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콩 달 콩 교단 반세기 그16 (꽃띠 아가씨난이-2)
난이는 학부형 회장 대풍씨의 고명딸이다. 대풍씨로 말하면 키가6척이 넘는 거구인대다 마을의 단 하나뿐인 기와집의 주인이요, 딱 한척뿐인 발동선의 선주이기도 했다. 셋이나 되는 아들들도 아버지를 닮아 우락부락하기가 아비 버금가는데 난이는 데려온 자식인가? 뽀얀 살결에 실버들마냥 낭창낭창했다. 국수 잘 마는 며느리 수제비 잘 던진다고 성격마저 곱상했다.
딴에는 여고 나왔다고 또래와 격을 두고 더러 젠 척하였다. 그러기에 하숙방에 자는 일은 결코 없었다.
군에 입대하기 전 가정실습 마지막 날이었다. 하숙집 할머니도 손녀와 경주에 있는 딸네 집에 가고 나 혼자 하숙집을 지키고 있었다. 젊은 날에는 시간이라는 놈이 왜 그리도 마딘지 밥솥에 눌어 붙은 누룽지처럼 숟가락으로 엔간히 호벼 파서는 떨어질 생각을 않았다.
시간을 때울 겸 포항에서 영화를 한편 보고, 돌아오는 길에 청하에서는 자장면 곱빼기로 민생고를 해결했다. 그리고 소주병을 뒷주머니에 꾀 차고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며 밤길을 해댔다.
이가리 까지는 시오리 길인데 험한 길은 아니지만 가는 길에 인가가 없어 밤길 걷기를 모두 꺼렸다. 그날 밤은 밤안개마저 자욱이 가라앉아 으스스했다. 나야 가진 거라고는 그거뿐이라 휘적휘적 걷는데 들 입새 어둠 속에서 다급한 여자 목소리가 나를 불러 세웠다.
“고 선생님!”
“…?”
난이였다. 무서워 혹시 마을 사람을 만날 가 서성거렸는데 너무너무 반갑단다. 나도 은근히 반가웠다. 난이는 내 꽁무니를 쫄쫄 따라 걷더니 자기도 술병에 입을 맞추겠다고 했다. 나를 흉내 내어 소주병으로 나팔을 불더니 그녀는 계속 나불거려댔다.
- 좋아하는 운동은? 음식은? 계절은? 노래는? 18번곡은?
- 기억에 남는 영화는? 책은? 왜요?
- 취미는? 형제는? 키는? 몸무게는?
- 여자 친구 있어요? 어떤 스타일이 좋아요?
나중에는,
-커피에 설탕 타요? 각설탕 몇 개? 커피는 어느 방향으로 저어요? 시계방향? 반대 방향?
-와이셔츠 단초는 위에서, 아니면 밑에서부터 끼워요?
-양말부터 신어요, 바지부터 입어요?
이제는 버릇까지 센서 할 모양이었다.
그러다 바닷가 솔밭 길에 올빼미가 푸드덕거리면 내게 몸을 던졌다. 얼마나 호들갑을 떠는지 나는 올빼미 날갯짓보다 그녀의 비명에 더 놀랐다. 마을이 가까워지자 그녀는 아예 나의 팔에 매달렸다. 그녀의 조그마하고 탄력 있는 가슴이 뭉클뭉클 팔꿈치에 찔렸다. 그러나 그녀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도리어 내게 매달려 런닝 스탶으로 발뒤꿈치를 번가라 까딱거리며 깝죽거렸다. 그때마다 그녀의 볼륨은 더 세게 팔뚝에 부딪쳐왔다.
마을 초입에서 헤어져 하숙집에서 씻고 나니 누가 봉창을 두드렸다. 난이였다. 너무 고맙다며 대구포와 집에서 담근 술을 들고 왔다. 단둘이 술잔을 나누었다. 향긋한 것이 입에 살살 녹아 내렸다. 그러나 사람을 금방 노을처럼 취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주전자 바닥을 보기도 전에 쌕쌕거리더니 스르르 무너지면서 중얼거렸다.
“사실은 이 방에서 한번 자고 싶었어요. 오늘 여기서 잘 거야! 돼죠?”
