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오와 결단과 믿음을 가지고
읽을말씀: 마8:1-34
주제말씀: 마8:19,20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첫째,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고 짊어지십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마8:17)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은 어떤 이들을 일일이 고쳐주셨습니까? 한 나병환자(2-4절), 한 백부장의 하인(5-15절), 베드로의 장모(14-15절), 귀신들린 자들(16,28-34절) 등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어떻게 고쳐주셨습니까? 때로는 손을 내밀어 대심으로써 고쳐주셨고,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3절 상) / “그의 손으로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15절) 때로는 말씀만 하심으로써 고쳐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 대로 될지니라 하시니...”(13절 상)
그 결과는 모두 어떠했습니까? 손을 대시거나 말씀만 하시든지 간에 상관없이 모두 그 즉시 고침을 받았습니다.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3절 하) /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13절 하)
당사자가 직접 찾아와서 간구해야만 고침을 받을 수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지인이 대신 찾아와서 간구해도 고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5,6절)
예수님은 특히 누구의 경우를 놀랍게 여기시면서 칭찬하셨습니까? 백부장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이스라엘 중에 그만한 믿음을 가진 이를 보신 적이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10절)
도대체 그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와 같은 칭찬을 받을 수 있었습니까? 말씀만으로도 능히 고침 받을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7,8절)
본문의 내용 중 예수께서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신다는 점을 깨닫게 하는 사건은 무엇입니까? 가다라 지방의 귀신 들린 자 둘을 고치신 사건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수많은 돼지 떼나 그 지방 사람들보다도 그 둘을 더욱 귀히 여기사 기꺼이 고쳐주셨기 때문입니다.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이르되 만일 우리를 쫓아내시려면 돼지 떼에 들여보내 주소서 하니 그들에게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31,32절)
일련의 사건들은 결국 무엇이 이루어진 것입니까?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하신 말씀, 곧 메시야께서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또 그 병을 짊어지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슴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16,17절)
이를 통해서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우리 주님은 언제나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담당하시는 분이시므로,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직접 나아가든지 아니면 타인을 위해서 그리하든지 예수님 앞에 나아가 간구하기를 힘써야 한다는 점입니다.
둘째, 각오와 결단,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마8:19,20)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고자 하는 한 서기관에게 무엇을 말씀해주셨습니까? 당신이 이 땅에서 머리 둘 곳이 없다는 점입니다.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19,20절)
어째서입니까? 주님을 따르려면 그만큼의 각오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을 따르다보면 때로는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환경적인 난관 등이 있을 것이므로, 마땅히 그의 제자 된 자들은 이 같은 점을 각오하면서 따라야 할 것입니다.
또한 먼저 가서 아버지를 장사하게 해달라는 제자에게는 어떤 말씀을 해주셨습니까? 즉각적으로 주님을 따를 것입니다.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21,22절) 즉 주님을 따르려면 결단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에게는 그만한 각오와 결단력이 있습니까? 없다면 이제라도 그러한 각오와 결단력을 가지고 주님을 따르도록 간구하기를 원합니다.
아울러 주님을 따르려면 또 무엇이 필요합니까? 믿음입니다. 어째서입니까? 믿음이 없거나 작으면 주님을 끝까지 따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믿음이 작아지면 어떻게 됩니까? 걱정이 앞서고, 염려에 사로잡히며, 직면한 상황이 너무도 무섭거나 혼란스러워서 금방이라도 다 죽을 것 같아 집니다.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25절)
그러니 어찌 하여야 합니까? 특별히 무엇에 힘써야 합니까? 믿음을 구하되 큰 믿음을 우리에게 더하여주시도록 구해야 할 것입니다. 참고로, 믿음이 커지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27절)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혹 각오와 결단과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따라가고 있습니까? 원컨대 오늘 나에게도 이와 같은 것들을 충만하게 부어지도록 힘써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