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수업의 의미
학교에서 교과서에 실린 시를 가르칠 때 김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선행학습의 여파가 국어과목에까지 밀려온 것! 아이들은 대부분 학원이나 참고서를 통해 미리 시를 공부해서 온다.
시를 몇 번이고 입 속에서 굴려 읽고 오는 것과 달리, 주제와 소재와 수사법과 표현이 정리된 내용을 머리에 담아오는 아이들에게 시를 가르치는 것은 일종의 곤욕이다. 마음을 열고 시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시작해서, 시의 의미를 따져서 생각하는 과정을 거치기에는 아이들 머리 속에 들어가 있는 정답은 상당히 굳건하다. ‘나’를 중심으로 시를 해석하기보다는, 정리된 내용을 확인하는 수업을 하기에 문학 단원에서 나누어야 할 설레임과 감동이 너무 아깝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중학교 1학년을 가르치게 되었다. 시를 배우는 단원, 첫머리에 좋은 시에 관한 문제 제기를 하기 위해 ‘어떤 시가 좋은 시인가’라는 제목으로 여러 시 중에서 좋은 시를 골라서 스티커 붙이는 수업을 했다.
운율을 지나치게 의식해서 내용이 별로 없는 시, 시어를 고르고 골라서 배치해야 할 자리에 설명식으로 내용을 풀어버린 시, 무엇보다도 막연히 따뜻하고 아름다운 정서를 다루어야 한다는 ‘동시’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수업의 의도였다. 아이들은 감동과 표현, 공감과 상상력을 잣대로 좋은 시를 잘 골라냈다. 일종의 합의인 셈. 좋은 시란, 내게 다가와 말을 거는 시, 내 마음을 울리는 시라는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평소에 시를 즐겨 읽지 않았다. 교과서에 실린 시 외에, 자발적으로 찾아서 시를 읽는 아이들은 극소수. 시를 좋아한다는 아이들도 대부분 인터넷에서 떠도는 감성 충족의 시만을 공책에 적어놓는 수준이었다. 김소월과 윤동주만 나오면 밑천이 떨어지고, 헤어진 심정을 참담하고 코믹하게 풀어놓은 시를 재미있는 시라고 적어오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 아이들은 교과서에서 어떤 시와 만나는가. 6차에 비해서 7차 교육과정에 따라 구성된 중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 시인들의 면면은 당대의 시인이 많이 들어갔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라 할 수 있다. 김지하의 ‘새봄’, 정일근의 ‘바다가 보이는 교실’ 안도현의 ‘우리가 눈발이라면’ 도종환의 ‘어떤 마을’을 통해서 시를 배우는 우리 아이들은 예전의 우리들에 비해서는 상당히 행복한 듯 보인다.
이런 아이들에게 ‘시집 만들기’ 수업은 읽는 이의 감상을 중심으로 여러 편의 시를 읽게 하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시 그 자체가 아닌 ‘시와 나’의 관계를 면밀하게 탐구하는 글쓰기 수업으로서의 시 수업이고, 교과서의 시를 넘어선 수업이다. 7차 교육과정의 문학 단원 목표로 수용이론에 입각한 ‘독자의 입장에서 능동적으로 작품 읽기’를 들 수 있다. 이런 목표에 기반하여 일정한 의미를 담고 있는 시를 보물 캐듯이 해석하는데 열중하기보다는, 읽는 이에게 와닿는 의미를 섬세하게 풀어내는 것이 좀더 올바른 작품 감상이라고 생각했다.
2. 과제를 내주기 전에 준비해야 하는 것들
우선 아이들이 알고 있는 시인을 점검하였다. 교과서의 시인 외에, 2002년도 본교의 독서퀴즈 작품 으로 모든 아이들이 읽었던 『김소월 시집』과 『국어시간에 시 읽기』가 있다. 소월의 시는 많은 아이들이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고, 상대적으로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진 『국어시간에 시 읽기』를 통해서 시를 가깝게 느끼고 있었다. 또한 이정하와 용혜원 등의 사랑과 우정을 다룬 시들, 이외에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을 쓴 류시화의 시, 그리고 인터넷에서 알게 된 이름 없는 시들을 좋은 시로 거명하였다. 또한 교과서의 시인 중에서는 시중에서 시집을 통해 접할 수 있는 안도현과 도종환의 시도 몇 나왔다.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장치로, 시를 배우는 수업에서 폭넓게 시를 소개하였다. 『국어시간에 시 읽기』를 기본 시집으로 잡고, 기성 시인들의 동시집이나 학생이 쓴 시집을 소개하였다. 이는 어려운 시를 잡고 끙끙대기보다는 공감이 가는 시를 여러 번 우려내어서 글을 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콩, 너는 죽었다』(김용택 / 실천문학사)
『엄마의 런닝구』(한국글쓰기연구회 / 보리)
『까만 손』(오색초등학교어린이 / 보리)
『김치를 사랑하는 아이들아』(김은영 / 창작과비평사)
『거인들이 사는 나라』(신형건 / 푸른책들)
『가만히 들여다보면』(최윤정 엮음 / 문학과지성사)
아울러 시집 중에서 학교생활을 소재로 한 시인들을 따로 묶어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런 분류에 의해서 소개된 시집은 다음과 같다.
『아이들의 풀잎 노래』(양정자 / 문학과지성사)
『새의 마음』(조향미 / 내일을여는책)
『할아버지 요강』,『탄광마을 아이들』(임길택 / 보리)
과제를 나누어주고 난 후에는 도서실에 시집 서가를 임시로 만들어놓았다. 학교에서 시를 읽는 환경을 만들기 위함이 첫째, 집에 시집이 없는 아이들이 인터넷으로 대강 뒤져서 해오는 것을 막기 위함이 둘째였다. 도서관에 시집이 그리 많지 않은 관계로 집에서 시집을 가져왔고, 도서관에 있는 시집들을 가려 뽑아서 ‘시집 만들기 숙제를 위한 참고 도서’ 코너를 만들었다. 그리고 도서실에서 시를 옮겨적는 수업을 1시간 갖기도 했다. 시집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마치고, 각자 시집에서 가려 뽑은 시를 공책에 옮기는 수업. 본격적인 시집 만들기가 아님에도 아이들은 진지하게 시를 읽고 공책에 적는 진지함을 보였다. 기회가 없었을 뿐,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문학소녀 문학소년이었다!
3. 과제를 진행하면서 신경 써야하는 것
이 ‘시집 만들기’는 국어시간의 시 단원 (1-2-4. 시의 세계)과 연계한 수행평가로 생각한 과제였다. 따라서 교과서의 시 단원에 들어가기 전, 도입부에서 여러 시인과 시집을 소개하고, 준비한 안내지를 나누어주고 예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시간을 통해 점수에 반영되는 평가라는 것과, 과제 설정의 의도를 정확히 알리는 것에서부터 충분한 시간(2주)을 주는 것까지 꼼꼼하게 신경 쓰지 않으면 안될 몇 가지가 있었다. 다음은 아이들에게 나누어준 ‘시집 만들기’ 안내지이다.
* 학습목표 :
1. 시가 ‘나’에게 주는 의미를 섬세하게 풀어내면서,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방법으로 시를 읽어낼 수 있다.
2. 감동을 주는 시들을 골라 자기만의 시집을 만들고 발표해보는 활동을 통해, 좋은 시 읽는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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