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베드로의 기도와 선포를 통해 죽은 다비다가 살아나게 된 일, 또한 구주 예수님께서 죽은 지 나흘이 되어 냄새까지 나는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일, 뿐만 아니라 태초에 무에서 유로 천지만물이 창조케 된 일, 더 나아가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자들마다 세상 끝 날에 신령한 몸으로 부활케 되는 일, 심지어는 오늘 우리들이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올려 드리는 기도에 있어 응답 한 번에 있어서까지 진정 그것이 일반 은총이든 특별 은총이든 간에..
반드시 근원적으로는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게다가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실 뿐 아니라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단 한 시라도, 단 한 번이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잘 통찰해 보면 그와 같은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마다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전부터 뜻하시고 계획하시며 약속하시고 예정하시며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경험케 하시며 성취해 나가심으로 인해 가능한 것이고 애초부터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이며..
뿐만 아니라 실상 그와 같이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공의와 형평과 질서의 하나님 또한 아니실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모든 하늘의 힘과 은혜들, 특히 믿음으로 인한 값없는 은혜와 공짜와 같은 선물인 역사들마다 하나하나 모두 다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시고 온 우주보다도 더 크시며 영원보다도 더 작으실 수 없는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인생들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우리 인생들에 있어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과 영생에 이르기까지의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모든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모두 다 이루신 구원에 전적으로, 단 하나도 빠짐없이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진정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구원과 별개로는 불가능인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더 나아가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 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하나하나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정말 누리고 경험하며 이뤄지고 성취되어 지게 하시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베드로를 통해 다비다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역사에 있어서 당시에 베드로는 다른 그 누구보다 목숨까지 아끼지 않으면서 말씀으로 살고 죽고자 했던 믿음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고 다비다 또한 그 어느 누구 못지않게 말씀의 신앙으로 살고 가장 적극적으로 실천했던 자였으며 게다가 말씀대로 역사하신 하나님을 말씀 그대로 믿음과 함께, 특히 직접적으로는 말씀으로 대언하며 선포한 대로 다시 살게 된 것임을 볼 수 있는 것일 뿐 아니라..
따지고 보면 죽은 지 나흘이 된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구주 예수님께서도 그 자체가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인 것이고 직접적으로는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살리신 것이며, 무에서 유로의 천지창조도 다름 아닌 말씀으로 인한 것이었고, 세상 끝 날에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도 본질적으로는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으로 인해 진노와 저주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있던 자들이 구주 예수님을 믿고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되며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되고 말씀이신 하나님의 것, 다시 말해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곧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뀌게 된 자들이 말씀대로 신령한 몸으로 부활케 되어 영원하고 완전한 말씀의 나라에서 말씀 그대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더군다나 오늘 우리들이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며 응답 한 번을 받는 일에 있어서도 그 기도라는 것 자체부터도 자신의 정욕이나 기복적인 목적이 아닌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해야 하는 것이고 또한 말씀에 약속된 것을 말씀대로 구하며 말씀 그대로 누리거나 또는 말씀대로 깨닫고 행하며 증거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무엇보다 그러한 기도자가 평소 어느 정도로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인가가 기도 응답 한 번에 있어서까지 생각 이상으로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결코 어렵거나 조금이라도 복잡할 수 없는 것으로 본질적으로는 그러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 자체가 말씀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고 다 이루시는 분인 것이기 때문인데..
좀 더 세부적으로 말씀드리면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야 말로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인 것이고, 구주 예수님께서도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 말씀대로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분인 것이며, 성령님께서도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이신 것이고 사실상 말씀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도록 기록되게 하신 직접적, 현실적인 힘과 권능이신 분일 뿐 아니라 우리 인생들이 그러한 말씀을 접하고 깨달으며 알고 믿으며 행하고 증거하며 누리고 경험하며 성취되어 지게 하는 경험적, 실제적인 힘과 권능 또한 아니실 수 없는 분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가 살아난 것을 보이니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사도행전9:40~42)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3년 8월 1일(화)1/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