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나해 4월22일 [(백) 부활 제4주일 (성소 주일)]
제1독서
<예수님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4,8-12
제2독서
<우리는 하느님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입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3,1-2
복음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1-18
◈ [수도회] 삯꾼이 아니라 착한 목자!
2018년 나해 4월22일 부활 제4주일
삯꾼이 아니라 착한 목자!
점점 드러나는 대한항공 조씨 일가의 경천동지할 무자비한 갑질 앞에
할말을 잃습니다. 자신들이 무슨 조선 시대 왕족이나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회사의 근본이요 보물인 직원들을 종이나
노예처럼 대하는 모습을 보며, 조씨 일가들에게 한 가지 꼭 필요한
작업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전문가에 의한 강제적인
정신 건강 진단 및 심리 치료입니다. 남은 인생들을 제대로
살아가시도록, 정말이지 꼭 권장하고 싶습니다.
조씨 일가가 탑승할 경우를 대비해 승무원들이 반드시 숙지해야 할
특별 가이드 라인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공손하고 예의바른
태도로“목적지까지 잘 모시겠습니다!”라고 인사를 드려도 쳐다보지도
않는답니다. 이착륙시 좌석 원위치도 승무원들이 대신해드려야
한답니다. 막대한 양의 고가 수입품들을 비밀리에 안전하게 자택까지
운송하기 위한 승무원들의 노력은 마치 007 작전 같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그들의 갑질 앞에서 언제나 안절부절, 힘겨워했을
직원들을 생각하니 분노를 넘어 슬픔이 밀려옵니다. 한 인간 존재가
다른 한 인간 존재를 어찌 그리도 비참하게 만들수 있단 말입니까?
그들도 집에 돌아가면 한 가정의 든든한 가장일 것입니다. 누군가의
사랑받는 아들 딸일 것입니다. 자신만 바라보는 식구들을 생각하며
그 모진 수모를 견뎌왔을 직원들을 생각하니 정말이지 가슴이
미어집니다.
정말이지 너무나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인 갑질 문화가 우리 가운데도
은연 중에 들어와 있지는 않은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할 때입니다.
저도 언젠가 특별한 체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축제에 사용할 물품을
운반하러 1톤 트럭을 몰고 한 부촌에 들어갔다가, 관리하시는
분으로부터 큰 수모를 당했습니다. 처음부터 무조건 반말입니다.
“어이! 어디 들어가는거야? 여기 트럭 들어오는데 아냐!” 상황을
설명하고 방향을 물으니 턱으로 끄덕하며 방향을 가르쳐줬습니다.
저는 요즘 개인적으로 몇 가지 세운 결심이 있습니다. 식당에 가면
절대로 이거 더 달라, 저거 더 달라, 요구하지 않고, 주는대로 먹기로
결심했습니다. 절대로 짜니 맵니, 투정하지 않기고 했습니다. 계산할
때는 환한 얼굴로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기로 했습니다.
조씨 가문의 횡포를 바라보며 그들이 안고 있는 큰 문제점을 한 가지
발견했습니다. 바로 그릇된 패러다임입니다. 그들이 지니고 있는
패러다임은 마치 예수님 시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지니고
있었던 패러다임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리시아들과 율법학자들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일단 크게
왜곡되어 있었습니다. 자신들을 너무 지나치게 과대평가,
과대포장하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을 죄인들이나 하인들과는 분리된
거룩한 사람, 고귀한 존재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자신들은
언제 어디서나 특별 대우를 받아야 했고, 높은 자리에 앉아야
했습니다.
이웃을 바라보는 시선도 많이 꼬여있었습니다. 세리나 창녀,
이방인들은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구원이 없다고
단정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통쾌한 한 말씀을
던지셨죠.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에 앞서 하늘나라에 들어가고
있다!”
조씨 가문 역시 자신들을 위해 피땀 흘리고 있는 직원들을 고마운
존재, 사랑스런 존재, 동료, 가족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도 하인, 머슴, 다른 종족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릇된 패러다임에 갖혀 부끄럽게 살아온 조씨 가문, 그리고 아무런
죄도 없는 2만여 직원들과 그 가족들을 주님께서 가엾이 여겨주시길
바랍니다. 조씨 일가가 지금까지 살아온 삯꾼으로서의 삶을 청산하고,
직원들을 내 가족처럼 여기고 극진히 섬기는 착한 리더로서의 삶을
살아가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오랜 세월 그 모진 고통의 세월을 감내해온 대한항공 직원들의 삶이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읍시다!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 [수도회]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요한 10, 11)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4월22일 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요한 10, 11)
뜨거운 축하와 진실된 축복을 서로 나눕시다.
