갈래로 나뉜다. 임도 중간에서 되돌아 나오는 이들도 있다.
이른 아침 산행객들은 중장년층이 많았다. 남성보다는 여성이 많았다. 나처럼 단독 산행을 나선 이들도 있고 두셋이 동행하는 이들도 있었다. 등산은 체력 따라 수준별 학습이 가능해 빨리 걷는 이들도 있고 느긋하게 걷는 이들도 있었다. 나는 서둘지 않고 천천히 걸었다. 저만치 아래쪽에선 창원터널로 들고나는 차량들의 바퀴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먼 산에 뻐꾸기소리도 들려왔다.
용제봉은 바깥에서 보기보다 산속에 들면 골짜기가 무척 너름을 실감한다. 아직 장맛비가 본격적으로 내리질 않아 계곡에 흐르는 물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다른 곳의 계곡은 건천이 많으나 용제봉은 달랐다. 물소리가 들려올 만큼 시원한 물줄기기 포말을 이루면서 흘렀다. 상점으로 가는 갈림길 이정표에서 용제봉 방향으로 들었다. 시야에서 산행객의 모습은 점차 줄어들어 갔다.
나무로 된 다리가 개울을 건너게 해두었다. 바위로 된 개울바닥에는 맑은 물이 흘러내렸다. 쉼터 의자에 앉아 한동안 묵상에 잠겼다. 음이온이 나온다는 숲에서 머문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정신은 더 맑아져 오는 듯했다. 쉼터에서 일어나서부터는 지정 등산로를 벗어났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섞여 자라는 혼효림이었다. 숲 바닥은 묵은 가랑잎은 삭아 부엽토가 되어 쌓여 폭신했다.
송전탑이 세워지면서 중장비가 지나면서 훼손된 숲은 다시 복원되어 있었다. 내가 등산로를 벗어나 숲속을 든 까닭은 이맘때 여름철이면 삭은 참나무 등걸에서 자라는 영지버섯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올해는 여태 누적 강수량이 적어 토양 수분이 적은 편이었다. 버섯은 어느 종류나 수분이 넉넉해야 생육 환경이 좋아진다. 비가 적게 내린 편이어서인지 영지버섯은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숲속에서 반시간 남짓 거닐면서 찾아낸 영지는 몇 조각 되었다. 아직 덜 자란 것은 남겨두었다. 영지버섯이 다 자라면 자색이나 한창 자라는 것은 노란색을 띠었다. 숲에서 등산로로 나왔다. 아까 지났던 목책으로 된 교량 아래 계곡으로 내려갔다. 모자와 안경을 벗어두고 맑은 계곡물에 손을 담그고 이마의 땀을 씻었다. 선계가 따로 없었다. 내가 손은 담그고 앉은 너럭바위가 선계였다. 17.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