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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소통광장 스크랩 8, 前漢 역사지리, 일본육본참모본부 요서.요동지역 지도를 조작하다
신석재 추천 2 조회 819 16.02.04 19:26 댓글 8
게시글 본문내용

지도가 변조됐다고 하니 뭔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이고 <한서>부터  <청사고>까지 중국 25 개 정사 지리지에 기록된 어양.우북평.요서 3 개 군을 흐르는 난수.란하를 현토.요동 2 개 군을 흐르는 염난수 위치로 옮긴 것입니다.

 

 

참고도 - 한 시기 유주 소속 5 군 위치

 

 

 

 

그러면 염난수와 염난수 지류인 요수는 어찌되었을까요?

염난수는 반고가 한차례 언급한 직후 지리지에서 사라졌으니 문제될 것이 없었고 요수만 지금 요하 위치로 옮겼습니다.

 

저렇게 난수와 요수를 동쪽으로 옮기면 어떤 결과가 될까요?

요수 동쪽에 흐르던 압록강도 옮겨져 지금의 요하 동쪽에 표시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물길.강들만 옮겨졌을까요?

아닙니다.

물길.강 주변의 모든 지명들까지 몽땅 옮겨야만 중국 지리지 기록과 대략적이나마 일치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대한민국 서북쪽 영토인 평안.함경도도 동쪽으로 옮겨져 한반도 압록강 남쪽으로 들어왔고 그 땅은 만주국으로 되었다가 중국 요녕성 땅이 된 것입니다.

 

참고도- 1935 년경 지명이동 정황

 

 

주) 1 적색 원 내의 적색 지명 지점이 1935 년경 이전의 원래 위치임

 

 

참고도- 1934 년 만주국지도 모사도

 

 

 

이는 `참모본부 제도과`에서 수정하였다는 란외 주기가 있는 1917~1918 제도된 <중국여도>의 개별지도들이 어느 지역을 묘사한 곳이라 표시하는 `도표`에 의해 그 위치가 지정되어 지명을 이동시키는 효과를 연출한 것입니다. 


참고도 1 - <중국여도> `도표`

                출처: http://blog.daum.net/sabul358/14638796

 


위의 도표 1.2 지역에 붉은 사각형으로 표시한 9 개의 개별지도는 아래와 같습니다.  


 

   장북 1918              승덕 1918               심양 1917                흥경 1917                 장백 1917

    북경 1918              노룡 1918               여순 1917                평양 1918

 

참고도 2 - <중국여도> 소지도 `노룡`과 `심양`의 경위도 및 도표가 지정한 상하좌우 위치관계

 

                        경도 40/위도 121  

                                                           심양 1917

                   경도 40/위도 121                                                               

      노룡  1918

 

노룡도 우상귀 경위도와 심양도 좌하귀 경위도는 40/121 로 똑같습니다.

즉 노룡.승덕도에 보이는 동북방향의 발해 해안선이 자연스럽게 심양의 서남방향의 해안선과 연결될 것으로 보일 것입니다. 또한 노룡도에 보이는 동쪽 바다가 여순도에 보이는 바다라고 생각될 것입니다.

 

하지만 지도에 표시된 경위도 숫자만 같을 뿐 승덕.노룡도와 심양.여순도는 연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상하로 연결되는 장북.북경도 그리고 승덕.노룡도의 축척이 다르며 또한 승덕.노룡도와 심양.여순도의 축척이 다르기 때문에 실제로 6 개 개별지도는 아래와 같은 지역을 묘사한 것입니다.


참고도 3 - <중국여도>의 장북.북경도/승덕.노룡도/심양.여순도가 묘사하는 지역

 

 

주) 1. 청국 시기 직예성의 승덕.적봉.조양현, 봉천성의 금주.심양 그리고 요하의 원래 위치는 청색으로 표시한 곳임.

     2. 참모본부가 수정한 심양.여순도에 묘사된 곳은 붉은 사각형 지역이며 후조선.대한제국의 지명을 지우고 청국 봉천성 지명들을 옮겨 표시

         한 것임. 

고지도- 1562 년 정약증이 편찬한 <주해도편> 요양총도

 

주)                          산해관   대정.흥중           대릉하                삼차관  삼차하                                  파사(압록강)

                                                                       여순        요동반도???

 

 

한국역사학계는 위 지도를 지금의 요동만 지역을 묘사한 것으로 인식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도 위쪽이 정북이 아니기 때문에 산해관에서 동북쪽으로 향한 해안선은 정북으로 향해야 합니다.

 

또 명사/지리지 기록은 경사인 북경에서 동쪽으로 영평부 노룡현까지 550 리, 북평행도지휘사사 치소인 대녕위 대정현 곧 위 요양총도에서 대정.흥중으로 표시된 지점에서 북경까지는 800 리로 기록되어 있으며 산해관은 노룡현에서 동남쪽으로 100 여리 떨어진 무녕현에 있었기 때문에 북경에서는 650 여리 떨어진 셈이니 북평행도사사 치소인 대정현은 북경에서 산해관까지의 거리 650 리보다는 150 리 정도 더 먼 곳일 뿐이였습니다. 

