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군 여행] 6.25 전쟁 참상을 보여주는 역사적 장소 노동당 당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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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군 여행] 6.25 전쟁 참상을 보여주는 역사적 장소 노동당 당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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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여행과 답사라는 것은 어느 계절에 가느냐에 따라 또 다른 상념을 전해주는 묘미가 있긴 한데, 철의 삼각지
[철원, 평강, 김화]라 일컬어지는 철원 답사가 더욱 그렇다. 해방 이후 철원군청이 있었던 관동리 와 궁전리를 병합
하여 관전이라고 이름 지은 이곳에 북한산 노동당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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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여 년 전 남/북 측에 뺏고 뺏기던 철원 지역의 철원 노동당사는 남북의 가슴 아픈 분단과 6.25 전쟁이라는 동족
상잔의 비극 모두 담아내고 있는 건축물이다. 한 여름 어느 날 유랑자가 마음먹고 철원의 노동 당사를 방문하는
날 이었다. 여름의 날씨란 종잡을 수 없는 여자의 마음 이라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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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저수고의 경우 펜스로 막혀있긴 하지만 안의 공간을 그대로 볼 수 있는데, 벌건 대낮에 봐도 굉장히 스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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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만 잔뜩 끼었던 날씨가 장대로 하늘에 구멍을 뚫은 듯이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지는 철원 땅을 방문한 유랑자
는 일단 혼비백산, 과하게 쏟아지는 빗줄기는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퍼 붓는다. ‘勞動黨舍[노동당사]는 1946년 철
원군 전역이 소련군정 치하에 들어갔을 당시 강원도 도청 소재지였던 철원의 읍내인 관전리에 세워진 조선로동
당 철원군당 건물은 그 인근 지역을 관장하기 위해 지은 3층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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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을 거치면서 폐허로 변한 탓에, 1층은 좀 나은 편이지만 2~3층은 골조만 남아 있어 어쩌면 흉물스럽다
고나할까. 오늘 유랑자가 방문한 노동당사의 특이한 이력을 살펴보면서, 아마도 유일한(?) 북한産 North Korea(노
우스코리아)의 국가등록문화재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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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복 당시 미군이 남기고 간 Chicago, Alabama 등의 낙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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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역사를 거슬러 1946년, 북한의 조선로동당이 세운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 소재 조선로동당 철원군
당 건물은 국가유산청 소유로 2002년 5월 근대문화유산에 등록되면서 현재는 철원군이 관리하고 있으며 국가유
산청 공인지정 등록문화유산 제22호가 되었다. 앞서 이야기 한 대로 강원도 철원읍 관전리에 위치하고 있는 勞動
黨舍[노동당사]는 6.25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북한의 노동당사로 이용되었던 건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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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51년 6월 신문 보도에서부터 철원군 내의 '벽만 남은 고층건물'에 대한 신문 기사가 언급되는 것을 보면
이미 그때부터 상당히 파괴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이 건물은 6.25전쟁을 거치면서 더 많은 피해를
입어 건물 전체가 검게 그을리고 포탄과 총탄 자국이 촘촘하게 더해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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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외벽에 북한 측이 적어둔 "우리 인민들의 자유스럽고 행복스러운 생활을 요구..."라는 붉은 글씨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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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모습들이 6.25전쟁과 한국의 분단현실을 떠올리게 해서 1990년대 유명가수이자 인기스타인 '서태지
와 아이들'이 이곳에서 [발해를 꿈꾸며]라는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거나 기타 유명 음악회의 장소로 활용되
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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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을 보면 이곳에 대형 태극기가 걸린 채 그 앞에서 춤을 추고 있는데, 이는 남북이 갈라지고 6.25 전쟁으로 같
은 민족이 서로를 죽인 그 아픔을 뒤로 한 채 이젠 하나가 되어 새로운 평화통일의 시대를 열어가자는 의지가 담
겨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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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당이었으나 북한군에 의해 징발되어 막사로 쓰였기 때문에 공습으로 파괴되어 일부 벽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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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건물 자체가 철근 없이, 벽돌과 콘크리트로만 건축하였다는 것이다. 건축양식은 옛 소련의
영향을 받아 동유럽 근대 건축풍이며 6.25 전쟁 이후 철원군 일부 지역(철원읍, 갈말읍 등)이 수복되면서, 본 건물
뒤편의 방공호를 조사한 결과 조선로동당 당국으로부터 고문 사를 당했던 사람들의 인골과 실탄, 철삿줄등이 대
한민국 육군 병력에 의해 발견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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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기록에 따르면, 1951년 일시적으로 수복되었을 당시 인민군들이 방공호에 숨어서 끈질기게 버텼다는 기록이
있다. 사실 이뿐만 아니라 북한의 점령 하에 있던 대부분의 지역들에는 이렇게 집집마다 방공호가 다수 설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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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노동 당사는 24년 11월 14억 원을 투입해 새로이 보수완료 재개장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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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전 민통선 내부에 위치했을 때(1984년 기준)는 건물 정면 상부에 팻말을 걸어놓고 "북괴노동당 철원
군당이 국민을 수탈하던 건물"이라는 내용을 적어놓고 민통선 출입자들에게 '경고'하던 광고판 역할도 하였다.
