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창김문은 충효의 가문이다
나는 함창 김가로
<함창김가 가 훈>(김 융 (金 隆) 1549년(명종4년)~1594년(선조27년)자는 도성(道盛).
호는 물암(勿巖).[16세손]
함창 김씨의 가훈
父兮天生,母也地育(부혜천,모야지육),孝順祗承,欲報罔極(효순지승,욕보망극),
分形連氣,兄及弟矣(분형연기,형급제의), 親如手足,親愛而已(친여수족,친애이이),
하늘인 아버지는 태어나게 하셨고, 대지인 어머니는 길러 주셨다.
효도하고 순종하며 공경하고 받들어서 은혜를 갚으려 해도 끝이 없다.
형체를 나누고 기운을 연이어 형과 아우가 되었다.
보기를 자기의 손과 발과 같이 하여 가까이 하고 사랑해야만 한다.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기르시니 애달프고 애달프다
우리 부모님 낳고 기르시 애달프고 슬프도다 시어,
나를 낳아 기르시느라고 애쓰시고 수고하셨도다.
그 깊은 은혜를 갚고자 할진대 넓은 하늘과 같이 끝이 없도다.
父兮生我, 母兮鞠我, 哀哀父母, 生我劬勞. 欲報深恩, 昊天罔極. 명심보감
내 몸을 낳아 숭고한 사랑과 노고로 온 힘을 다해 길러 주시며
사람됨을 가르쳐주신 부모님의 깊으신 은혜,
저 넓은 하늘과 같이 끝이 없어 보답할 길이 없도다.
외손 이색은 학자요. 불사이군 충신이다
려말, 조선건국 당시, 어사공파는 고려충신 함창김가는 조선 건국시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과 절의를 지켜켰다
한 임금을 섬기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는 불사이군을 노래한
외손 목은 이색의 부벽루 한시를 한번 읊어 보겠습니다.
이색의 한시‘부벽루(浮碧樓)’
원나라에 유학하여 원나라 과거에 합격한 수재
고려말 원나라 명나라 침략하여 나라 운명을 바라보며
옛고구려 유적지 부벽루에 올라 과거 왕조의 회상하며
고려의 신하로 고려의 기상이 회복되기를 염원하는
충절의 마음을 읊었다
어제 영명사를 지나다 昨過永明寺 (작과영명사)
잠시 부벽루에 올랐네. 暫登浮碧樓 (잠등부벽루)
빈 성 하늘엔 달 한 조각 城空一片月 (성공일편월)
오래된 조천석 위 천년의 구름 石老雲千秋 (석노운천추)
임금 탄 기린마는 한번 떠나 돌아오지 않고 麟馬去不返 (린마거불반)
손은 지금 어느 곳에 놀고 있는가 天孫何處遊 (천손하처유)
길게 휘파람 불며 바람 부는 비탈에 서니 長嘯倚風磴 (장소의풍등)
산 푸르고 강물 절로 흐르네 山靑江自流 (산청강자류)
(기린마는 떠나간 뒤 돌아오지 않으니
하늘에서 온 사람은 지금 어느 곳에 노니는가?
돌계단에 기대어 길게 휘파람 부노라니
산은 푸르고 강은 저홀로 흐르네)
고려말 4은은 불사이군의 도원 결의를 하였다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 도은 이숭인이다
려말과 조선초의 학문을 이어주었다
(이색-정몽주, 길재, 이숭인
정몽주(영일), 이숭인(성주), 길재(해평)/정도전(봉화), 권근(안동),
정몽주-길재-김숙자(선산)-김종직(선산)-김굉필(서흥 도동서원),
손중돈(慶州)-조광조(漢陽), 李彦迪(驪州)--이황(1501-1570 珍寶)
정구-장현광(인동)-장경우-장응일-장벽-장대림,장대열-장주-장복추-장석영,장지연
조선조 손중돈(덕양군 종계-함안군 계(咸安君 桂)-9세 함원군 선(咸原君 瑄)의 사위)
조광조-이언적-퇴계----선산 정구-장현광-장경우로 이어짐)
정몽주 어머니(영천 이씨)의 절개를 나타내는‘까마귀 싸우는 골에’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난 까마귀 흰빛을 새오나니
창파에 고이 씻은 몸을 더러힐까 하노라.
목은 이색의 제자 포은 정몽주의 선비의 절개를 나타내는 단심가
차신사료사료(此身死了死了) 일백번갱사료(一百番更死了)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위진토(白骨爲塵土) 혼백유야무(魂魄有也無)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향주일편단심(向主一片丹心) 영유개리야여(寧有改理也歟)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제자 야은 길재 (채미정. 구미 금오산에 있는 채미정.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
길재 산천은 의구 한데
오백 년 도읍지(都邑地)를 필마(匹馬)로 돌아드니,
산천(山川)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 데 없네.
어즈버, 태평 연월(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조선초기 단군 복위를 위해
풍기에서 금성대군을 옹호하여 금성단이 피 바다가 되었다
어사공파 균의 후예들이 고려가 멸망하자 영주로 낙향 은거隱居하였고,
조선조 초기 지조志操 있는 선비로 단종에 대한 굳은 충정으로 단종복위를 위해 금성대군과 함께
충절 하다가 세조에 의해 멸문지가가 되었습니다
아 ! 역사의 매듭을 보고 순흥고을의 아픈 어제를 더듬고
순흥 금성단 핏끝에 서서 선조들의 충정과 선비의 절의를 생각합니다
그렇게 흘린 눈물이 이렇게 봉도각에 고였어라 하였다.
불사이군 충절을 2번 결의 한 가문은 함창김문 뿐이다
숨죽이며 살아 벼슬길을 나가지 않았습니다
함문의 후예로 부끄럽없도록 바르게 살아라
너 자신을 알아라
단디 살아라(Do the right)
똑 바로 살아라(Do the right)
옳은 일을 하여라(義在正我)
착하게 살아라.(止於至善)
매사 진실 하라(立處皆眞)
모든 순간을 성실하게 살아라(卽事而誠)
모든 순간 하게 살아라(卽事而謙)
상을 많이 받아 자신을 빛내고, 가문을 빛내고. 나라를 빛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함창김문 후예로 긍지와 자부심으로 학문에 전진 하기 바란다(함창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