기절초풍할 노릇이었다. 여럿이 자는 것과 1;1로 자는 것은 뉘앙스가 엄청 달랐다. 종다리처럼 쉴 새 없이 종종거리던 그녀가 어느새 조용했다. 그대로 두면 정말 100년은 족히 잘 듯 싶었다. 나는 그녀를 깨웠다. 허나 꿈적도 하지 않았다. 늘어진 여자는 마땅히 잡을 곳도 없었다. 어쩐다? 내 딴에는 머리를 굴리다보니 쥐가 날 노릇이었다. 그녀는 잠보다 술에 취해 골아 떨어 진 듯했다.
에라, 모르겠다! 나도 그녀의 발끝과 90도를 유지한 채 누워 버렸다.
그러다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목이 말라 깨어 난 순간 나는 어귀가 막혀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두 손아귀에 그녀의 꽃봉오리가 정확히 하나씩 쥐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앞섶은 활짝 열려져 있고 꽃봉오리는 유린 된 채 할딱거리고 있었다. 비몽사몽간에 내가 어떤 짓을 했을까? 보나 안보나 비디오요 두 말하면 잔소리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그녀는 애기 젖 먹이듯 가슴에 파고 든 내 머리를 보듬어주고 있었다.
일순 대풍씨와 황량한 들판의 전봇대 같은 오라비들 얼굴이 어른거렸다. 아직은 한 여인의 지아비가 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벗어나야한다. 나는 술에 취해 잠들어 있는 거다. 나는 잠든 척 잠꼬대를 하며 아쉽지만 차례로 두 손을 떼었다. 그러자 그녀는 두 손으로 내 얼굴을 살며시 보듬어 않고 입술을 포개었다. 그녀의 따뜻한 입술은 풋풋한 봄날 새순처럼 부드러웠고 타액으로 촉촉이 젖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잠투정하듯 천천히 돌아누웠다. 그러자 그녀는 등 뒤에서 나를 꼭 껴안았다. 그녀의 단단한 가슴이 내 등을 파고들었다.
나는 그런 자세로, 그녀에게 우- 달려가려고 몸부림치는 전신의 세포들을 힘겹게 막아서며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동창이 푸르게 풋풋해 오자 그녀는 주섬주섬 자리를 챙겼다. 그리고 내 귓밥을 모질게 깨물고는 방을 나갔다.
퇴근 때가 되자 왠지 불안이 밀려들었다. 아니나 다를 가 교문을 나서는데 대풍씨가 나를 불러 세웠다.
“어이, 고 선생”
그가 내 손목을 잡았다. 남자의 절정인 40대 후반이라 우악스럽기가 나무등걸 같았다. 잡힌 손목이 저렸다. 팔뚝이 내 다리만하다.
“쏘주 한잔 허드라고”
그는 어판장 옆에 있는 구멍가게로 나를 이끌었다. 일이 틀어 졌군. 나는 속이 까맣게 타들어갔다.
둘이 들어서자 아주머니는 서슴없이 큰 대접 두개와 30도 신선 소주 4홉들이 두병을 내놓았다. 평소 스타일인가보다. 대풍씨는 이빨로 병을 따드니 한병을 대접에 괄괄 나누어 부었다. 그리고 술이 담긴 대접에다 달걀을 하나씩 툭 툭 깨트려 넣고는 대접을 내 손에 들려주며 건조하게 말했다.
“마셔”
그리고 그는 대접을 단숨에 비우고 손으로 입을 쓱 닦았다. 그래, 이판사판 공사판이다. 사나이가 부서지면 부서지지 굴복은 말자. 나도 단숨에 마시고 입을 쓱 문질렀다. 소주가 식도를 훑어 내리자 비명을 내질렀다.
“역시 싸나이야! 그러이 맴에 땡겨”
그는 남은 소주병을 까 대접에 붓고 달걀을 깨 넣었다. 두 번째는 사발까지 부딪치며 원 샷으로 마셨다.
“좋았어! 저녁 묵으러 가세. 난이가 기다릴 게야”
그는 나를 멱살 잡듯이 일으켜 세우드니 소리개가 병아리 채듯 끌고 갔다. 나는 이미 올가미에 갇혔다. 나부대봐야 더 조여 올 거다.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되어 고분고분 따랐다. 그는 건들건들 걸으면서 특유의 큰 목소리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아랑곳없이 횡설수설했다.
