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타는 가족 생각하면 지체 못해”… 탐지봉 수천번 찌르며 수색
[극한호우 피해]
경북예천 실종자 수색 자원봉사 르포
중장비 진입 어려워 극한의 상황… 수색견도 폭우 탓 냄새 맡기 어려워
경찰 “내 가족 찾는 마음으로 최선”, 시신 3구 수습… 경북 실종자 5명 남아
18일 경북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 산사태 수색 현장에서 경북경찰청 특공대원들과 자원봉사에 동참한 본보 도영진 기자(오른쪽)가 실종자를 찾기 위해 탐지봉으로 토사 더미를 찌르고 있다. 예천=이한결 기자
“애타게 소식을 기다리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잠시도 수색을 지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18일 오전 경북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에선 경찰특공대와 자원봉사자의 실종자 합동 수색이 진행됐다. 흘러내린 토사로 쑥대밭으로 변해버린 현장을 지켜보던 경북경찰청 특공대 변우정 전술1팀장은 “이렇게 힘든 수색 현장은 처음”이라면서도 “내 가족을 찾는다는 마음으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본보 기자는 이날 오전 자원봉사에 동참해 경북경찰청 특공대원 11명 등과 실종자 수색 작업을 진행했다. 수색이 진행된 백석리는 15일 새벽 발생한 산사태로 사망자 4명, 실종자 1명이 발생한 곳이다.
● 탐지봉 수천 번 찌르며 실종자 수색
산사태로 마을 대부분이 쓸려 내려간 경북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에서 18일 경찰특공대 등이 실종자 수색을 하고 있다. 이날 오후 마지막 실종자가 발견되면서 이 마을에서 사망한 주민은 5명이 됐다. 예천=이한결 기자
백석리 곳곳은 흘러내린 토사로 마치 폭격을 맞은 듯했다. 곳곳에 쏟아져 내린 바위 때문에 덤프트럭 등 중장비 진입도 어렵다고 했다.
장화를 신었지만 거대한 펄밭으로 변한 마을은 걸음을 내딛는 것조차 힘겨웠다. 두세 걸음 걷고 나면 가쁜 숨이 나왔다. 산비탈을 오르거나 과수원을 통과할 땐 포복 자세로 기어야 했다. 수색을 시작한 지 채 5분도 안 돼 온몸은 땀으로 뒤덮였다. 비옷은 금세 진흙으로 뒤덮였지만 변 팀장 말대로 남은 가족들을 생각하니 발길을 멈출 수 없었다.
백석리의 마지막 실종자는 종합편성채널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장병근 씨(69)였다. 산사태로 장 씨 부부가 살던 집은 형체도 없이 사라졌고, 장 씨 부인은 자택으로부터 약 20m 떨어진 지점에서 매몰돼 16일 시신으로 발견됐다.
기자는 거센 빗속에서 경찰과 함께 실종자 집 인근 곳곳을 철제 탐지봉으로 찌르며 혹시 모를 흔적을 찾았다. 탐지봉에 뭔가가 느껴지면 잔해를 손으로 일일이 들추며 수색했다. 탐지봉 찌르기를 계속하자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한 특공대원은 “투입된 대원들이 오늘만 수천 번씩 땅을 찔렀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전 10시 50분경 경북경찰청 탐지견 ‘보이카’가 비에 흠뻑 젖은 채 코를 킁킁댔다. 실종자를 찾는 단서가 될 수 있는 남성용 작업복 상의가 발견된 것. 현장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옷이 발견된 지역을 샅샅이 수색했지만 추가 단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수색 작업에 동참한 김대근 경사는 “연일 비가 내린 탓에 훈련을 잘 받은 탐지견도 주변 냄새를 맡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결국 장 씨의 시신은 이날 오후 3시 35분경 집터로부터 약 10m 떨어진 지점에서 발견됐다.
● 해병대 등 투입해 시신 3구 수습
구조 당국은 이날 백석리뿐 아니라 효자면과 은풍면, 감천면 등 실종자가 남은 곳에서 전방위로 수색을 진행했다. 소방대원과 경찰, 해병대와 자원봉사자 등 2000명 가까운 인력과 장갑차 3대 등 장비 83대가 현장에 투입됐다. 해병대의 수륙양용 장갑차도 이날부터 예천군 풍양면 삼강주막 일대 수색에 동원됐다. 해병대는 보트 8대도 투입해 수중 및 수면 수색을 병행했다.
구조 당국은 이날 예천군에서 실종자 3명을 추가로 발견했다. 장 씨 외에도 해병대가 오전 10시 반경 예천군 용문면 제곡리 한천에서 폭우에 실종됐던 60대 여성의 시신을 발견했다. 이어 낮 12시 10분경 감천면 진평리 마을회관 인근에서 경찰이 70대 여성의 시신을 수습했다. 당시 경찰 구조견이 숨진 여성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로써 집중호우로 경북 지역에서 발생한 사망자는 22명이 됐고 남은 실종자는 8명에서 5명으로 줄었다.
예천=도영진 기자, 예천=명민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