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의 풍경 - 사명산
1. 사명산 가는 길
春山乘逸興 봄 산에서 그윽한 흥에 취해
扶杖快登臨 지팡이 짚고 시원하게 높이 올랐네
雲路盤層頂 구름 덮인 길은 층층이 꼭대기마다 나있고
煙花繞遠岑 안개 속에 핀 꽃은 먼 묏부리를 감싸고 있네
―― 간송 조임도(澗松 趙任道, 1585~1664), 「높이 올라 흥취를 느끼다(登高感興)」
▶ 산행일시 : 2023년 4월 29일(토), 비, 바람, 안개
▶ 산행인원 : 6명(악수, 버들, 자연, 메아리, 하운, 도자)
▶ 산행코스 : 웅진리 버스승강장, 대길교, 804m봉, 1000m봉, 문바위, 세거리봉(817m), 꽃대봉(736.5m),
추곡약수, 영향교, 추곡리 버스승강장
▶ 산행거리 : 이정표 거리 10.5km(버스승강장에서 오고 가는 도로 2.4km 포함)
▶ 산행시간 : 6시간 47분
▶ 갈 때 : 상봉역에서 전철 타고 춘천역으로 가서, 대로 건너 시외버스 승강장에서 양구 가는 버스 타고 웅진리
버스승강장(웅진 2터널 앞)에서 내림
▶ 올 때 : 추곡리 버스승강장에서 춘천 가는 시외버스 타고 춘천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저녁 먹고, 남춘천역
에서 전철 타고 사릉 또는 상봉으로 옴
▶ 구간별 시간
06 : 53 - 상봉역
08 : 18 - 춘천역
08 : 47 - 춘천역 앞 버스승강장에서 양구 가는 시외버스 출발
09 : 27 - 웅진리 버스승강장(웅진 2터널 앞), 산행시작
10 : 25 - 504m봉
11 : 25 - 803.7m봉
12 : 15 - 1,000m봉 직전 공터, 점심( ~ 12 : 57)
13 : 15 - 1,000m봉 아래 ┫자 갈림길, 직진은 사명산 정상 2.5km
13 : 29 - 문바위
14 : 10 - 세거리봉(817m), ┣자 능선 분기봉, 오른쪽은 운수현 지나 죽엽산으로 감
14 : 35 - 꽃대봉(736.5m)
15 : 17 - 임도, 물탱크
15 : 38 - 추곡약수
16 : 14 - 추곡리 버스승강장, 산행종료(16 : 55 - 춘천 가는 시외버스 출발)
17 : 38 - 춘천 시외버스터미널, 저녁 및 전철 대기( ~ 19 : 53)
21 : 15 - 상봉역
2. 산행지도(영진지도, 1/50,000)
그때 그날은 그때 그날은
웃으면서 헤어졌는데
오늘 이 시간 오늘 이 시간
너무나 아쉬워
서로가 울면서 창밖을 보네
봄비가 되어 돌아온 사람
이은하가 부른 ‘봄비’다. 봄비를 한편 애상적으로 느꼈는데, 영화 ‘내부자들’(2015, 130분)을 보고난 후에는 전과 같
지 않게 되었다. 어쩌다 봄비 노래를 들으면 배우 이병헌과 아울러 추잡한 정치현실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 영화에
서 정치 깡패 안상구(이병헌 분)가 비 오는 날 봉고차로 오회장에게 성접대를 위한 여자연예인을 태우고 가면서,
봉고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은하의 ‘봄비’ 노래를 흥얼거리는 장면, 또 미래자동차 비자금 파일을 입수하려
고 으슥한 컨테이너 야적장에서 문일석을 고문하려고 망치 들고 가면서 ‘봄비’를 흥얼거리던 장면 때문이다.