“어제 밤 딸애하고 한방 썼다믄서? 방아깨비 방아 찧는 걸 봐야 방아 찧는 줄 알것나? 남자끼리 긴말해 뭐 하겠노. 자네가 알아서 하겠지…. 고것이 그래도 칠랑팔랑 하는 애가 아니여! 고 선상이 알토란을 공짜로 주운 게야.”
내 몸은 콩알처럼 자꾸만 쪼그라들었다. 난이가 어디까지 까발렸을 가? 나는 그에게 명줄이 잡혀 끌려갔다.
대풍씨는 일찍 상처를 하고 홀아비다. 난이가 저녁상을 묵직하게 차려 내왔다.
셋이 저녁을 먹으며 대풍씨와 술잔을 나누었지만 나는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이미 차, 포를 빼앗긴 상태였다. 그런 나를 그는 자식 대하듯 얼러대고, 나는 빠져나갈 빌미를 찾느라 전전긍긍했다. 다소곳이 앉아 둘의 이야기를 듣는 그녀의 아미가 간혹 흔들렸다.
대풍씨는 허허하다 화장실에 가는지 자리를 비웠다. 그녀와 둘이 있는 것이 바늘방석에 앉은 것같이 거북스러웠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어디까지 이야기를 했는지 그것이 궁금하여 뒤 급한 사람 모양 바튼 기침을 하며 설레발을 떨었다. 그녀는 그런 나를 빤히 지켜보다가 삐쭉 거렸다.
“왜, 겁나세요?”
“…!”
“덤터기 쓸 가 봐, 오금이 저리나요?
“그 그게 아니고….”
"내게도 자존심이란게 있어요"
나는 다음 말이 두려웠다.
“선생님도 참 딱하시다. 어제 무슨 일 있었나요?”
“…?”
“그저 자고 온 것뿐이잖아요?”
“마 마, 맞아요!”
“한두 살 먹었나 뭐…”
“그 그럼요!”
“몸을 건드렸으면 내가 그냥 있었겠어요?”
“아암요…”
나는 그제야 구세주를 만난 듯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술잔을 권했다. 그러나 그녀는 샐쭉 삐지더니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 허리를 꺾어 내 귀에 대고,
“바보. 쪼다. 도둑놈!”
낮으면서도 매몰차게 쏘아붙이고는 휑하니 방을 나갔다.
허지만 나는 그녀가 너무너무 고마웠다. 어릴 적 암산 굴을 지날 때 동전만한 출구를 보는 심정이었다.
돌아온 대풍씨에게 나는 그제야 어깨를 쭉 폈다.
“자, 회장님 한잔 드시지요. 하하하!”
돌변한 내 태도에 어리벙벙 하는 대풍씨의 술잔에 술을 가득 채웠다.
-훗날 안동에서 군에 입대하니 우리 소대원의 반이 동기였다. 그 중에 영덕군에 근무하다 입대한 동기의 헌팅한 아가씨들에 대한 무공(?)을 듣고 나는 입맛을 다셨다. 차려올린 밥상에 수저까지 놓인 것을….
첫댓글 감칠 맛 나게 써 내려 온 자네의 글 솜씨는 정말 대단하시네.
읽으면서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상상의 날개를 펼쳐 보았지.
쉽지 얺는 ,적나라(赤裸裸)한 표현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바보. 쪼다. 도둑놈!”이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구나!!!.
ㅋㅋㅋ.난이는 용감했다.ㅎㅎㅎ. -義 峰-
맛깔스런 낱말과 문장표현, 기똥차구만.
그런데 끝난 연극을 보며 객석에 앉은 관객의 한사람으로 서운함을 느끼는데.
왜일까?..........
살아온 세월에 모든것들은 아름답고 귀중한 우리의 추억과 재산이라지요.
그 옛날 그때 그시절에,
고제홍님 주변에 뽀얗게 예쁜 여인들과의 아슬아슬 함도
주먹앞에 겁먹던 시간들도
주전자 바닥에 구멍 나도록 즐거워 마시던 술 시간도
모두가 흘러간 세월속 아름다운 추억들입니다...
고제홍님! 한세월 멋있게 살아온 멋진 싸나이 라오~
귀하님과 함께 추억을 안고간 예쁜이들.... 지금 어디선가 잘 살고 있으리라 생각해요.
춘심이랑, 난이랑,,,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