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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화엄경보현행원(부사모) 원문보기 글쓴이: 普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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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을 깎고 장삼을 입지 않아도 됩니다. 재가자라도 생활 속에 육바라밀을 실천하다면 붓다의 딸로, 아들로 그리고 붓다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서양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티베트불교 계를 받은 텐진 빠모 스님이 불제자로서 재가자의 삶을 당부했다.
텐진 빠모 스님은 11월10일 오후 서울 종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지하 2층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샤카디타 코리아와 불교여성개발원이 초청한 법회에서 이 같이 말했다. 이날 법회에는 전국비구니회장 명우, 부회장 정덕, 부회장이자 운문사 주지 일진, 조계종 전 문화부장 효탄, 재무부장 보경, 서광 스님과 원불교 교무 그리고 사부대중 300여명이 참석했다.
계단과 통로, 단상까지 자리를 차지한 대중 앞에서 텐진 빠모 스님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주제로 설법을 이어갔다. 이날 텐진 빠모 스님은 바쁜 일상 속에 불제자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이르며 물질문명 속에 참다운 삶의 좌표를 이르며 재가자의 보편적 수행의 자세를 전했다.
“많은 사람들이 제게 묻습니다.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하는지 궁금해 합니다. 살고 죽는 문제는 가장 중요한 일이기도 하지만 여기에 집착하는 것은 무의미 합니다. 굳이 붓다로, 붓다의 딸과 아들로 살고자 한다면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스님처럼 출가하지 않아도 직장에서 가정에서 혹은 운전 중에도 육바라밀을 생각하고 실천하십시오. 보시, 인욕, 지계, 정진, 선정, 지혜를 평소에도 닦아야 합니다. 왜 붓다는 육바라밀을 강조했는지 생각하십시오. 그렇다면 적어도 붓다처럼 혹은 붓다의 딸과 아들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영어로 법을 설하고 통역을 거쳐 한국불자들에게 전해지는 텐진 빠모 스님 법문에 대중은 때론 진지하게 때론 웃으며 경청했다.
샤카디타 코리아가 소개한 텐진 빠모 스님은 1943년 영국에서 출생해 1961년 18세에 불교서적을 읽고 20세에 인도로 향해 스승인 캄뚤 린포체를 만났다. 이후 붓다의 딸로 살 것을 서원한 텐진 빠모 스님은 비구니계 수계를 허락받고 1973년 홍콩에서 구족계를 받은 뒤 둡규 텐진 빠모라는 법명을 얻었다.
12년간 수행 뒤 히말라야 설산 동굴로 들어가 다시 12년간 3시간 수면 외엔 오로지 수행하다 1988년 스승의 권고로 여성 수행자들을 위한 사원 건립의 서원을 세우고 세계를 여행하면서 강연과 법회를 이어왔다. 2000년에 이르러 여성 수행자을 위한 돈규 가찰 링 사원을 설립하고 2005년 ‘6인의 서양 비구니 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돼 티베트불교에서 비구니 전통을 되살리는 역할을 맡았다. 2008년 둑빠까규의 수장 걀왕둑빠로부터 티베트 여성 수행자 최고 지위인 제쭌마 지위를 받았다. 현재 차기 샤카디타 회장 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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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초청법회는 샤카디타 코리아(상임공동대표 본각 스님)의 창립을 축하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텐진 빠모 법석에 앞서 샤카디타 코리아는 세계 속 여성불자로서의 삶을 서원했다. 조은수 샤카디타 코리아 상임공동대표는 회원들을 대표해 붓다의 딸로서 한국불자들의 국제교류를 증진하고, 학문적 연구와 토론의 장을 제공하며, 여성불자 인재를 발굴하고 양성해 평등과 화합의 불국정토를 구현할 것을 선서했다.
샤카디타 코리아 상임공동대표 본각 스님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아름다운 한국불교 여성의 모습을 알려 나갈 것”이라며 “환경 파괴와 인권 유린 문제를 해결하는데 세계 여성불자들과손을 맞잡고 동행하겠다”고 밝혔다.
