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작가 ★ 야호♬ (lil_ili@hanmail.net)
친정 ★ 야호스토리♬
-
이름을 빌려주세요!
Please, Lend me your name. <14>
“에라이, 망할 지지배! 무슨 일인지 말은 해주고 갔어야지! 니가 사장님이랑 같이 귀가했다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할머니가 말하는 사장님이라는게 딱 그 조폭이던데, 무슨 일이야? 앙?”
학교로 등교하는 내내 수리는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같은 말을 딱 열 두번 반복했다.
다섯번정도는 날 걱정하는 마음에 그렇구나 하고 들을만 했는데 열번을 넘기기 시작하자 점점 뭐라고 재잘거리거나 말거나
하는 심보로 변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경지에 다다르게 되었다.
교실 문을 열기 위해 내가 미닫이 문으로 손을 뻗고, 수리가 열세번째 반복을 위해 입을 떼던 순간이었다.
“에라이……”
“아, 잠깐만. 나 전화왔어. 나머지는 통화 끝나고.”
지이잉거리며 주머니에서 우렁차게 울려대는 핸드폰의 진동에 수리의 말을 딱 자르며 말했다.
나의 야박한 말투에 수리가 인상을 확 찌푸리며 ‘에라이, 매정한 년아!’라고 말을 내뱉으며 동시에 내 뒷통수를 내리쳤다.
억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놀란 표정으로 수리를 바라보자, 수리는 이미 씩씩거리며 교실 안으로 들어간 후였다.
에이씨 더럽게 아프네.
“네, 나한입니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세요?”
사실 별 시덥잖은 전화면 안받으려고 했는데 핸드폰 액정에 떡하니 뜨는 번호는 한채수의 번호였다.
창고 일부터 시작해서 바로 어제 있었던 한동이씨의 일까지 겪고나니 한채수를 향한 나의 공포는 극대화 되었다.
결국 나는 한채수가 마치 바로 앞에 있기라도 한 듯 공손한 태도로 전화를 받았다.
아, 인생이란 정말 굴욕적인 것이야.
- 오늘부터 출근하지 마라.
“네?”
짤린건가? 그런 것인가! 하긴, 나 같아도 나 같은 애 짜르고 말지.
너무 놀란 나머지 큰 목소리로 되물었더니 교실 안에 있는 녀석들이 ‘뭐? 왜그래?’하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덕분에 민망해진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후다닥 화장실로 걸음을 옮겨야했다.
아직 책상에 가방도 못올려놨는데…….
- 나 오늘부터 사무실에 없을거니까 일주일정도 출근하지 말고 대기해.
한채수는 너무나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심드렁하게 말했다. 특히 마지막에 ‘대기해’라는 세글자가 압권이었다.
그말인즉, 일주일동안 쉬긴 쉬는데 혹시라도 지가 연락하면 언제든 출근하라는 말이잖아.
웃긴 놈이네 이거.
“저어 확실히 일주일을 쉬게 해주시던가요. 아니면 그냥 출근하라고 하세요. 언제 출근해야 할지 모르는 마음으로 일주일동안
불안하게 떨고 싶지 않습니다.”
- 니가 출근하고 싶다고 아무때나 하는 곳 아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어떻게 출근을 해? 문이 잠겨있는데.
“문이 왜 잠겨요? 누가 열쇠 잃어버렸어요?”
열쇠 잃어버린 놈 이제 죽었다. 물론 한채수 손에.
쯧쯧.
- 난 개인적인 일로 일주일 동안 한국에 없을거고, 사무실 녀석들은 춘계훈련.
“아, 난 또……”
누가 열쇠를 잃어버린 줄 알았지.
큼큼.
괜히 민망해진 기분에 헛기침을 두어번 내뱉고나자 어색한 침묵이 핸드폰 주위로 너울너울 날아다녔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되겠다 싶어 일단 지껄인다는게…….
“근데 한국에 안계세요? 일주일동안 해외여행 가세요? 어디로요?”
이따위 말이었다.
아, 안하느니만 못한 못난 말이로구나.
말을 내뱉고나서 ‘에라이 모자란 년’하고 스스로를 자책하며 화장실 거울을 바라보았다.
잔뜩 얼굴을 찌푸린 채 이걸 어쩌지 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나는 정말……못봐줄 몰골이었다.
할 말이 없으면 전화를 끊었으면 되는데…….
- 뭐, 그런 셈이지.
