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지우는 물관리는 미래 기술을 창조할 수 없어
기술혁신의 출발점은 AI가 아니라 충실한 데이터와 정확한 통계다
미국 WEFTEC 2026이 한국 물산업에서 던진 메시지다.
전시장에 선보인 개별 장비와 처리기술만 보면 국내 워터코리아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기술의 배경과 활용 목적을 들여다보면 차이가 드러난다. 기후변화와 탄소중립, 에너지 절약, 재생에너지, AI 접목, PFAS와 같은 신종 오염물질 대응이 전시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물을 처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에너지를 줄이며, 자원을 회수하고, 고장을 예측하고, 새로운 오염물질에 대응하는 방향으로 물산업의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있지만, 기후·에너지·환경 문제를 하나의 운영체계로 연결하고 실제 시설의 성능과 경제성으로 입증하는 노력은 더욱 강화돼야 한다는 숙제를 던져준다.
WEFTEC에서 주목받은 AI와 디지털 트윈은 설비 데이터를 분석해 이상 징후를 조기에 발견하고, 펌프와 폭기 설비의 운전을 최적화하는 기술이다. 그러나 이들 기술의 출발점은 AI가 아니다. 건강하고 정확한 데이터다.
고장을 예측하려면 고장 전후의 운전기록이 있어야 하고, 에너지 절감 효과를 입증하려면 공정별 에너지 사용량과 처리수량이 일정한 기준으로 축적돼야 한다. 데이터가 부정확하거나 기록이 끊겨 있다면 아무리 정교한 알고리즘도 신뢰하기 어렵다.
국내에서도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과 연구진이 있지만, 현장에서 부딪히는 어려움은 알고리즘보다 데이터 수집에 있다. 최근 수년간의 자료조차 일관된 형식으로 확보하기 어렵고, 시설마다 기록 방식과 측정 기준이 달라 비교·분석에 상당한 비용과 시간적 낭비가 소요된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데이터를 개방하겠다고 하면서도 감사나 평가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로 공개에 소극적이라면 연구개발 지원의 취지는 퇴색한다. 물론 보안과 시설 안전은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공개할 수 있는 운영자료의 범위와 기준은 명확해야 한다. 기록을 감추고, 불리한 자료를 누락하고, 서로 다른 기준의 통계를 뒤섞는 관행은 기술개발의 자산이 아니라 장애물이다.
PFAS 대응도 마찬가지다. 이번 WEFTEC에서는 공기 방울을 이용한 거품분리와 이온교환수지, 활성탄 등을 활용한 다양한 처리기술이 눈길을 끌었다. 중요한 것은 물속의 PFAS를 분리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농축액과 사용 후 흡착재를 어떻게 처리하며 최종적으로 파괴할 것인지까지 고려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도 PFAS 수질관리와 수도용 자재 등 관련 재질의 관리 필요성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 전시장에는 신생기업부터 대기업까지 다양한 기술이 등장했지만, 출품 자체가 성능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제거율과 처리비용, 잔류물의 최종 처리까지 검증해야 한다. 국내 기술개발 역시 연구비 지원에 머물지 말고 분석·실증·공정 통합·사업화로 이어져야 한다.
물 재이용과 자원 회수도 미래 물산업의 중요한 축이다. 폐수를 공업용수로 전환하고, 하수슬러지에서 바이오가스를 회수하며, 질소와 인을 자원화하는 기술은 물 부족과 에너지 문제를 동시에 다룬다. 반도체단지와 데이터센터의 용수 확보 역시 공급량만이 아니라 재이용 가능성, 에너지 비용, 공급 안정성을 함께 따져야 한다.
관로와 집수구역의 침수 예측, 실시간 운영정보를 활용한 월류 관리, 센서와 자동화 장비를 이용한 위험작업 저감도 우리가 발전시켜야 할 분야다.
그러나 장비를 도입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운영인력이 데이터를 이해하고 활용해야 하며, 고장과 사고, 에너지 소비, 수질 변화가 지속해서 기록돼야 한다. 기술과 인력, 데이터가 하나의 체계로 작동해야 한다.
결국 우리 물산업의 과제는 개별 장비와 부품의 개발을 넘어 센서·제어장치·운영 시스템을 연결하고 현장의 성능 개선으로 완성하는 통합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 그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통계와 데이터 관리다.
센서와 자동화 장비, 드론, 디지털 도구를 활용해 위험한 작업과 반복 업무를 줄이고, 제한된 인력으로 여러 시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기술도 마찬가지다. 이는 단순히 사람을 기계로 대체하는 문제가 아니다. 숙련된 운영인력의 경험과 판단을 데이터로 보완하고, 안전과 운영 효율을 함께 높이는 방향이어야 한다.
이러한 기술이 현장에 정착하려면 장비의 도입만으로는 부족하다. 운영인력이 데이터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하며, 시설의 고장과 사고, 에너지 소비, 수질 변화가 지속해서 기록돼야 한다. 기술과 인력, 데이터가 하나의 체계로 작동해야 한다.
과거의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같은 실패를 반복해도 원인을 찾기 어렵다. 고장 이력이 없으면 예방정비의 효과를 입증할 수 없고, 에너지 사용량을 꾸준히 측정하지 않으면 신기술의 절감 효과도 알 수 없다. 10년마다 관로 세척 사업을 추진하라는 지침이 있지만 예산 부족으로 시행 5년 만에 세척 사업은 종말을 기다리고 있다.
예산 부족을 이유로 과거의 기술을 답습하는 관행도 바뀌어야 한다. 신기술을 무조건 도입하자는 것이 아니다. 기존 기술과 성능·비용·유지관리 편익을 비교하고, 효과가 입증된 기술을 현장에 적용해야 한다. 초기비용이 종전보다 증가했다고 몽매한 단순 논리로 과거를 고집한다면 기술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기술개발에는 예산이 필요하다. 그러나 출발점은 돈만이 아니다. 정확한 기록과 통계, 공개할 수 있는 데이터, 실패를 감추지 않고 분석하는 관리문화가 먼저다. AI와 디지털 트윈을 도입하면서 정작, 시설의 과거 기록은 남기지 않는다면 첨단기술은 포장에 불과하고 일회성에 머물다 흔적 없이 사라진다.
그래서 과거에 사라진 기술이 5년 혹은 10년 후에 다시 천사처럼 등장하는 일이 반복된다.
WEFTEC 2026이 보여준 변화는 분명하다. 더 잘 처리하는 기술에서 나아가서 적게 쓰고, 회수하고, 예측하며, 처리 이후까지 관리하는 기술로 전환하고 있다.
물산업의 미래는 전시장에 얼마나 많은 첨단장비를 세우느냐로 결정되지 않는다. 현장의 진실을 얼마나 정확하게 기록하고, 그 기록을 기술과 정책으로 연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과거를 지우는 물관리로는 미래 기술을 창조할 수 없다.
(환경경영신문 https://ionestop.kr// 김동환 환경국제전략연구소장, 환경경영학박사, 시인,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