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에 김규진님이 디펜스 코리아 고대전쟁사 게시판에 올렸던 글인데 흥미로운 내용이라서 다시 올려봅니다.
일본군이 포악하고 날래다는 인식은 이미 병자호란때 태종 홍타이지가 조선 사절에게 한 말에서처럼 만주족들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렴풋하게나마 만주족들은 일본이 군사적으로 만만치 않은 나라라는 인상을 가졌던 거죠.
1652년 명의 잔당인 계왕정권은 에도막부의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에게 주순수라는 사절을 보내어 구원병을 요청합니다. 쇼군 이에미츠는 막부의 중신들과 회합하는데 이 자리에서 과격파들은
'천하의 불평 낭인 수십만을 모아 중원에 진공, 달단(만주족을 가리키는 말)을 정복하고 중원을 한족(漢族)들에게 다시 회복시켜 우리에게 조공을 바치게 하자'
고 주장하지만 합리적인 막부(幕府)의 수석각로인 마쓰다이라 노부츠나는
'이에야스 님이래 30년! 간신히 얻은 천하태평을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다'
고 강력히 나서는 바람에 결국 파병은 거부됩니다. 하지만 이 시기를 전후하여 막부는 상인과 첩자들을 혼란속의 중원으로 파견하여 각종 정보를 입수 '화이변태'와 같은 책들을 발간하기도 하죠.
파병파와 화평파를 불문하고 막부 중진들의 견해를 살펴보면 만주족은 일본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인데... 나름대로 일리있는 생각이라 보입니다. 1650년대는 전통시대 일본의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이 자리잡고 있던 시기입니다. 운용가능한 병력으로도 이미 전국시대나 이에야스 시대보다 불어나 있었고 임진왜란과 여러 내란의 진압 경험으로 생겨난 효과적인 전략전술의 도움과 조총, 대포를 비롯한 서양식 병기의 운용경험이 뒷받침되던 시점이었고...대양항해 능력에 필수적인 갈레온(Galleon)선 제작의 노하우가 아직 살아있던 때입니다.
막부는 전 세계 은생산량의 30 %를 독점하여 스페인 다음가는 은 산출국으로 인정되고 있었고 지방의 번들은 농업생산력 증진과 무가제법도의 시행으로 무사층의 충성을 그 어느때보다 강하게 받고 있던 시점. 한마디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뿐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일본의 전성기라 볼 수 있습니다. 이 시기를 지나면 서서히 일본의 군사력이 장부상에 뼈대만 남는 식이 되어가며 무사들도 직업관리나 문신들처럼 변해가죠.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지만...이 시대의 일본 무사단이 약 10만정도만 중원으로 진출 했다해도 명의 잔당정권이나 농민반란군에 맞서 싸우기에 급급하던 청왕조(淸王朝)는 승패에 관계없이 엄청난 타격을 받았을 겁니다.
이홍장 (李鴻章) 과 같은 19세기 청왕조의 군사적 실력자들이 '원래 일본은 강했다'는 말을 늘 했듯이 전통시대의 청왕조는 일본에 무관심했지만 강한 나라라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첫댓글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