“어머! 정말로 해외여행 가시는거에요? 어디로 가시는데요?”
어쩐지 통화를 끊기 싫어 바보 같다는 걸 느끼면서도 괜히 대화를 더 끌어본다.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한채수의 픽 하고 바람빠지는 듯한 웃음 소리가 내 귓가를 부끄럽게 했다.
- 일본.
“일본엔 왜요? 무슨 일이신데요? 세력 확장? 아, 그건 해외여행이 아니지. 일이지.”
- 누가 일본에 있는데 좀 오라고 해서. 데리러 가는거야. 가는 김에 좀 쉬다 오려고.
“아……누구요?”
누구요? 하고 묻는 동시에 핸드폰 저 너머에서 ‘행님! 짐은 다 쌌는데요.’하는 우렁찬 덩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덕에 한채수는 잠시 핸드폰에서 귀를 뗀 듯 했다.
아마도 내 말을 듣지 못했겠지?
순간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어쩐지 먼 곳으로 놀러가는 애인을 추궁하듯 코치코치 캐물은 느낌이 들어서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만약……만약, 한채수가 내 질문을 들었다면 누구와 간다고 순순히 대답해주었을까?
- 음?
“아니에요. 아무 말도 안했어요. 잘 다녀오시라구요.”
- 그러지.
“비행기에서 테러 일으키지 마시구요, 인상 험악하다고 공항에서 뭐라고 해도 싸우지 마시구요, 비행기 타고 멀미하지 마시고…….”
난 정말 멍청이야.
- 그래.
한채수는 아주 짧게 대답한 뒤 픽 웃었다. 아마 그 뒤엔 담배를 물었을 것이다.
무언가 말은 더 내뱉고 싶은데 뭐라 내뱉어야 할지 몰라 멀뚱멀뚱 거울만 쳐다보았다.
거울 속엔 멍청한 표정을 지은 내가 핸드폰을 들고 아쉬워하는 모습이 가득했다.
- 이만 끊지. 공부해라.
‘네’하고 대답할 틈도 없이 전화가 띠릭 끊켰다.
역시 한 재수하는 양반은 전화를 끊는 법도 다르군. 적어도 대답정도는 듣고 끊는 센스를 가져보란 말이야.
“에휴.”
짧은 한숨과 함께 통화가 끊켜 통화 시간만 보이는 핸드폰 액정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011’로 시작하는 한채수의 번호가 3초정도 화면에 머무르더니 곧 액정의 불빛이 꺼졌다.
어쩐지 아쉬운 입 맛을 다시며 화장실에서 나와 교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손 끝이 계속 주머니속 핸드폰에 머무르는 것을 느끼며.
“어머, 매정한 년 들어오셨네?”
교실 안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자 뒷자리에 앉아있던 수리가 아주 큰 목소리로 날 향해 말했다.
마치 나를 향해 하는 말이 아니라는 듯 얘기했지만 목소리는 분명 들으라고 얘기한 것이었다.
그래그래, 내가 죄인이다 내가 죽일 년이야.
“아, 미안해~대신 오늘 학교 끝나고 우동 쏠게. 우리 엄마 포장마차 가자.”
가방을 책상 위에 올림과 동시에 몸을 돌려 앉았다. 그리고 아직도 분노로 씩씩거리는 수리를 향해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얘기하자 오히려 수리가 놀란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내가 미안하다고 먼저 말한 것이 그렇게 놀라운 일이었니? 거참, 난 미안하다는 말을 서슴없이 말하는 여자인데.
“우동 먹고 갈 시간 있어? 너 바로 사무실 고고(GoGo) 아냐?”
수리가 그렇게 말하며 옆에서 반쯤 비몽사몽한 상태에 빠져있는 사름이를 팍팍 쳤다.
주번이라며 우리보다 먼저 등교하더니 교실 청소 끝내놓고 그대로 정신을 놓아버린 것이 분명한 사름이의 모습에 고개를 휘휘
가로저으며 말했다.
“하하, 하하하! 무려, 무려 오늘부터 일주일간 공식 휴가다!”
브이(V)자까지 만들며 말하자 수리가 놀란 표정으로 ‘우와! 정말?’하고 되물었다.
그리고 나의 공식 휴가가 정말 엄청난 사실이었는지 비몽사몽 정신을 놓고 있던 사름이마저 두 눈을 번쩍 뜨더니 날 쳐다봤다.
부, 부담스럽구나 친구들아.
하하, 하하하.