어제 밤에 베란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아주 잘됐다고 생각했다. 내일 올 비가 앞당겨오는 줄로 알았
다. 그런데 웬걸 아침에도 그치지 않거니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춘천 가는 전철 안에서, 웅진리 가는 우등
시외버스 안에서 미리 우장 갖춘다. 스패츠도 차고, 카메라 씌울 우산도 꺼낸다. 웅진리 버스승강장은 웅진리 마을
입구에서 700m나 떨어진 웅진2터널 앞에 있다. 강기슭을 구불구불 돌아가는 도로 대신에 새로이 터널을 뚫고 직선
의 도로를 내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명산 들머리인 웅진리로 가려면 버스승강장 뒤쪽의 콘크리트 포장한 사면 도로를 내려 아프리카 돼지열병 방지용
철문을 열고 구 도로에 진입하여 강안(江岸)을 돌아가야 한다. 우중 강안의 풍경이 멋지다. 옅은 안개가 산릉을 가렸
다 드러내기를 반복한다. 어쩌면 산정에는 여태 보지 못한 기경이 펼쳐지지나 않을까 은근히 기대하게 한다. 웅진리
주차장 입구에 있는 대길교를 건너고 낙석방지용 철조망 두른 절개지 가장자리에 쪽문이 열렸다.
사명산 등산로 방향표지판 따라간다. 첫발자국부터 되게 가파르게 오른다. 사명산을 오르는 또 다른 주등로라 잘 났
다. 울창한 숲속 길이다. 오는 비에도 젖지만 풀숲 헤치니 어제부터 온 비에 더 흠뻑 젖는다. 안팎으로 젖는다. 길고
가파른 오르막이고 이때는 바람 한 점 불지 않아 안에는 땀으로 축축 젖는다. 그렇지만 내게는 걸음걸음이 알뜰하
다. 길섶과 풀숲에서 풀꽃을 찾고 풀꽃을 들여다본다. 곧 안개 속에 든다. 지척무중이다.
사명산 정상까지 이정표 거리로 6.0km다. 보통 세 시간이면 오를 수 있는 거리이지만 워낙 가파르고 질척거리고
미끄러워 그 시간에 대기란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는 1,004m봉 직전의 야트막한 안부인 ┫자 갈림길에서
왼쪽 능선을 타고 문바위 지나 추곡약수로 진행할 예정이다. 퍽 다행인 것은 안개가 자욱하여 도무지 조망할 데가
없다는 점이다. 딴은 우리는 엄나무나 두릅나무 순을 솎아주려고 한다. 그런데 물구덩이인 잡목 숲을 헤치며 사면
쓸기가 영 내키지 않는다.
3. 소양강 강안의 풍경
실제 눈으로 볼 때는 환상적이었는데 사진을 찍어놓고 보니 그때와는 다르게 밋밋하다.
7. 산행시작 등로 한가운데에 버티고 있는 제비꽃
8. 사명산 가는 길
12. 안개는 옅어졌다 다시 짙어지기를 반복한다
803m봉을 올라서고 바람까지 불어댄다. 안개 속 풍경이 더욱 아름답기는 하다. 우산 받치며 카메라 커내어 셔터
누르고 다시 카메라 넣고 하는 일련의 동작이 일립백행(一粒百行, 쌀 한 톨을 만들기 위해서는 백 가지의 노고가
필요하다)에 버금가는 고역이다. 수동 모드로 찍을 여유가 없고, 그저 감도 높여 조리개 우선 모드로 찍는다. 안개
속에 일행들을 자주 잃는다. 바람이 세차게 부니 한 산봉우리만 넘어버리면 아무리 크게 외쳐도 들리지 않는다.
오늘 도자 님이 늦는 것을 발걸음이 느려서라기보다는 덕순이를 데리고 오느라 그렇다. 거의 17년 전인 2006년 6월
이었다. 오지산행에서 봉화 문수산을 갔다. 주실령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다덕현(이름 좋다. 더덕이 많다는 뜻이
아닐까?)으로 내려왔다. 그때 가부재를 내리는 생사면에서 대간거사 님은 물정 모르는 도자님으로 하여금 손맛을
보게 한다고 덕순이 줄기를 가지런히 다듬어놓고 주위 낙엽도 치워놓았다. 그리고 도자님 더러 손맛 좀 보라고 했다.