문화재 지정 전에는 출입이 자유로 웠던 만큼 건물 내벽은 한국어, 한문, 영어 등 온갖 낙서로 뒤덮여 있다. 또한
미 육군은 철원 수복 당시 이 건물 내부에 통나무 의자를 임시로 여럿 설치해서 교회당처럼 사용하기도 했다는 일
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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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전후 세대로서 미묘하긴 하지만 북한에서 만들었다 생각하니, 왠지 기분이 좀 이상해지는 느낌은 무엇일
까. 묘한 기분과 함께, 유랑자는 천천히 노동 당사를 살펴보았다. 내려앉은 천장과 벽면, 곳곳에 남아 있는 총상의
흔적들에서 경험해 보지 못했던 전쟁의 참혹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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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긴 해도 5.18광주의 참상이 6.25 전쟁을 대변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만 할 뿐이다. 그래서 일까 어쩌면 노동당
사는 '전쟁과 분단의 참상을 오롯이 간직한 곳'이라 하겠다. 유랑자는 노동 당사를 한 바퀴 둘러본 후 중앙 광장에
서본다. 그리고 노동 당사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위압감이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이 건물을 짓기 위해 강
제 동원된 주민들은 또 얼마나 고달팠을까? 또 고초를 겪은 사람들은 얼마나 많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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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일까 이는 당시 철원 주민에 대한 북한의 탄압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건물이기도 하다. 당시 북한에서는
'철통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공산당원을 제외하고는 이 당사 내부 작업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고 한다. 아무튼 이
런저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나보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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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은 지금도 북한에선 강원도 소속이다. 참고로 江原道[강원도]의 '원'은 원산(元山)이 아닌 강원도 原州[원
주]에서 따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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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당사를 둘러본 후 길 건너 '철원 역사문화공원'으로 향하던 중 새로 제작된 도로원표'를 만났다. 도로원표는
도로의 기점, 종점 또는 경과 지를 표시한 조형물로 평강 16.8km, 원산 181.km, 평양 215.1km라고 기록되어 있다.
승용차로 2시간 이내 거리들이다.
그래서 일까 이곳은 단순한 역사적 유물이 아니다. 노동당사 방문은 여행을 넘어, 전쟁의 상처와 분단의 아픔을
느끼며 평화와 화합을 위한 교훈을 얻는 여정이라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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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앞으로 지금의 철원 노동당사는 이적 건축물이 아닌 남북의 아픈 역사와 평화에 대한 염원이 공존하는 장
그 자체다. 유랑자 또한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남북 정상이 언젠가는 이곳 앞에서 손을 맞
잡고 통일을 외치는 그림이 나오길 바래본다.
PS: 철원에 가는 길이 있다면 '철원역사문화공원'과 함께 '노동당사'도 꼭 들러보시기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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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이산 전망대를 둘러 보려 하였으나 세차게 쏟아지는 장대비에 그만 전망대는 다음에 보기로 하고 포기 일단
은 백마고지 기념비가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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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노동당사
►등록문화재 제22호(2002.05.31 지정)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금강산로 265
*(지번):철원읍 관전리 3-5
*전화: 033-450-5558
*주차: 가능
*예약: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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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노동당사 찾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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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나름 유명한 관광지라서 자동차로 갈 경우 '노동당사'라는 이름만 검색하면 대부분의 내비
게이션에서 쉽게 검색된다. 서울에서는 의정부 → 동두천 → 연천 → 신탄리 → 백마고지
역을 거치는 3번 국도를 타는 방법과, 포천 → 영중 → 영북 → 동송을 거치는 43-87번국도
경로가 있다. 주차는 노동당사 옆 공영주차장 또는 바로 건너편의 철원역사문화공원에 할
수 있다. 민간인 출입통제선 바깥쪽에 있어 별도의 검문은 하지 않아 신분증을 지참하지 않
아도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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