다시 예수님의 삶안에서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는
참된 사랑의 성소 주일입니다.
부르심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입니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기꺼이 자기 목숨을 내놓습니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버리고 달아나지 않습니다.
착한 목자는 우리 안으로 양들을 데려옵니다.
착한 목자는 양들의 목소리를 알아 듣습니다.
착한 목자는 자신의 소명에 충실합니다.
착한 목자는 아버지 하느님을 향한 사랑과
양들을 향한 사랑이 그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습니다.
착한 목자는 스스로 낮아짐으로 문턱을 낮춥니다.
착한 목자는 약한 양들을 들쳐업고 험준한 고개를 넘어갑니다.
착한 목자는 침묵의 언어로 십자가를 지고 기쁘게 걸어 갑니다.
착한 목자는 늘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자신의 삶으로 드러냅니다.
착한 목자는 끝까지 양들과 함께 하시며
양들을 아버지께로 이끌어 가십니다.
착한 목자가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듯이 우리또한 사랑에
충실한 저마다의 여정되시길 기도드립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서울] 부활 제4주일(성소주일)
2018년 나해 4월22일 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 요한 10,11-18
성소국에 있는 제게는 1년에 두 번 가장 큰 행사가 있습니다. 하나는
서품식이고 다른 하나는 오늘 우리가 지내는 성소주일입니다.
서품식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젊은이들이 오랜 시간 공부를
마치고 사제가 되는 예식입니다. 사제가 되기 위해서는 독신서약,
순명서약, 신앙고백을 해야 합니다.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만을
따르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입니다. 매년 새 사제들을 보는 것은 제게는
커다란 기쁨이고, 보람입니다.
성소주일은 하느님의 부르심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신학교를 개방합니다. 수도회를
초대합니다. 많은 학생과 젊은이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착한 목자가
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성소주일이
씨를 뿌리는 것이라면 서품식은 결실을 맺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는 것은 사람들이 하겠지만 결국 결실을 맺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늘 신학교에서는
주교님을 모시고 미사가 있습니다. 신학생들이 만든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시간이 되시는 분들은 오셔서 보시면 좋겠습니다. 착하고
겸손한 젊은이들이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성소주일을 지내면서 사제직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사제 생활 50년을 앞두신 원로 신부님의
체험입니다. 신부님께서는 사제서품을 받으시고, 부산의 수녀원으로
첫 미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기차를 탔는데 옆자리의 승객이 무척
긴장을 하고, 불안한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신부님께서는 대구에
동창 신부님이 있어서 잠시 내려서 동창신부가 있는 성당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곧 누가 문을 두드렸고, 나가보니 옆 자리에 있던
승객이었습니다. 승객은 신부님을 따라왔고 고백성사를 청했다고
합니다. 신부님은 성당에서 고백성사를 드리려고 하는데 승객은
28년을 냉담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신부님은 처음으로 고백성사를 드리는 것이었고, 냉담기간이 길어서
면담 성사를 하였습니다. 성사를 다 마치고 신부님은 승객에게
말하였습니다. 제가 누군지 아십니까? 저는 3일 전에 서품을 받은 새
사제입니다. 저도 오늘 처음으로 고백성사를 드린 것입니다. 그러자
승객은 무릎을 꿇고 신부님께 다른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주머니에는
2개의 봉투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유서였고, 다른 하나는
극약이었습니다. 사업이 계속 실패를 했고, 새로운 사업을 위해서
부산으로 가는 길이었다고 합니다. 만일 이번에도 사업이 어려워지면
자살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신부님은 승객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사업이 잘 되는 안 되든 부산에 있는
수녀원으로 전화를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날 밤에 신부님은 승객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이번에는 사업이 순조롭게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신부님은 다음날 새벽 수녀원 미사에 오시도록 이야기를 하였고,
승객은 수녀원 미사에 왔습니다. 신부님은 수녀님들에게 그간의
이야기를 설명하였고, 승객을 위해서 기도해 주기를 청하였습니다.