아씨, 괜히 일주일이나 쉰다고 사실대로 말했나? 그냥 오늘만 쉰다고 할 걸. 이거이거 일주일내내 놀자고 칭얼거리는거 아냐?
난 비싼 여자라 일주일 내내 놀아주기엔 곤란한데, 훗.
“좋아! 그럼 오늘 우동부터 시작해서 노래방까지 나한이가 쏘는 거야. 음, 좋아! 이정도로 용서해주지.”
“뭐? 노래방 쏠 돈 없어!”
“뭐라고? 쏘고 싶어서 미치겠다구? 그래그래 이해해. 이따가 언니가 멋진 노래를 간드러지게 불러주마! 기대하라구.”
수리는 그렇게 말하며 음화화화화 하고 흡사 만화영화의 악마대마왕처럼 웃었다.
아니,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수리가 악마대마왕처럼 보였다.
수리는 요란하게 웃다가 옆 분단에서 영어단어를 외우던 녀석이 ‘시끄러워!’라고 소리지르자 눈을 부릅뜨며
‘뭐라고? 이 씨발라먹는수박같은 녀석아?’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그 녀석은 당장 ‘아니, 너무 조용하다구……’라며 꼬리를 내렸다.
그래, 내가 곽수리를 어떻게 이기겠어. 저건 태어날 때부터 천상 싸움꾼인데.
“아씨, 아직 월급 받을 때 안되서 돈 없는데.”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달수 형님에게 꿔달라고 할까 중얼중얼거리며 몸을 앞으로 다시 돌렸다.
그러자 뒤에서 누군가 등을 툭툭 두드렸다.
설마 수리가 노래방에 이어 술까지 쏘라는 건가 싶어 울상을 지은 채 고개를 돌리자 사름이가 씨익 웃는 얼굴로 날 보고 있었다.
수리는 이미 옆 분단 아이를 괴롭히는 것에 정신이 팔려 ‘씨발라먹는수박’만 연신 내뱉으며 나와 사름이에게서 신경을 거둔지
오래였다.
참 재빠른 친구로구만.
“사름이~왜?”
항상 달달한 사탕같은 사름이가 이번에도 달달한 사탕처럼 씨익 웃으며 후다닥 내 마이 주머니에 무언가를 쑥 집어넣었다.
순간 당한 일이기에 황당한 표정으로 사름이를 바라보자 사름이는 뿌듯한 표정으로 날 쳐다볼 뿐이었다.
“얘가 잠이 덜 깼나. 이게 뭐……얼레?”
사름이가 내 마이 주머니에 넣은 것은 만원짜리 두장이었다.
노래방 값을 지불하고도 남을 액수에 놀란 표정으로 사름이를 보자 사름이는 별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짜식! 넌 진정한 친구야! 너뿐이야! 너 최고야!
“사름아……”
“준 거 아니다. 빌려준 거다.”
사름아, 방금 그 말로 인해 니가 진정한 친구라는 것과 너뿐이라는 것과 너 최고라는 거 좀 고민 할 필요가 있어졌어.
“응. 알아알아.”
하지만 티내지 않겠어.
왜냐하면 난 이 돈을 절대 갚지 않을 계획이거든. 왜냐하면 난, 한채수 조폭 사무실에서 일하는 여자니까.
……내가 생각해도 참 연관성 없는 이유로구만.
아니, 아무튼 안갚을거야! 갚을 돈 없어! 나 거지야! 거지라고!
“담임 들어왔다. 열공!”
사름이는 그렇게 말하며 당장 공부하는 자세를 취하더니 자세를 잡자마자 그대로 잠들었다.
‘손사름’이라 쓰인 사름이의 명찰이 시야에 아른아른거리는 것을 느끼며 나도 몸을 돌려 똑바로 앉았다.
문제집을 펼치기 무섭게 담임이 ‘곽수리!’하고 외치며 수리를 향해 잔소리를 시작했다.
수리야 미안하다. 나, 사실 아침에 담임이 널 혼낼 때마다 좀 꼬시다는 기분이야. 미안해. 흐흐.
*
“아! 쫍아! 쫍다고! 야, 나멍충! 옆으로 좀 가봐!”
“나도 쫍아! 사름이가 왕창 차지 하고 있는거야!”
“에이씨! 야, 손! 니 좀 쫍게 서봐!”
야자를 끝내는 종소리가 울리지마자 아이들이 바퀴벌레처럼 우르르 학교 밖으로 터져나온다.
