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괴테 할머니
아빠는 유튜브를 통해 즐겨보는 EBS <건축탐구 집>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단다.
그 중에 특히 시골에 지은 집이 나올 때 유심히 보곤 한단다.
나이가 들다 보니 그런 시골살이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이 생긴 것 같아.
어느날 아주 작은 시골 집에서 생활하는 인상 너그러운 할머니의 영상을 보게 되었어.
처음에는 시골의 여느 할머니라고 생각했는데,
반전의 반전…
집에 잔뜩 쌓여 있는 책들.
독문학 일인자로 불러도 손색이 없는 경력에,
괴테의 모든 책을 번역하셔서 괴테 할머니라는 별명을 갖고 계신 전영애라는 분이었단다.
2011년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이자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괴테 금메달이라는 상을 수상하였다고 하는구나.
그가 번역한 책들을 조회해 보니,
아빠가 읽은 책들도 두어 권 있더구나.
아빠가 번역가들을 유심히 보지 않은 죄가 크구나. ^^
가끔씩 그 분의 유튜브를 보면서 배우고 힐링하고 그랬단다.
몇 달 전에 책도 출간하셔서 책도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빠 친구 중에 한 명이 전영애 님의 <인생을 배우다>라는 추천해 주었단다.
이 책은 최근에 출간된 것은 아니고 십여 년 전에 출간된 책이었단다.
전영애 님의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차에,
친구가 추천해주니 반갑기도 해서
얼른 읽어보았단다.
겉보기와 다르게 참 치열한 삶을 살아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
그리고 평생 공부를 하신 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지.
마치 공부를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단다.
자신의 공부에 열중하면서도
서울과 독일을 오가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등 후학 양성에도 무척 힘을 쓰셨더구나.
일분 일초를 허투루 쓰지 않으셨는데,
그가 소원하는 후회하지 않은 삶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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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작가 헤벨이 주는 정답은 이렇다. 천사가 당신에게 나타나 세 가지 소원을 물어줄 경우 답해야 할 첫째 소원은, 무슨 소원을 빌어야 할지 알 수 있는 지혜를 달라는 것. 둘째 소원은 무얼 빌어야 할지 물어서 알게 된 그 소원을 비는 것. 마지막으로 빌어야 할 세 번째 소원이 중요한데, 바로 후회하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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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학은 사람
독일과 서울을 오가면서 공부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정작 자신의 아이들은 뒷전이라고 했어.
그래도 다행히 아이들이 알아서 잘 큰 것 같다고 했단다.
그렇게 공부만 엄마를 보면서 자란 아이들이
잘못된 길을 가긴 쉽지 않겠지.
유전자도 물려받았다면 더욱 엄마를 닮지 않았을까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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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어두운 밤 지쳐서 집으로 돌아올 때 불 켜진 딸의 방을 쳐다보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안에 정말로 따뜻하고 아름답게 피어 있구나, 작은 한 송이 지혜의 꽃이. 세상의 비바람 속에서도 견뎌야 할 텐데. (어미가 일하며 힘든 모습을 너무 많이 보인 탓인지 딸은 용돈을 달라고 떼를 써야 할 나이에도 용돈은커녕 학교에 내는 돈조차 안 받으려 들었다. 훗날 장학금 주며 데려가 공부 잘 시켜준 좋은 학교를 잘 마쳤다.)
만년필을 잡으면 글을 쓰지 않아도 손이 따듯하다. 만년필을 놓고 스탠드 불빛 앞에서 손을 펴본다.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주먹을 가만히 쥐었다가 다시 펴면, 내 손안에서 꽃 한 송이가 피어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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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전영애 님은 아이들을 혼자 키운다는 생각을 갖지 않았대.
이웃들, 주변 사람들과 함께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는구나.
우리와 같은 아파트 생활은 쉽지 않은 생활인 것 같구나.
아니다, 요즘은 아파트가 아니더라도 그런 생활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이웃들과 웬만큼 친하지 않고는 말이야.
그래도 아빠가 어렸을 때 시골에서 살아서 그런지
집 문은 늘 열려 있었고, 이웃에 일이 있으면 서로 아이들도 봐주고
음식도 전해주고 그랬던 같구나.