그랬던 도자 님이 이제는 도사가 되었다. 그간 꾸준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은 결과다. 오늘의 단연 수훈갑이다.
17년 전 그때 덕순이를 한데 모아서 데리고 가던 베리아 님이 도중에 그들을 잃어버렸다. 그때 우리는 경계에 실패
한 병사는 용서가 되지만 덕순이를 잃어버린 용사는 결코 용사할 수 없다며, 베리아 님에게 입으로 뭇 매를 퍼부어
댔다.
휴대전화 걸어 어디쯤 오가고 있는지 알아내기도 한다. 버들 님과 자연 님이 행방이 묘연하다. 풀숲 사면을 누비는
중에 앞서 가버렸다. 점심 먹기 명당을 아깝게 다 놔두고 뒤쫓는다. 봉봉을 넘는다. 그만 뒤돌아 오시라 소리친다.
그리고 가만히 귀 기우린다. 내 소리를 내가 듣는다. 다시 만나고는 헤어지지 말자고 한데 뭉쳐간다. 1,000m봉
오르기 직전 펑퍼짐한 공터에 자리 잡는다. 오늘도 메아리 대장님은 비닐쉘터를 가져왔다. 6인용이다.
비바람이 세차게 분다. 비바람이 요란하게 비닐쉘터 두들기는 소리를 듣는 것이 우리만 즐기는 산중 정취다. 버너
불 피워 색색 어묵 삶고, 떡국 떡 넣고 라면 끓인다. 탁주, 오미자 와인, 마가목주를 곁들인다. 이 맛에 사계절 눈과
비 그리고 바람을 마다하지 않고 산을 오른다. 일찍이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 712~770)가 읊은 「곡강(曲江)」이
이 봄날 우리의 정경이다.
꽃잎 하나 날아도 봄이 줄어드는데
바람에 우수수 꽃잎 흩날리니 정녕 시름 잠기게 하네
떨어지는 꽃들이 눈앞에 스쳐가는 것을 보니
몸이 상한다 하여 술 마시기를 마다 할 수 있을까
一片花飛減却春
風飄萬點正愁人
且看欲盡花經眼
莫厭傷多酒入脣
15. 홀아비꽃대
16.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24. 우리가 점심자리 편 주변
이보다 더 화려한 명당이 있었으나 일행을 찾아 봉봉을 올랐다.
25. 문바위
양쪽 위의 암반은 경점인데 사방 안개가 자욱하다. 왼쪽 위가 칠층석탑이 있는 칠성대다.
26. 도자 님, 오늘 덕순이 찾기로 수훈갑이다.
비닐쉘터 걷어도 비는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는다. 등산화 안도 젖고 말았다. 1,000m봉 오른쪽 사면을 길게 돌아
야트막한 안부인 ┫자 갈림길이다. 웅진리에서 겨우 3.5km를 올랐다. 직진은 사명산 정상 2.5km다. 안개 자욱하여
아무 볼 것이 없으므로 미련 없이 왼쪽 문바위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문바위 가는 등로 주변도 춘색이 눈부시게
화려하다. 앞의 경치가 궁금하지만, 뒤에 두고 가는 경치가 차마 아까워 발걸음이 사뭇 더디다.
문바위. 양쪽 문설주 위에 올라가본다. 널찍한 암반이다. 바라보면 사방 만천만지한 안개다. 왼쪽 문설주에 들른다.