커다란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바글바글 검은 바다처럼 쭈욱 쏟아져나오자 도대체 이 인원들이 다 학교 안에 어떻게
들어가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일단 그건 둘째치더라도 지금 가장 시급한 문제는 좁아터진 인도를 나와 사름이 그리고 수리가 나란히 손을 잡고
걷는다는 것에 있었다.
도대체 평소엔 손을 잡으려고만 해도 손사래치며 ‘내 손은 소중하니까요’를 외치던 사름이가 왜 먼저 나서서 나와 수리의 손을
꽉 붙잡고 걷는지 이해할래야 해줄 수가 없었다.
“아, 쫍다고! 이 븅신아 말 좀 알아들으라고! 그리고 손 좀 그만 흔들어!”
결국 먼저 분노를 터트린 것은 계속 걸으면서 인도의 끝자락에 있는 학교 담벼락에 부딪히던 수리였다.
수리 말대로 사름이는 우리의 손을 붙잡은 것으로도 부족해 손을 휘휘 흔들기까지 했다.
심지어 가운데 선 주제에 자리도 가장 많이 차지하고 말이다.
그덕에 수리처럼 나도 도로 끝으로 다리 한쪽이 자꾸 삐져나가고 있었다.
나 이러다 차에 치여 죽는다고!
“사름아, 나 죽어.”
내 말 한마디에 갑자기 사름이가 발걸음을 우뚝 멈췄다.
그리고는 머쓱한 표정으로 손을 놓더니 날 가운데로 쑥 밀어넣고 자신이 내가 서있던 방향으로 자리를 옮겼다.
얼레?
느닷없이 이뤄진 사름이의 자리 정리에 난 황당한 표정으로 사름이를 바라보았고 수리는 고래고래 지르던 고성방가를 그만
두고 손에 묻은 땀을 교복에 닦았다.
“자, 손 잡고 걷자. 나란히~나란히~나~아란히!”
어느 나라 노래야?
음이 삐뚤삐뚤, 하나도 나란하지 않은 노래를 부르며 사름이가 내 손을 꽉 잡았다.
결국 할 수 없이 나도 수리의 손을 붙잡으려는데…….
“나멍충! 손 더워!”
라고 수리가 버럭 외치더니 먼저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이 뭐……나 지금 뭐…….
부끄럽고 민망하고 쪽팔린 표정으로 수리의 뒷모습을 보다가 사름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름이는 나의 부끄러움따위는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여전히 음이 엉망인 노래를 부르며 손을 휘휘 저을 뿐이었다.
결국 사름이의 손 흔들기에 손을 맡긴 채 수리를 앞장세워 포장차마를 향해 걸었다.
에이씨.
내 친구들은 왜 전부 다 살짝 나사가 부족한 애들인거야? 내만 나사가 제대로 조여진 애로구만. 어허.
“어? 달수 형님!”
방금 배달을 끝내고 들어왔는지 달수형님이 쟁반 하나를 들고 쫄레쫄레 포장마차로 들어갈락말락 하는 모습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사름이의 손을 놓고 달려가려고 하였으나 우리의 손사름군은 엄청난 힘으로 손을 놓아주지 않아
결국 사름이의 손을 붙잡은 채로 달수 형님을 향해 달려갔다.
나와 사름이가 뛰자 ‘엉? 무슨 일이냐?’하고 엉겹결에 달려 뛰던 수리는 달리기의 이유가 달수 형님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엄청난 욕설을 내게 퍼부으며 달리기를 멈추었다.
하긴, 학창시절 내내 계주 자리를 한번도 놓아본 적 없는 나의 달리기 실력을 따라오긴 힘들었을테지.
그런데 어째서.
“안힘드냐, 사름아?”
“응! 빠른 걷기 재미있는데!”
내 달리기를 사뿐히 무시하는 사름이의 발을 지긋이 밟아주고 사름이가 악! 하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순간 손을 확 놓았다.
그리고는 포장마차 앞에 서있는 달수 형을 향해 다시 뜀박질을 시작했다.
“달수 형님!”
“오우~이게 누구야? 우리 한이~!”
오늘따라 느끼함이 평소의 배는 되는 듯한 달수 형님은 날 보자마자 그 자리에 멈춰서서 두 팔 벌려 나를 환영했다.
와락 하는 소리가 날 것처럼 생생하게 달수 형님의 품에 뛰어 들어 ‘형님!’하고 외쳤다.
