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다 겪은 일이지만, 저는 군대갈 때 참 억울했숩니다.
언넘들은 학기 중에 군대간다고 환송회를 사차에서 오차까지 하고 육이오 때 군대가는 장정들 처럼 또다른 우리의 모습속으로
떠나가는데, 의리를 저바리면 사람축에도 못끼일 것같은 강박감에 막상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가야된다는 동병상련의 아픔도 있어
정말로 빠지지않고 배웅을 했습니다.
정작 우리가 새벽 여섯시에 용산역에서 떠날 때는 군대가지 않았던 치대다니던 친구 하나만 덜렁 눈내리는 이월의 마지막 날에 나와
내가 배웅을 해줄 수 없는 그가 부럽기도 하고 막상 내가 가려니 내가 숱하게 떠나 보냈던 인사들은 하나도 눈에 띄이질 않아 가면서도 섭섭했습니다.
군대가서 자대에 배치된 후 한 겨울에 매복나가 흰 위장복 뒤집어 쓰고 눈밭에 앉아 갑자기 그날의 야속함이 떠 올라 속으로 꼽아보니 정작 군대에 온 것은 학점 모자라 중간에 군대간 친구들 빼고, ROTC한 동기 빼고 나머지는 어떻게 해서든 군대에 오질 않아 무언가 불공정한 게임에 말려 들었다는 억울함이 나름대로의 전방사단 말단 소총소대에 있으면서 느꼈던 소외감과 상대적인 박탈감과 함께 떠올라 씁쓸했습니다.
제대후에는 그잘난 친구들과 다시 어울렸지만, 사회의 분위기도 조잡했고, 더큰뜻과 큰길이 그들 앞에 있어 일이년 사이에 서둘러 유학들을 떠나 버렸습니다. 혹은 결혼해서, 아니면 혼자몸으로 서울을 떠나, 미국의 주립대학들이나 유명 사립대로 마치 꼴보기 싫은 군사정권을 피해 탈출하듯 떠나 가버렸습니다.
이제는 나의 차지가 아니지만, 그래도 당분간 볼 수없고, 또 당연히 그래야만 사람구실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역시 김포공항에 숱하게 배웅을 나갔습니다.
속으로는 이제 더이상 배웅할 일은 없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이왕에 시작했던 일이니 모양좋게 마무리를 하고 싶어서였을 것 입니다.
제가 잘나서 였는지 어쨌는지 아들아이가 군대 갈 때 까지 그렇게 기억에 남는 배웅은 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즘들어 다시 그배웅이 심각한 지경으로까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암으로 인한 가까운 분들과의 사별인데, 작은 누이를 난소암 이라는 희귀한 병으로 먼저 떠나 보냈는데, 그 정도가 가족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질 못하고, 할 수 있는 일이 기도해 주는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더구나, 칠십년대 초반에 결혼 하셔서 매형과 함께 미국에서 의사 선생 부인 노릇하시느라 그 뒷바라지에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고생을 하신 누이는 극기복래의 직전에 유명을 달리하셔서 늘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그 뒤를 이었던 가까운 친척들은 대개가 암으로 명을 달리 하셨는데, 참 답답한 일은 새끼 손가락을 깨물어 환자의 쾌유를 빌어야 하지만 그것도 못하고 아무런 도움이 않되는 자신을 돌아볼 때 느꼈던 초라함과 무기력때문 이었습니다.
이제는 아내의 쪽에서 그일이 시작되어 장모께서 췌장암 말기로 투병 중이신데, 친구들 군대 갈 때 배웅 하듯이 아무런 위안이나 도움을 못드리고 다음에 내가 갈 모습을 떠올리며 무기력하게 보고만 있습니다.
이 기나긴 배웅의 끝은 정작 내가 갈 때나 끝이 날 것이며, 그 때는 누가 있어 나를 보낼까 하는 생각과 함께 이번에도 아무도 나를 배웅할 사람 없이 또 맨 마지막에 혼자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공연한 걱정을 해 봅니다.
첫댓글 외로워 지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었지요~~~ 그래서,,운동도 하고,,친구도 만나고,,,술은 줄이고,,,금연도 하고,,,그래 그래해서 세월가서 꼰데가 되어 버렸네~~~~~~마음은 아직도 팔 팔 한데!!!
어찌 새해부터 하지 않아도 될 공연한 걱정을 하는지, 성유답지 않게... 날 부르시오. 내가 그때까지 살아 있으면 가서 기도해주리다.
감사 합니다. 공연히 우울해져서 심기를 어지렵혔습니다.
성유! 이게 다 사회적 불만이야. 술 끊고 김 목사님에게 기도요청 하려마 ?
어빠나 끊고나서 충고하시지 ? 나는 사돈이 남말 할 때가 젤로 얄미워 !
ㅋㅋㅋ
김의원, 잠도 읎수 ?
미래를보자구요 글구 행복해지길바라는 맘으로삽시다 홧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