 

또한 청사고/지리지 직예성에 속한 승덕부.적봉직예주.조양부의 기록에는 평천.건창.적봉.조양을 경유하는 노합하.영금하.황하 및 소릉하.대릉하.여아하가 봉천성 금주부의 의주.금현.금서현을 경유한다고 설명되어 있어 아마도 노합하와 영금하는 황하로 합쳐졌으며 황하는 대릉하로 합쳐져 결국은 요하로 흘러들어 갔습니다.

 

그런데  봉천성 치소가 있는 성경 심양에서 경사인 북경까지는 서남쪽으로 1470 리 떨어졌다고 기록되어 있고 금주부 치소인 금현은 성경 심양에서 서남쪽으로 490 리 떨어져 있다고 설명되어 있기 때문에 금현에서 북경까지의 거리는 980 리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위 지도에 표시된 대정현 곧 조양부의 건창현을 경유하는 대릉하는 동북쪽으로 흘러 조양을 거친 후 북경에서 동북쪽으로 불과 980 리 떨어진 봉천성 지역인 금주부 금현 지역을 지나 요하로 흘러든 것입니다.

 

그러면 북경에서 동북쪽으로 800 리 떨어진 대정을 거쳐 조양을 지나 북경에서 동북쪽으로 980 리 떨어진 봉천성 금현을 경유하는 대릉하가 흘러들어가는 요하는 대체 지금의 어느 물길일까요?

 

또 북경에서 동쪽으로 650 리 떨어진 산해관과 북경에서 동북쪽으로 800 리 떨어진 대정.건창, 1070 리 떨어진 조양, 980 리 떨어진 금현의 위치는 어디일까요?

현대지도에 표시된 지금의 산해관.건창.조양.금주일까요?

 

 

고지도 - 후조선 영조 20 년(1745) 편찬된 <해동지도>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

 

주)              산해관                 대릉하  요하    심양    흥경압록강  길림             백산  영고탑            흑룡강

                                                            요동반도???

 

고지도- 1720 년 프랑스 지리학자 기욤드릴이 간행한 <인도중국지도>에 보이는 후조선 강역

 

인도와 중국지도
Carte des Indes et de la Chine
France, Guillaume Delisle, 1720, 68.8×71.8㎝

기욤 드릴은 18세기 프랑스 지도학의 아버지라 할 수 있다. 그는 카시니 1세인 Jean-Dominique Cassini의 제자로 1718년 프랑스 과학원 회원이 되었다. 그리고 루이 15세에게 지리학을 가르쳤으며 왕실 수석 지리학자가 되었다. 이 지도는 원래 1705년 제작한 것인데, 그가 1720년 다른 지도와 묶어서 암스테르담에서 출간하였다. 동해 해역은 동양해 또는 한국해(Mer Orientale ou mer de Cor?e)로 표기하여 현재의 동해 해역을 소동양해의 개념과 일치하는 작은 바다임을 시사하였다. 즉 이전의 태평양과 인도양을 포함하는 동양해의 개념이 현재의 동해로 축소되게 되는 전기를 제공한 것이다. 기욤 드릴의 제자들은 이후 동해 해역의 명칭 표기에 있어서 동양해를 아예 삭제하고 한국해로만 표기하였다. 조선과 청나라 사이의 국경은 요동반도를 포함하는 엄청나게 넓은 지역을 조선의 영토로 나타내었다. 그런데 기욤 드릴은 막연한 자료를 가지고 이를 표시한 것 같지는 않다. 그 증거가 홋카이도와 관련한 부분의 표현이다. 그는 홋카이도에 대한 부분에서 홋카이도가 일본에 속하는 지의 여부는 알 수가 없다고 문자로 표시하였다. 따라서 그 나름으로는 현실의 자료를 가지고 동북아 지역의 영토를 표시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출처: 동북아재단 독도연구소

 

아닙니다.

모두 지금의 란하 하류 서쪽에 있었습니다.

한 시기 우북평.요서.요동 3 개 군을 경유하는 백랑수가 요사/지리지에서부터 대릉하로 개칭된 물길이기 때문에 명.청 시기 대정.영주.건창.조양.금주를 경유하는 대릉하는 지금의 란하로 흘러들어 갔습니다. 

 

이러한 요서.요동 지역의 지리를 청.러와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청국 봉천성을 장악한 일구 관동군이 조선의 역사.지리를 축소시키려고 원래의 대릉하.요하를 지금의 대릉하.요하로 만든 것입니다.

 

왜구는 명치유신 후 그간 서구 열강들에게 강탈당한 국익을 벌충하려고 정한론이 비등했고 결국 대만.조선을 강점합니다. 조선을 영구히 식민통치하고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위해 청국 3 성 지역인 만주까지도 점령하여 꼭두각시 만주국까지 세웠습니다. 이러한 와중에 개국시조인 단군왕검의 역사는 신화.전설이 되었고 조선의 서북강역인 평안.황해.함경도 땅은 만주국으로 이어서 중국 요녕성으로 넘어갔습니다.