아, 이건 어쩐지 꼭……
“짜잔! 형제 상봉.”
사름이의 말이 정답 같아서 부정할 수 없는 내 자신이 슬프도다.
사름이는 내 옆을 지나치며 차분한 목소리로 정답같은 그 말을 툭 던진 후 유유히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따라 들어간 것은 ‘우동! 우동! 우동!’하고 식인종처럼 외치는 수리였다.
난 형제상봉 같거나 말거나 달수 형님의 품에 안겨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형님! 저 드디어 공식 휴가에요 휴가! 일주일이나 휴가를 얻었어요!”
“그래그래! 니 덕에 나도 살았다!”
“네?”
‘형님이 제 덕에 살다뇨?’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달수 형님이 머쓱한 듯 씨익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달수 형님의 품에서 빠져나와 기지개를 쭉 켜며 ‘뭐가요?’하고 되묻자 달수 형님이 쑥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 사실 이 일 아니면 나도 춘계훈련 가야하거든. 근데 그게 말이 춘계훈련이지 지옥훈련이야.
“그래요?”
“응, 그거 가서 엄청 먹는데도 살이 막 오키로 십키로씩 쭉쭉 빠진다니까. 탈진하는 애들도 있어.”
“사, 살벌하네요.”
“그렇지? 근데 난 이번에 이 포장마차 일 하느라고 형님이 빠지라고 하셨거든. 정말 너한테 뽀뽀라도 해주고 싶었다!”
그러면서 달수 형님이 날 다시 끌어 안더니 내 볼에 쪽! 소리가 나도록 뽀뽀를 했다.
으엑.
미처 피할 틈도 없이 당한 뽀뽀에 ‘달수 형님!’하고 외치려는 순간 포장마차에서 사름이가 고개를 쑤욱 내밀었다.
그리고는 사름이도 놀란 듯 잠시 멍한 표정으로 나와 달수 형님을 바라보았다.
“아. 어. 음. 미안합니다.”
“어? 아, 야! 야! 사름아, 아니야! 아니라고! 이건 그런 의미가 아니야!”
그리고는 쑤욱 포장마차 안으로 다시 들어간 사름이때문에 나도 덩달아 놀라 달수 형님을 뿌리치고 포장마차 안으로
후다닥 들어갔다.
사름이는 내가 이유를 설명하려고 하자 아예 귀를 틀어막고 ‘미안해! 방해해서 미안해!’라며 지멋대로 지껄여댔다.
이놈의 새끼! 너가 꿔준 이만원 절대 안갚을거야! 정말 평생동안 안갚을거야!
내가 씩씩거리며 사름이가 틀어막은 귀를 열기 위해 애쓰는 동안 달수 형님은 으하하하 하고 크게 웃었고,
우동에 정신 팔린 수리는 나와 사름이에게 시선조차 던지지 않은 채 우동을 향해 미친 젓가락질을 시작할 뿐이었다.
아, 내 주위는 정말 다 왜이러냐고!
“딸, 오늘 사무실 안가도 돼?”
엄마가 나와 사름이 그리고 달수 형님이 먹을 우동을 말며 놀란 듯 물었다.
하긴 내가 사무실로 매일매일 출근하는 걸 잘 아는 우리 엄마인데 느닷없이 내가 애들 끌고 포장마차로 직행했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응!”
“어머! 왜? 짤렸어?”
그러면서 놀란 표정으로 달수 형님을 바라보는 엄마의 표정이란.
‘어머! 저거 짤리면 달수씨가 안도와주잖아!’하는 말을 차마 내뱉지 못한 채 얼굴로 드러낸 그 모습을 본 순간 과연 우리 엄마는
내 편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쓰나미급의 좌절감이 몸 안에서 일렁거렸다.
그래, 그렇지 뭐. 세상이란 이런 것이야. 하하, 하하하.
“안짤렸어! 사무실 사람들 다 내 요리에 환장한다고. 나 사무실 아이돌이야.”
내 말이 끝나기 무섭에 모두의 표정은 ‘이게 미쳤나?’하는 표정이었다.
아, 물론 사무실 사정을 잘 알고있는 달수 형님만 옆에서 고개를 끄덕끄덕였다.
거봐, 맞다잖아.
“사무실 사람들 일주일 동안 뭐 좀 한다고 나 일주일동안 공식 휴가 얻은거라고. 짤린 거 아니야!”
엄마는 내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우동을 말았다.
이건 뭐 좋아해야해, 말아야해?
