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 3명 끌어올려 구한 지하차도 의인, “나도 구조 도움 받아… 더 많이 살렸어야”
“죽음의 문턱서 서로 챙겨줘 버텨”
참사 희생자 8명 눈물의 발인
상처투성이 ‘구조 손’ 15일 ‘오송 지하차도 참사’ 당시 여성 3명을 끌어올려 구한 충북 증평군 공무원 정영석 씨의 양손에 상처가 난 모습. 정영석 씨 제공
“누구라도 그 상황이라면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손을 내밀었을 겁니다.”
15일 오전 충북 증평군 공무원 정영석 씨(45·사진)는 세종시 자택에서 증평군청에 출근하기 위해 자신의 차를 운전하고 있었다. 거센 비를 볼 때만 해도 불안했는데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를 지날 때 갑자기 흙탕물이 밀려들며 물살에 휩쓸렸다.
차에서 빠져나온 정 씨는 물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상황에서 차량 지붕으로 기어 올라갔다. 이후 “살려 달라”는 비명 소리를 듣고 떠내려가던 중년 여성을 잡아 끌어올렸다. 물이 더 차오르자 정 씨와 중년 여성은 헤엄쳐 대피를 시도했다.
힘이 다해 가라앉을 뻔한 상황에서 이번에는 화물차 기사 유병조 씨(44)가 정 씨를 난간 쪽으로 끌어올렸다. 난간을 끌어안고 버티던 정 씨는 다른 여성 2명이 떠내려가는 걸 보고 난간 쪽으로 잡아 올렸다. 불과 3, 4분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후 난간을 잡고 버티다가 구조될 수 있었다.
사고 이후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는 정 씨는 18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나도 도움을 받아 살아남았다. 죽음의 문턱에서 모두가 서로 토닥이며 챙겨줘 버틸 수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더 많이 살아 나왔어야 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한편 이날 오전에는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참사 희생자 8명의 발인이 엄수됐다.
18일 오전 충북 청주시 서원구의 한 장례식장에선 희생자 박모 씨(76)의 발인을 30분 앞두고 장례식장이 유족들의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한 자녀는 “엄마가 가는 거 못 보겠다”며 주저앉았다. 운구차에 박 씨의 관이 실리자 박 씨의 남편은 붉어진 눈시울로 하염없이 부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바라봤다.
서원구의 다른 장례식장에선 취업 후 친구들과 함께 전남 여수로 여행을 가려다가 참변을 당한 안모 씨(24)와, 가족들과 생일 모임을 앞두고 있던 조모 씨(32)의 영결식도 열렸다.
참사 희생자의 유족들은 장례 절차가 마무리된 후 충북도와 청주시 등을 상대로 원인 규명 요청 등 합동 대응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충북도는 “합동분향소를 설치할 계획”이라며 “구체적인 장소와 일정은 모든 장례 절차가 마무리된 뒤 유족과 협의해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청주=이채완 기자, 최원영 기자