‘붓다의 딸들’이란 뜻의 세계여성불자 국제네트워크인 샤카디타는 1987년 인도 보드가야에서 세계의 여성불자들이 남성과 차별 없이 교육받고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창립했다. 사캬디타 코리아는 지난 2013년 7월17일 설립했다.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8살 때 태국사원 보며
‘나는 불자다’ 처음 인식
숱한 종교·철학 찾았지만
가슴 속 공허함은 여전
불교 접한 후 환희 눈물
티베트 사원으로 곧 출가
12년간 히말라야 동굴서
생과 사 넘나드는 정진
여성도 당당한 깨달음 주체
비구니 스스로 길 개척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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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니 스님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져합니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비구니 스님이 가야할 길은 비구 스님이 개척해 주지 않습니다. 스스로 고유 영역을 확대해 가야 합니다. 비구와 비구니의 역할이 조화를 이룰 때 진정한 승가가 구현되는 것입니다.”
텐진 빠모 스님의 일성이 조계종 국제불교학교 강단에 울려 퍼졌다. 누구인들 비구니 스님의 역할 증대를 역설하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텐진 빠모 스님의 이 한마디는 ‘말’이 아닌 ‘뇌성’으로 들려온다. 그 뇌성이 가슴을 요동치게 한다. 혈관 속을 흐르는 피가 더욱 붉어지는 듯하다.
어린 시절부터 스님은 범상치 않았다. 텔레비전에 비춰지는 태국 사원을 보는 순간 ‘나는 불자’라 스스로 인식했다. 그 때가 8살이다. 10대에 접어들며 인식의 폭은 더욱 넓고 깊어졌다. ‘인간은 원래 완벽하다. 본성이 완벽하기 때문이다. 산다는 건,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를 발견하기 위해서다. 온전한 본성을 발견할 때까지 잠시 방황할 뿐이다.’ 하지만 스스로 물었다. ‘어떻게 완벽해지는가?’ 그 답을 찾기 위해 기독교 성서는 물론 코란에도 손을 뻗어 보았다. 그 결과가 궁금하다. 스님이 내놓은 ‘마음공부’를 엿보자.
‘대부분의 종교는 영혼과 창조주 사이에 놓인 관계를 기본 전제로 한다. 창조주가 만들어 놓은 진정한 영혼을 찾아가는 길이다. 헌신을 담보로 한다. 그런 길은 나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나에게 있어 하나님이나 절대 신은 산타클로스보다 조금 더 위대한 존재다.’
성현으로서는 충분히 인정하나 자신이 던진 질문에 해답을 주지는 못한다는 의미다. 18세에 사르트르와 카뮈의 책을 읽었다. 실존주의에 혹 의문의 답이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서였다. 신통치 않았다.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고 있을 때 ‘흔들림 없는 마음’이라는 작은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영국 출신의 저널리스트가 태국에서 보낸 추억에 관해 쓴 책이다. “완벽한 본성을 찾아가는 길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모든 것을 포용하는 ‘큰 마음’이 너무도 매력적이었습니다.”
사성제, 팔정도를 본 것이다. 전지전능한 창조주나 신이라는 개념 없이 우리 자신을 내면으로 이끄는 길을 제시한 부처님에 감사하며 눈물을 흘렸다. ‘욕망을 버리자!’ 화장을 멈췄다. 옷을 내다 버렸다. 그리고 남자친구와도 헤어졌다. 영원한 스승 캄트롤 린포체를 만나 서양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티베트 교단에서 사미니계를 받았다. 수백 명의 수행자들이 운집한 곳에서의 텐진빠모는 홍일점이었다. 하지만 일생에서 처음으로 좌절감을 맛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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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라는 이유로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티베트 불교계는 지금도 비구니계를 주지 않는다. 비구니 승단이 아예 없다. 텐진 빠모 스님이 여성 수도원 ‘동규 갓찰 링’을 운영하며 인재양성에 매진하면서도 티베트 불교계에 비구니 계단을 설치에 힘쓰는 건, 여성으로서 겪어야만 했던 절박함과 절망을 몸소 절감했기 때문이다.