“아, 그러고보니까 한채수씨는 춘계훈련 안가시던데요?”
“응. 형님은 원래 춘계훈련 안가셔. 필요가 없으니까. 남자만 드글거리는 곳에서 일주일간 못있으시겠대.”
그러면서 달수 형님은 킬킬 웃었다.
하긴, 한채수 성격에 그런데 일주일간 있으라고 집어넣으면 분명 거길 폭발시켜서라도 탈출할 놈이다.
암, 그러고도 남지.
“일주일간 해외여행 가신다던데요? 일본으로. 아, 선물 사오라는 말 깜빡했다!”
엄마가 건네주는 우동을 받아들며 그렇게 외쳤더니 엄마가 ‘선물은 무슨! 니가 감사하다고 선물을 드려야지!’하고 말했다.
나 엄마 딸 맞아? 이씨…….
“아아, 일본. 맞다, 이번에 일본 가신다고 했었다.”
“누가 오라고 해서 데리러 가는거라던데.”
“모르는 게 없어. 형님 비서냐?”
마지막 우동을 달수 형님이 받아들며 말했다.
그래서 ‘비서라뇨, 저도 거기까지 밖에 몰라요.’라고 말하며 우동 면발을 후루룩 빨아들였다.
옆에서 사름이가 나와 수리의 우동그릇에 단무지를 하나씩 올려주었다.
달수 형님에게도 주고 싶은 눈치였으나 팔이 닿지 않는 듯 포기하고 자신의 입으로 쑤욱 집어 넣는다.
그래, 너 착하다.
“형님 애인이 지금 일본에 있거덩. 형수님이 일주일정도 일본에 더 있을 건데 자기 좀 데리러 오라고 했다나봐.”
“아, 애인.”
“응! 그래도 우리 형님 참 멋진 남자 아니냐? 형수님이 와달라고 바로 날아가주시다니……크으, 로맨틱 가이라니까.”
그러면서 달수 형님이 후루룩 면발을 빨아들인다.
수리부터 사름이 그리고 달수 형님까지 후루룩의 행진이다.
그 가운데 앉아 바보처럼 또 멍한 표정으로 젓가락을 멈춘 것은 나 뿐이었다.
“안먹냐? 배불러?”
사름이 건너에 앉은 수리가 우렁찬 목소리로 날 향해 물었다.
차마 수리에게 우동을 빼앗기긴 싫어 다시 젓가락을 움직이며 기계적으로 면발을 입 안에 꾸역꾸역 집어 넣었다.
아까처럼 경쾌하게 후루룩 소리가 나진 않았지만.
‘점심이 체했나?’
점심에 돈까스가 나왔길래 반쯤 정신 놓은 동네 처자처럼 미친 듯이 먹었는데 그게 가슴 언저리에 툭 걸쳤납다.
가슴이 답답한 것이 우동 면발도 매끈매끈하게 통과하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다.
꼭 한채수의 애인 이야기에 가슴이 답답해진 것처럼.
하하, 하하하.
‘그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인데……진짜 체했나?’
젓가락을 허공에서 멈춘 채 인상을 살짝 찌푸리자 옆에서 수리가 ‘안 먹을 거면 달라고!’라며 소리 질렀다.
목청이 참 우렁찬 친구일세.
결국 수리 앞으로 우동 그릇을 밀어주며 젓가락으로 집고 있던 면발만 입 안에 밀어 넣었다.
가슴이 좀 답답했지만 노래방에서 고래고래 소리 질러주면 곧 괜찮아질 것이다.
아니, 꼭 그래야 한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
열아홉여인네의 청춘이롤세.
나도 열아홉일적이 있었지.
작년에.-_-;
아흥.
읽어주신 모든 분들 좋은 하루 되세요 흐흐.
야호♬ 올림.
첫댓글 잘 보고 가요 ㅎ
너무 재미있어요~~ 다음편도 기대할꼐요!!
점점 한이가 채수에 대한 맘을 꺠달아가는 걸까요? 재밌게잘봤어여, 담편도 기대할께여~
오늘 첨부터 보게되었는데..너무 재밌어요.. 크크 빨리 빨리 담편도 보고싶어져요~
잼써용 ~~!! 담편 완전 기대기대~
헐......지옥훈련.. 흠 울학ㄱ체육시간이되면 꼭 지옥ㅎ룬련이더라.. ㅠㅠ 100바퀴 달리기 기초운동. ㅅㅂ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