 

이러한 조작들을 충분히 알고도 남았을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 있었던 이병도.신석호가 단군조선의 왕검성이 한반도 평양에 있었다고 헛소리를 버젓이 하는 것입니다.   

 

 

조작지도1 - 봉천도, 왜구 육군참모본부가 조작한 요서.요동지역 지도

 

조작지도2

 

아래 지도는 일본 국립공문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아세아동부여지도(亞細亞東部輿地圖)로 1875년 일, 육군참모국에서 발행한 것입니다. 이 지도를 모본으로  지도영역의 북부지역인 내몽고,만주등을 더욱 확장하여 그린 것이 아래의 1898년판 동명(同名)의 아세아동부여지도(亞細亞東部輿地圖)입니다.

 

 

 

아세아동부여지도 1875년판.

 http://blog.daum.net/sabul358/18321787

 

 

조작지도3

 

아세아동부여지도(亞細亞東部輿地圖),1898년

 

 (총 9방안, 방안별 확대).

 

 

 

亞細亞東部輿地圖
著編者:河合利喜太郞
發行元:博愛館書店
刊行年:明治31年(1898)
【刊記】明治?一年四月十七日印刷 明治?一年四月?五日發行 版權所有 
  校閱者 高等師範學校敎授 那珂通世君 
  著者   河合利喜太郞 
  發行者 加納利助 東京市神田區猿樂町?四番地 
  印刷者 伊藤政三 東京市神田區今川小路一丁目一番地 
  發行所 陸軍參謀本部陸地測量部御出版地圖發賣所 博愛館書店 東京市神田區今川小路二丁壹番地」
【印記】 「第三高等學校圖書印」
【登錄】 「第三○九五號」
【外寸】 110.4×151.5cm 比例尺三百万分一 

 소장 : 日, 京都大學圖書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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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6.02.04 19:47

    첫댓글 김일제는 신라 김씨의 ‘뿌리’와는 무관하다. 중국에 알려진 김씨(金氏)에는 전설 속 황제의 아들인 소호김천씨(少昊金天氏)를 시조로 하고 팽성(彭城, 현 쉬저우(徐州))을 본향으로 하는 김씨와, 이와는 전혀 무관한 흉노의 휴도(休屠) 왕자 김일제(金日磾)를 시조로 하고 경조(京兆, 현 시안(西安))를 본향으로 하는 김씨의 2대 계보가 있다. 이 두 족보는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시안 인근에서 발견된, 소호와 김일제를 하나의 혈통으로 혼동한 이른바 ‘대당고김씨부인묘명(大唐故金氏夫人墓銘)’과 소호에 관한 언급이 없는 ‘문무대왕릉비(文武大王陵碑)’를 근거로 삼아 서로가 별족인 화하족(華夏族)의 소호를 시조로,

  • 16.02.04 21:33

    흉노족의 김일제를 중시조로 엮어 신라 김씨의 뿌리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이는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김일제 [金日磾] (실크로드 사전, 2013. 10. 31., 창비)

    우리가 KBS1Tv에서 방영했던
    역사스페셜에서 김일제에대해
    위와 같이 말한다.

    이렇듯 우리의 역사는 지금도
    거짓으로 도배 되고 있다.

    인터넷이 발달해서 그나마
    학자가 아니더라도 맘만
    먹으면 사서들을 읽을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역사스페셜에서 방영한
    모든것이 거짓이다.
    난 박창범교수의 그
    연구결과가 절대적으로
    맞다고 생각하며
    지금 신석재님도
    대륙의 고구려를 주장
    하며, 타임로드님 또한
    약간 다르지만 대륙 고구려를
    주장 하고 있다

  • 16.02.04 19:59

    그렇다면 한반도에 입각한
    우리의 역사는 도저히 맞질
    않다.

  • 16.02.04 19:55

    ^^문득 훑어봤습니디.

    등급 후... 어정쩡한 글에 쟁론을 하겠다고 했더군요?

    제가 분명히 말했습니다.

    블과 150년 전에... 전국을 직접 답사를 하여... 그 과정에 백두산을 여덟번이나 답사한 후 만든 대동지도도 오류가 많다고요.

    그런데 님이 제시한 지도는 김정호의 지도보다 150년 전에 만든 지도가 있습니다.

    대동지도도 정확치 않는 것이 현실인데... 님이 올린 지도를 믿으라는 말씀인가요?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몰랑 인가요?^^

  • 16.02.04 20:00

    도올 김용옥 선생의 말이 생각납니다.

    현생 인류 역사가 5천년이라면... 지난 4천9백년의 변화보다 근세 1백년의 변화가 더 화려하다고...

    이해 하시겠지요?

  • 작성자 16.02.04 21:11

    @金子
    허! 참내...
    머리에 뭐라도 좀 들어있어야 대꾸를 하겠는데.

  • 16.02.04 21:35

    @신석재 ^.^

  • 16.02.05 03:00

    좋은자료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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