새 사제였던 신부님은 첫 미사와 첫 고백성사를 통해서 사제직이
이렇게 고귀한 것임을 새삼 알았다고 합니다. 그 뒤로 50년 가까이
많은 미사를 봉헌하고, 고백성사를 드렸지만 그때의 감동이 늘 함께
하였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착한목자’에 대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착한목자는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전 생애를 거쳐 이 말씀을 실천하였습니다. 신학생 때 자주 부르던
노래가 있습니다. ‘임쓰신 가시관’입니다. 노래의 가사는 이렇습니다.
‘임은 전 생애가 마냥 슬펐기에 임쓰신 가시관을 나도 쓰고 살으리라.
임은 전 생애가 마냥 슬펐기에 임쓰신 가시관을 나도 쓰고 살으리라.
이 뒷날 님이 보시고 날 닮았다 하소서.
이 뒷날 님이 보시고 날 닮았다 하소서.
이 세상 다 할 때까지 당신만 따르리라.’
비록 그 길이 십자가의 길이고, 고난의 길일지라도, 버림받아
외로울지라도, 주님께서 가신 길을 함께 가는 것, 그것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따라가야 할 신앙의 길, 진리의 길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계속되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 될 것입니다. 이미
부르심에 응답한 사제나 수도자들은 하느님과의 깊은 친교에서 오는
기쁨과 행복을 삶 안에서 보여 주어야 합니다. 또한 각 본당과 신앙
공동체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려는 이들에게 많은 사랑과 관심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성소주일인 오늘 우리 교회 공동체는 사제
성소자와 봉헌 생활 성소자들을 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느님의 은총을
청해야 할 것입니다.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수원] 착한목자가 되기 위해|오늘의 강론|전삼용 요셉 신부
2018년 나해 4월22일 부활 제4주일 (성소 주일)
복음 : 요한 10,11-18
착한목자가 되기 위해
오늘은 성소 주일입니다. 수원신학교를 거닐다보면 한 편에 고
배문환(도미니코) 신부님의 흉상이 수줍은 듯 꽃과 나무 사이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돌아가신지 수년이
지났지만 제가 신학교에 입학했을 때 선배 신학생들로부터 신부님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을 수 있었고 갓등 중창단에 의해 노래도
만들어졌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신부님은 수원신학교 학장이셨고 61세에
돌아가셨습니다. 여름에 신자들과 바닷가 물놀이를 갔다가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세 자매를 발견하게 됩니다. 신부님은 세 자매를 차례로
건져내신 뒤 물을 많이 마시신데다 탈진하셔서 돌아가셨습니다.
아마도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하는 착한 목자로서의 모범을
보여주신 분이기에 지금도 동상으로나마 신학교를 지키시고 계신 것
같습니다.
오늘 성소주일입니다. 성소는 주님의 거룩한 부르심이란 뜻입니다.
성소는 비록 사제들이나 수도자들에만 국한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이웃을 위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공통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새로운 계명을 준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모습은 ‘착한 목자’로서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그 분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성소이십니다. 이 성소를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성소는 마치 소의 멍에와 같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그 멍에를 매기 때문에 우리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것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누구도 이 성소를 거부한다면 하느님의
것이 될 수 없고 하느님의 나라에서 살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최근 한국고용정보원이 759개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2만6천여 명을
대상으로 직업만족도를 조사하였습니다. 1위는 초등학교교장, 2위는
성우, 3위부터는 상담전문가, 신부, 작곡가, 학예사, 대학교수, 국악인,
아나운서, 놀이치료사 순이었습니다.
대학교총장은 14위, 판사는 22위, 의사는 44위, 중고등학교 교장은
49위, 고위공무원은 55위, 변호사는 57위, 국회의원은 73위, 교사는
90위 등이었습니다.
사제가 직업 만족도에서 4위이지만 사실 초등학교교장이나 성우,
작곡가, 대학교수나 아나운서, 의사, 판검사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사제가 되는 것도 쉽지는 않지만 7년간만 신학교를
무난하게 졸업하면 서품을 받게 됩니다. 다시 말해 맘만 먹으면 직업
만족도를 가장 크게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직업이 사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제가 직업일까요?
사제들 중 아마 단 한 사람도 사제가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제가 이런 말을 했더니 세속적인 시선을 지닌 분은
‘신부가 직업이죠.’라고 반론을 제기하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그러나 직업의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돈을 벌기 위한 것입니다.