칠성탑이 있다. 칠층석탑이다. 그 앞에 세운 안내문이다. “칠성이란 표현은 우리에게 익숙한 북두칠성을 신격화한
표현으로, 칠성탑은 비를 내려 풍년을 이루게 하고, 수명을 연장해주며, 재물을 준다고 믿어졌다. (…) 우리나라 일
반 사찰에서는 칠성각이라는 전각을 세우고 치성광여래 ‧ 일광보살 ‧ 월광보살의 삼존과 칠여래와 함께 칠성신을
불화로 모시는데 이곳 수인리 문바위 아래 지금은 사라진 옛 절터에도 아마 칠성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
문바위 빠져나오면 ┳자 갈림길이다. 왼쪽은 수인리로 가고,오른쪽이 추곡약수로 간다. 쭉쭉 내리기만 하는 게 아니
다. 봉봉을 오르내린다. 추곡약수가 얼마 남지 않아 아껴 걷는다. 세거리봉. 특고압 송전탑이 있다. ┣자 능선 분기
봉이다. 오른쪽은 도솔지맥 죽엽산으로 간다. 옛날 그 길을 간 추억만 떠올리고 직진하여 내린다. 또 이름 붙은 봉우
리 하나를 얻는다. 꽃대봉. 이름이 예쁘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에는 노브랜드인 산이지만, 이름 그대로 주변에
는 온통 철쭉이 만발하였다.
꽃대봉 지나면 줄곧 내리막이다. 쭉쭉 내린다. 낙엽송 울창한 사면을 갈지자 연속해서 그리며 길게 내린다. 그리고
임도다. 비는 멎었다가 다시 쏟아진다. 안개는 산릉을 빈틈없이 덮느라 바쁘다. 추곡약수는 임도에서 왼쪽 골짜기로
230m 떨어져 있다. 내가 배낭 벗어놓고 대표로 다니러간다. 찾는 이 없는 나 혼자다. 추곡약수 가는 길 오른쪽 계류
는 포괄 일으키며 흐른다. 산기슭은 산괴불주머니가 노랗게 수놓았다. 추곡사 갈림길 지나고 바로 추곡약수다.
추곡약수는 철분, 나트륨, 탄산염, 황산염, 염소, 불소, 망간, 규소, 구리, 칼슘 등을 함유하며, 약간의 붉은색을 띠고
물맛은 감초 맛이 나며, 위장병과 부인병, 신경통, 무좀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큰 한 바가지 가득 떠서 배부르게
들이키고, 물병에 꼭꼭 눌러 담아간다. 추곡약수에서 주차장은 가깝지만 추곡리 버스승강장은 상당히 멀다. 소양강
강안을 도는 구 도로를 1.7km 정도 간다. 강안은 어느덧 백곡 김득신(栢谷 金得臣, 1604~1684)의 「늦봄(春暮)」이다.
문 닫은 강촌에 봄은 어느덧 저무는데
지금의 회포를 뭐라 말할 수 없구나
공연히 병 무릅쓰고 새벽에 일어나
아이에게 꽃잎 쓸지 말라 당부하네
門掩江村春已暮
卽今懷抱不堪嗟
無端力疾淸晨起
分付兒童莫掃花
27. 안개가 끼여 오히려 눈부신 봄산이다
31. 만주족도리풀
32. 철쭉이 만발하였다
34. 눈 돌리면 어디이고 간에 내 눈에는 가경이다
35. 꽃대봉에서, 왼쪽부터, 도자, 자연, 메아리, 하운, 버들
36. 임도가 가까운 골짜기다
37. 제비꽃
38. 천남성
39. 병꽃나무
첫댓글 모든 장면이 다 환상적입니다.
사진으로도 환상인데, 실제로는 마약이겠네요.
구경 잘 했습니다.
도자가 이젠 못하는 게 없네요.
막걸리 장인, 더덕 장인, 허리 장인.... ㅎㅎㅎ
비가 오니 거추장스런 산행이었습니다.
둘러보면 안개 속 풍경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고,
비바람에 손은 시리고, 일행 모두 수고 많았답니다.^^
비오시는 날 산행이라니
아직 청춘이십니다!
비 온다고 안 가고 눈 온다고 안 가고 바람 분다고 안 가면, 가는 날이 얼마 되지 않을 것 같아서요.
우중 산행도 정취가 있습니다.^^
종일 비와 운무속에서 손이 시린 날이었습니다...몇 번을 갔어도 조망은 좋았었는데, 그날은 비구름이 만들어낸 경치가 한 경치했네요^^
남춘천역 뒤풀이가 멋진 피날레였습니다
딴은 그 맛에 산을 가기도 합니다.^^
과연 찬란한 봄날입니다...
하루하루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아까운 날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