책을 읽을 때는 전영애 님의 육아 방식이 남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아빠도 어렸을 때 그런 생활을 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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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
아이를 나 혼자 기른다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어차피 세상에서 살 것이기도 하지만 당장 있으나마나한 어미 대신, 주변 사람들이 내 아이를 한번이라도 아끼는 눈길로 보아주길 바랐다. 나도 이웃아이들에게 그렇게 했다. 늘 문이 열려 있다 보니 가끔씩은, 냉장고 안에는 이웃이 넣어두고 간 김치나 다른 반찬이 들어 있기도 했다. 헌 신발이나 옷가지가 현관문 안에 놓여 있기도 했다. 얼마나 고마웠던지. 내 아이들이 어디선가, 아프거나 슬퍼서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그 분들이 왜 그러느냐고 물어주셨을 것이다. 내 아이들은, 절절 매며 시간을 쪼개 쓴 어미가 아니라, 그 분들이 키워주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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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이야 우리나라 문화가 다른 나라에 많이 알려져 있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잖아.
전영애 님은 어떤 상을 받았는데 그 상금으로 독특한 일을 하셨단다.
독일 도나우 강변에 한옥을 짓는 것이었어.
한옥의 자재를 독일에서 구할 수 없으니
한국에서 자재들을 조달하여 독일에서 재조립하는 방식으로
한옥을 지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한옥의 이름을 ‘시인의 집’이라고 짓고
다른 문인들이 와서 머물다 갈 수 있게 했다는구나.
자재를 독일로 공수하고 그곳에서 조립하는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 일일까?
아빠 같았으면 생각이 있었어도 그런 번거로움 때문에 실천하지 못했을 텐데 말이야.
…
자신의 제자들 이야기도 해주었는데,
그 스승에 그 제자들인 것 같더구나.
전영애 님은 스승으로 제자들에게 가르치기만 한 것이 아니고,
제자들의 삶을 통해 자신도 배우는 자세를 보여주었단다.
자신의 자세의 낮추는 모습도 보기 좋았단다.
독일의 여러 문인들과 만남도 이야기를 주었는데,
특히 라이너 쿤체라는 시인과는 각별한 관계였다는구나.
독일에서 전영애 님의 시집을 내주기도 했대.
…
독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서울대에서 오랫동안 독문학을 가르치셨어.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함께 책을 읽고 공부하기 위해 집을 지었다고 하는구나.
경기도 여주에 여백서원이라는 집을 지으셨는데,
그 여백서원이 아빠가 앞서 이야기한 <건축탐구 집>에 소개된 집이란다.
책을 읽고 그 프로그램을 다시 한번 보니,
괴테 할머니는 정말 존경하실 만한 분이구나.
여백서원이 3200평인데, 대부분이 손님들과 책들의 공간이고
자신은 1평도 안 되는 방에서 지내면서
내내 행복한 표정을 갖고 계셨어.
책을 바라보는 표정은 더욱
그래도 전영애 님은 문학과 빼고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지.
전영애 님께서 생각하는 문학을 이야기해주었는데,
결국 사람과 연결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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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252)
나는 지금까지 글을 읽어오면서 문학이란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남기고, 전하고, 읽는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글에는 사람이 담긴다. 현실에서는 일일이 다 만나낼 수 없는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일, 사람들의 속마음까지 속속들이 만나보는 일은 세상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의 갈피를 헤아리고 배려하는 것은 아마도 함께 살아가면서 가능 필요한 일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글을 배우고 읽는 궁극의 의미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가장 힘들여 남기고, 전하고, 읽는 것은 아마도 바른 삶이어야 할 것이다. 글 읽는 시간이란 것도 궁극적으로 바른 삶을 생각하는 시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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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애 님께서 최근에 출간한 책도 한번 읽어봐야겠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그토록 따뜻한 분들을 처음 만났던 건, 괴테 탄생 250주년이던 해 여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기념 확회에서였다.
책의 끝 문장: 향기롭기까지 할 리야 없지만, 내 자신에게 혹시 어떤 양질(良質)의 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다스려온 긴 기다림, 견뎌온 어둠의 덕인 것 같다.
책제목 : 인생을 배우다
지은이 : 전영애
펴낸곳 : 청림출판
페이지 : 288 page
책무게 : 374 g
펴낸날 : 2014년 11월 07일
책정가 : 13,800원
읽은날 : 2025.02.14~2025.02.15
글쓴날 : 2025.03.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