돈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면 그것은 봉사입니다. 그러나 사제는 돈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만약 사제가 돈을 벌기를 원한다면
본당신부로서 돈을 유용할 수 있는 액수는 어마어마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양심 하나로 당연히 받아야 하는 돈 이외에는 손을
대지 않습니다. 사제는 돈을 벌기 위해 선택하는 직업이 아니라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것이기에 한 푼도 주지 않을 지라도
행복할 수 있는 인생 자체입니다.
성 라우렌시오 부제를 아실 것입니다. 그는 교황 식스토 2세 때
로마의 일곱 부제 중 하나였으며,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로
순교했습니다. 부제로서 교황님을 옆에서 돕던 성직자였습니다.
‘황금전설’에 따르면, 그가 맡은 일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물건을
나누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집정관 코르넬리우스 세콜라리우스가
교황이 순교하자 교회 재산을 담당하는 라우렌시오 부제에게 살고
싶다면 교회의 보물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교회의 물건들을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나누어
주었습니다. 집정관이 계속 교회의 보물을 달라고 요구하자
라우렌시오는 가난한 사람들을 모아 집정관 앞으로 데리고 가서
이들이 바로 교회의 진정한 보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체포되어
벌겋게 달궈진 석쇠 위에서 고문을 받았습니다. 라우렌시오는 고문을
지켜보던 로마 황제에게 “보아라. 한쪽은 잘 구워졌으니 다른 쪽도
잘 구워서 먹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직업인들과 성소자들과의 차이입니다.
직업인들은 세속적이고 이들은 세상 것에 집착합니다. 그러나
성소자들은 돈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양들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착한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지만, 삯꾼은 이리 떼가 오면
자신의 생명을 잃기 싫어 양들을 놓고 도망칩니다. 그러나 현 시대에
이렇게 목숨을 내어놓으며 순교할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저는 그래서
제가 착한목자에 속하는지 삯꾼에 속하는지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나 목숨을 바칠 일이 없기 때문에 저를 평가할 구체적인 것이
필요했습니다.
한 번은 가톨릭의대에 다니는 학생을 만나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의대에 들어가기도 힘든데 이 학생은 거기에서도 수석을 하는
학생이었습니다. 공부만 하는 것도 아니라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그렇게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그 학생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하루를 3분씩 나누어서 사용합니다.” 3분도 결코 헛되게 쓰지
않는다는 말이었습니다. 자신을 위해서도 하루를 3분씩 쪼개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데, 저는 사제로서 양들을 위해 어떻게 하루를
나누어가며 살아가고 있나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참으로
착한목자라면 게으를 수 없겠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휴가로 여행을 하면서 한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그 신부님은
어머니께서 자신을 위해서 지금까지 고생하신 것에 비해 해 준 것이
없다고 생각하여 ‘어머니에게 무엇을 해 드릴까?’를 생각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어머니도 아들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있었고,
사제관에 혼자 들어올 때 아무도 반겨줄 사람이 없는 것이 안타까워
사제관에 꽃을 꽂아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꽃꽂이를 배우고 싶다고 하였고 아들은 3년 동안 그 비용을
대 주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를 위해 꽃꽂이를 배우게 해 드린다고
생각했지만 3년이 지난 지금 어머니는 오직 아들을 위해서만 꽃꽂이를
하신다고 하십니다.
사제관 어디에나 꽃이 있고 아들은 혼자 사제관에 들어와도 꽃을
통해 어머니를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이렇게 상대를 위해서
무엇을 해 줄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상대를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생각하는데 어떻게
게을러 질 수 있겠습니까?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님이 아르스에 부임 받아 성당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신부님을 잡고 “여기서는 아무 것도 할 것이
없어요. 아무도 성당에 안 나와요.” 라고 말했습니다.
신부님은 “그러면 모든 것이 할 일이군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새벽 2시부터 일어나 기도하였고 그렇게 그 분의 거룩함이
드러나면서 사람들이 몰려들고 하루에 18시간 동안 고해를 주어야
하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줄 것이 항상 있기 때문에 절대 게을러 질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께서 생명을 바치시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당신을 사랑하신다고 하십니다. 자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아내를
사랑하지 않을 남편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녀는 아내의 자녀인
동시에 남편의 자녀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돌보아야 하는 양떼나 이웃은 나의 자녀인 동시에
그리스도의 자녀입니다. 내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는가를
생각하며 하루를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면 어떻게 그리스도께
사랑받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내가 이웃을 위해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면 나는 이미 착한목자가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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