12년의 승원 생활을 접었다. 1만2000미터의 히말라야 동굴로 향했다. 하루 3시간만 잠을 자는 정진은 그렇게 시작됐고 12년 동안 이어졌다. 텐진 빠모 스님은 부처님이 유일하게 번복한 사건을 들었다.
“마하프라자파티(부처님 의붓 어머니)가 여승을 위한 수도원을 세우고 싶다고 세 번 요청했지만 ‘안 된다’는 답변만 들어야 했습니다. 절박함과 아쉬움에 눈물만 흘려야 했습니다. 그 때 아난다가 사연을 알고 부처님께 말씀 드립니다. ‘여성들이 거룩한 수행의 삶을 살고 궁극적인 자유를 얻는 것이 가능합니까?’ ‘물론이다.’ ‘그렇다면 왜 여성들의 소망을 가로막으십니까?’ 결국 붓다는 여성들의 출가를 승낙했습니다. 비구님 스님이 지켜야 할 계율이 이를 방증하고 있지 않습니까? 수세기 동안 수많은 여승들은 아난다 존자에게 깊은 감사를 표해왔습니다.”
텐진 빠모 스님은 비구니 스님들에게 의미 깊은 일언을 다시 전했다.
“수행이란 기쁨이어야 합니다. 시련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나를 넘어 다른 이를 위한 수행이어야 합니다. 이 점을 망각한 수행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고독한 수행을 즐거움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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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간 수행을 해온 그 동굴은 울퉁불퉁한 천장 아래로 몸을 꾸부정하게 웅크린 채 서 있어야 하는, 차라리 벽장이라고 할 정도의 크기 밖에는 되지 않았다. 산사태, 맹수의 위협, 극심한 추위, 육체적인 질병 등 심각한 재난 속에서 그녀는 혼자 맞서야 했다. 산사태는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재난이었다. 당시 스님도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탄식했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스님은 자신을 관조하며 마음을 추슬렀다. 스님의 정신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실감케 한다.
그럼에도 스님은 ‘동굴 수행 여정은 자신에게 더 없는 행복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술회한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마친다면 언젠가 다시 그 동굴로 돌아갈 것이라는 고백에서 스님의 진정성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당시 체득한 그 무엇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과정이 행복했다 해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불행했다 인식하지 않는가?
“절체절명 순간, 저는 윤회를 떠올렸습니다. 윤회가 있기에 다음 생에도 여전히 행복한 것을 추구하는 것일까요? 왜 행복을 바라는가? 만일 행복이 거기 있다면 그런 것이고, 행복이 없다면 또 그런 것일 뿐입니다. 이런 모든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느끼는 순간 중압감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희망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텐진 빠모 스님은 ‘수행을 하려는 진정한 이유가 수행의 결과를 결정한다’고 강조한다.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인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스님이 내 놓은 ‘마음공부’를 좀 더 살펴보자.
‘명상을 하기 위해 방석 위에 앉으면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수행하는 사람들은 세상과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밟고 있는 땅, 마시는 물과 공기를 비롯해 모든 것을 공유하고 있다. 일반적인 생물뿐 아니라 훨씬 더 높고 존귀한 존재들과도 연결되어 있다. 그 고귀한 존재들이 바로 우리 옆에서 성원을 보내준다. 우리는 세상 모든 것을 함께 나누고 있다.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윤회와 인과를 통찰한 스님만의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업은 현세뿐 아니라 다음 생에도 이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똑같은 텐진 빠모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다른 어떤 존재가 이 곳에 있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나의 정신과 의식의 흐름, 그리고 그 에너지는 그 어떤 존재의 일부분으로 다시 함께 존재할 것입니다. ‘무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 세상 모든 존재가 무한한 생에 있어 자신의 아이고 소중한 부모이며, 친구이고, 남편이나 아내입니다. 이 하나만이라도 깨닫는다면 어떻게 그들을 고통 속에 그냥 내버려둘 수 있겠습니까? 사소한 일이라도 무한하게 뻗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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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일상 언행 하나도 조심해야 한다고 설파하고 있다. 나아가 수행 역시 연기법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뜻이리라. 나와 가까운 누군가를 위해 선행을 베푸는 게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해 선행을 베풀어야 한다는 뜻의 다름 아니다.
스님은 불교적 선행이란 고귀하고 가치 있는 것을 헌납하는 것이라 단언한다. 무엇을 헌납하는가? 의외의 답이 돌아온다.
“우리의 깨달음, 우리의 행복, 우리의 미덕을 다른 사람에게 바쳐야 합니다. 이런 태도가 마음속에서 자라기 시작하면 이해의 씨앗에서 작은 싹이 트면서 모든 것을 바꿔 놓는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세상 만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스님은 세상을 최선의 상태로 만들려 노력해도 일순간 바뀌는 건 가능하지 않다고 짚었다. 그보다는 자신의 의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결과는 정말 놀랍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이 바뀝니다. 자신의 인생을 조금 더 명확하게 보게 되면 마음도 더 관대해집니다. 그 마음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 마음을 바쳐야 합니다. 그러면 세상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이나마 최선의 상태를 향해 변화할 것입니다.”
스님은 달라이라마를 만나본 적 있느냐고 물었다. 친견한다면 ‘달라이라마가 오직 당신만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 한다.
“달라이라마 성하는 사람을 만날 때 마음과 마음으로 만납니다. 달라이라마로서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라 그저 소박한 승려로 사람을 만납니다. 대통령, 의사, 노동자라 하는 가면은 허용치 않습니다. 그저, 그 사람 그 자체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친하고 가까운 사람들을 만날 때에도 전에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사람인 것처럼 다가서 보세요.”
텐진 빠모 스님은 한국 불자들에게 전하는 당부의 한마디도 잊지 않았다.
“자신이 늪 속에 있는 한, 아무리 다른 사람을 돕고 싶어 한들 도울 수 없습니다. 자신이 먼저 단단한 땅에 발을 내딛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수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채한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텐진 빠모는 1943년 런던에서 한 생선 장수의 딸로 태어났다. 10대 때 불교를 접하며 동양의 고독한 수행과 인간의 완전성을 동경하며 성장했다. 20대에 내면의 소리를 좇아 인도행 배에 단신으로 몸을 실었고, 그곳에서 영적 스승 캄트롤 린포체를 만나 그의 유일한 여승제자가 되었다. 스님은 ‘지금 자신이 선 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행복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세상 사람들에게 권하고 있다. 스님은 자신처럼 수행하기를 바라는 수많은 여성들을 위해 ‘동규 갓찰 링’ 수도원을 설립해 인재양성에 힘쓰고 있다.
첫댓글 스님의 미소가 너무나도 아름답습니다.
큰 바위 얼굴을 닮아간 어니스트처럼 한평생 부처님을 바라보고 사신 분의 미소는 다들 저러실 겁니다. 공부 잘하신 스승님들의 미소가 이와 같겠지요.
스님의 말씀중엔 우리가 생각해야할 것들이 많아 보입니다.
수행의 이유가 수행의 결과를 결정한다는 것과 깨달음을 다른 사람에게 바쳐야 한다는 말씀은 정말 중요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깨달아 도인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깨달아 남 주려는 것이라는 것, 수행이 시련이 아니라 기쁨이어야 한다는 것 역시...
저도 깨달음과 수행에 대한 정의를 새로 내리고 저 환한 미소를 닮아야겠다고 마음 다져봅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_()_
단단한 땅에 발을 내디디겠습니다. 삶속에서 모두를 섬기고 공양하는 마음내기를 발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올리신 글 더욱 감사합니다. _()()()_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자주 올려주세요.^^
“욕심에 휘둘리는 삶에서는 행복을 찾을 수 없다"
더욱 정진하며 ,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나무관세음보살()()()
"마음공부"를 왜 해야하는지 이내용속에 답이 다 나와있네요^*^지금 수행을 하지않으면 오늘은 걸어갈것을 내일은 뛰어가도 갈수없다는 어느 스님의 법문이 생각납니다.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